책은 도끼다
라스콜니코프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전당포 노파를 찾아간다
전당포에서는 책도 받아주는가
가진 게 책밖에 없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책 잡히러
전당포에 가는가
그러나 책은 도끼여서
라스콜니코프는 책등으로
전당포 노파를 내려치고
전당포 노파는 고개를 수그리며 쓰러진다
전당포 노파는 너무 아프다
전당포 노파는 머리를 긁적인다
이복동생 리자베타가 나타난다
당황한 라스콜니코프는 급하게
책을 집어던진다
리자베타도 이마에 책을 맞고 쓰러진다
이마가 얼어붙는다
가진 게 책밖에 없는 라스콜니코프는
두 여자를 책으로 쓰러뜨린
라스콜니코프는 기진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온다
전당포에는 왜 갔다온 것인가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를 싸매고 눕는다
이건 아니잖나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맡 책장을
다시 펼친다
죄와 벌을 다시 읽는다
라스콜니코프가 하숙집을 나선다
찌는 듯한 칠월 초순이다
얼어붙은 바다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스콜니코프는 책에 고개를 묻는다
라스콜니코프는 열이 난다
라스콜니코프는 중얼거린다
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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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카프카가 죄와 벌을 읽고 남긴 말은 없나요?

로쟈 2018-07-07 00:13   좋아요 0 | URL
읽은 건 확실하고 <소송>과 비교도 많이 되는데, 구체적인 언급은 안 보이네요.~

syo 2018-07-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쟨 왜 도끼를 거꾸로 들고 저러고 있냐 싶었다가 다시 확인해 보니까, 실제로 최초 타격은 도끼날이 아니라 도끼뿔이었네요. 당연히 도끼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세 번이나 읽어놓고.....

로쟈 2018-07-07 15:06   좋아요 0 | URL
네, 첫번째 살인은 날이 아니라 등으로.~
 

의미에게 꽃을 묻는다
살 만하냐고 묻는다
피우는 것 없이도
열매 맺는 것 없이도
노골적으로 말하면
뿌리 없이도
의미는 의미로 서 있는가
누구도 본 적 없는 의미는
누구 못지않은 자세로
의미를 구가하는가
날렵한가
절묘한가
의미의 안부를 묻는다
꽃보다 다급하게
의미의 안녕을 근심한다
꽃들은 무탈하다
꽃들은 무관하다
의미의 의미를 묻는다
항복할 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버티겠느냐고 묻는다
묻는다
묻어버린다

비로소 꽃이 아름답다
모양도 향기도 없는 꽃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무의미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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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의 안부는 모르는 척 하기로합니다
잘 있데도
잘 못 있데도
불편한 마음일테니...
이렇게 또 비겁해집니다

로쟈 2018-07-07 00:14   좋아요 0 | URL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이죠.^^
 

며칠 서재일을 쉬었다. 여름휴가를 다녀왔다고 하면 딱 좋겠지만, 정확하게는 서재일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쁘고 피로해서였다. 진짜 휴가는 다만 며칠이라도 따로 다녀올 생각이다(다녀온다고 적으니 우습다. 서재일을 그냥 쉬겠다는 얘기다. 정말로 쉬면서!). 밀린 서재일의 하나로 이번주 주간경향(128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더퀘스트)를 읽고 적었다. 빅데이터 심리학이라는 분야의 예고편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본편으로는 미흡하게 여겨졌다는 뜻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앞선 나왔던 책으로는 에레즈 에이든 등이 쓴 <빅데이터 인문학>(사계절)에 이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번주에 나온 책으로는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등이 쓴 <데이터 자본주의>(21세기북스)도 빅데이터 관련서로 읽어봄직하다(적고 보니 읽어봐야겠군)... 



주간경향(0718. . 09) ‘구글 트렌드’로 본 빅데이터 심리학


책 제목만으로는 심리학책을 연상하기 쉽다.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무엇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가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저자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터넷 데이터 전문가로 특정 검색어의 추세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가 이 심리를 보여주는 새로운 수단이라는 걸 발견한다. 이른바 빅데이터 심리학의 문을 연 것이다. 과연 빅데이터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데이터 과학자로서는 당연한 믿음이겠지만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증폭되고 있는 새로운 데이터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대폭 확장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거대한 데이터세트를 잘 활용하면 예기치 않은 발견과 중요한 식견을 얻을 수 있는데, 이때 아주 요긴한 자료가 되는 것이 구글 검색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를 통해서 사람들의 욕망과 무의식을 읽을 수 있다. 

구글 검색이 갖는 강점은 데이터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에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더 낫게 보이려고 친구에게, 설문조사에, 심지어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공식적인 설문조사로 얻은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가령 소셜미디어의 포스팅에서 묘사되는 남편의 모습은 ‘최고’, ‘너무 귀여운’ 등으로 수식된다. 그렇지만 많은 여성들이 ‘남편’과 함께 검색하는 단어는 ‘얼간이’, ‘짜증 나는’ 등이다. 무엇이 더 신뢰한 만한 남편관일까. 

이러한 솔직함을 강점으로 갖고 있기에 저자는 구글 검색이 인간을 알아내기 위한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확신한다. 이 빅데이터의 힘은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앞서 가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트럼프의 선전이 예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클린턴의 승리가 예상되던 중서부의 주요 주에서 ‘트럼프 클린턴’이 ‘클린턴 트럼프’보다 많이 검색된다는 사실이 징후였다. 그리고 실제 선거에서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했다. 

구글 검색은 트럼프의 지지 배경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트럼프는 미국 남부는 물론이고 북동부와 중서부에서도 선전했으며 서부에서만 고전했다. 트럼프 지지율이 높은 지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우 인종차별적 검색률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은 ‘깜둥이’라는 구글 검색이 가장 많았던 지역과 겹친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빅데이터로부터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을지 시사해준다.

구글 검색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빅데이터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 인문학’이나 ‘빅데이터 심리학’이라는 말조차도 일종의 신조어로 아직까지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데이터 과학의 전망은 매우 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차세대 푸코나 차세대 마르크스는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저자의 장담에 걸맞은 성과가 언제쯤 가능하게 될지 궁금하다.

1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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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대표하는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혁명사>(교양인)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애초에는 두권짜리 <프랑스대혁명사>(두레, 1984)로 나왔던 책이니 34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번역자 최갑수 교수는 그 사이에 20대 대학원생에서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전통적 해석‘이라고 한 것은 그에 맞서는 수정주의적 해석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해석의 대표자가 프랑수아 퓌레로 국내에도 그의 책이 번역됐었다. 이념적으로 대비하자면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혁명으로 이해하는 소불의 해석이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다면 이에 반대하는 퓌레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입장에 서 있다.

두 입장의 ‘끝장토론‘이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는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역자후기의 제목이 ‘왜 여전히 소불을 읽어야 하는가‘인 것으로 보아 전통적 해석이 여전히 수세 국면인 것도 같다. 하지만 역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소불의 견해(프랑스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동조한다. 프랑스문학 강의에서도(그리고 뒤이은 러시아혁명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한다.

프랑스혁명사 관련서는 러시아혁명사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구해놓고는 있는데 이 주제 역시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고심하게 한다. 막연히 남은 여생을 생각하면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독서는 ‘이주의 독서‘나 ‘이달의 독서‘가 되지 않으면 물 건너 간 독서다. 아주 오랜만에 나온 <프랑스혁명사>의 묵직한 개정판을 반가워하면서도 환한 표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다. 인간의 진화가 독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한다. 그래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련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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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과 인간의 폭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주 다시 나온 책 두 권 때문에 갑작스레 엮은 물음이다. 



<중세의 가을>과 함께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연암서가)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확인해보니 연암서가판으로 2010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8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기억에 방송대의 '책을 삼킴TV'에서 테마도서로 다룬 적이 있다(김어준 총수가 사회를 맡은 독서토크 프로였다). 그게 벌써 8년 전인가. 하위징아의 대표작들이 이종인 번역가의 번역본으로 모두 대체가 되었는데, <중세의 가을>은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까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까. 



폭력의 문제를 다시 떠올린 건 야마기와 주이치의 <인간 폭력의 기원>(곰출판)이 나와서다. 처음에는 <폭력은 어디서 왔나>의 속편인가 했더니 제목을 바꾸어 다시 나온 것이다. 저자는 교토대 총장으로 재임중인(2017년 현재) 영장류 학자다. 야생 일본원숭이와 침팬지, 고릴라가 주 전공분야. 


"세계적인 진화론의 대가이자 일본 영장류학의 기초를 세운 이마니시 긴의 대를 잇는 인물로 평가되는 저자는 40년 가까이 고릴라의 행동을 관찰하고 인간 사회와 비교 연구했다. 그는 아프리카 열대 숲을 오가며 우간다,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등에서 벌어진 내전의 상처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적 사태에 내몰린 인간을 보며 동족상잔의 전쟁도 불사하는 잔인한 폭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폭력은 어디서 왔나>를 구입해놓고 독서 시기를 놓쳤는데, 생각난 김에 다시 찾아놓아야겠다. 새로 개정된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18.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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