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속에 열대야도 계속되고 있다. 어젯밤에는 실내온도가 드디어 30도(이제까지는 29도였다). 밤새, 그리고 아침까지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잘 때는 선풍기만 켜고 자는데 끈적한 느낌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잠이 깨었다. 어젯밤에 적으려던 신간 얘기를 적는다.

문명과 문명사에 관한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이번주에도 여러 권 된다.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숭실대 정외과에 재직중인 유럽 전문가 조홍식 교수가 유럽의 문화를 총결산한 책을 펴냈다. ‘유럽문화의 파노라마‘가 부제인 <문명의 그늘>(책과함께). 열두 가지 테마를 통해서 유럽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소개한다. 유럽 문명과 문화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유력하다(유럽 쪽으로 길게 나가는 분들이라면 필독해봄직하다).

영국 워릭대학에서 고대사를 강의하는 마이클 스콧의 <기원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사계절)는 원제가 ‘고대 세계‘다. 정확히는 ‘세계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돼 있는데, 기원전 5세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기원후 5세기초까지 동서 세계의 성립과 교류 국면까지 다루고 있다. 고대 세계에 관한 업그레이드 교과서라고 보면 되겠다.

영국의 군사사가 마이클 스티븐슨의 <전쟁의 재발견>(교양인)은 ‘밑에서 본 전쟁의 역사‘가 부제다. 원서의 부제는 ‘병사는 전장에서 어떻게 죽어갔는가?‘. 말 그대로 전장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병사들의 눈높이에서, 죽이는 자가 아니라 죽는 자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충분히 자기몫의 의의를 갖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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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8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토마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열린책들)을 읽고 적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민중) 정당에서 진보계급(전문직계급)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당의 정체성과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클린턴과 오바마의 집권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민주당의 착각을 더 공고하게 해준 것에 불과했고, 그것이 트럼프 집권의 빌미가 되었다. 10%를 위한 정당으로의 변신이 민주당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프랭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리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주간경향(18. 08. 06) 진보주의는 노동자들의 철학인가

 

토마스 프랭크는 국내에 소개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의 책을 통해서 미국의 현실정치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날카로운 비판을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낸 이 책에서도 그러한 특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민주당이 걸어온 길을 해부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매우 신랄하면서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예견한 책으로도 주목받았다.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미국 민주당의 실패와 그 교훈이 우리의 현실에 여실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인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민중의 당’을 자임해 왔다. 그리고 이 정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은 노동자 계급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민주당은 차츰 전문직 종사자들의 정당으로 변신했다. 소득불평등과 노동계급 중산층의 붕괴가 가속화되었지만 민주당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1%를 위한 정당이라고 비꼬았지만 그 대안이라는 민주당은 10%를 위한 정당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지지층의 변동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오늘날 민주당이 전문직 계급의 당으로 탈바꿈해서인데, 이들 전문직이 오늘의 진보계급을 자처한다. 다르게 말하면 오늘날 진보주의는 노동자들의 철학이 아니라 지식경제 승리자들과 월스트리트 거물들의 철학이다. 이들은 ‘배운 사람들’로서 ‘창조적인 계급’이고 ‘혁신 계급’으로 칭송된다.   


문제는 이들 전문직이 노동 문제와 소득불균형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의 자유와 동성결혼 같은 사안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갖지만 경제나 불평등 문제에서는 진보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능력주의의 신봉자들이어서다.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독점한 계급으로서 전문직은 자신들의 특권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수혜자로서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를 묶어주는 공통점도 바로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자연스레 행정부를 최고 명문대와 전문대학원 출신들로 채웠다. 두 사람은 모두 교육이 개인의 성공뿐 아니라 국가를 구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 문제는 교육 문제가 된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고 그래서 전문경영인 같은 엘리트가 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믿는다.” 요컨대 교육이야말로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고학력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당이 되면서 노동자로부터는 등을 돌렸다. 그 결과는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이탈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단호하다. “민주당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선택해서 나아간 방향은 국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당 자체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실패였다.” 

 

18.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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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8-0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통령 이하 청와대가 휴가 중 이 책을 보았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워서 만인을 위해 쓸수 있을텐데...책 제목 땜에 읽지도 못했겠네요 ㅎ

로쟈 2018-08-03 23:43   좋아요 0 | URL
읽을 사람은 읽겠죠. 한국정치와 관련해서도 프랭크 같은 저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young026 2023-07-16 17:0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 얘기의 주제는 ‘만인을 위해‘ 정치하면 진다는 것 같아서...우울하네요.
 

이번주에 나온 당혹스러운 책은 제럴드 레빈슨이 엮은 <미학의 모든 것>(북코리아)이다. ‘옥스포드 미학사전‘을 옮긴 것인데 이 분야의 유익한 교양서(라기보다는 전문서에 더 가깝겠지만)가 출간된 사실이 당혹스러울 건 없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5년전에 책의 일부가 <미학의 모든 것1>로 출간됐었다는 점.

나처럼 책을 구입하고 오랫동안(물론 어느 사이에 잊고 있었지만) 2권을 기다려온 독자에게는 2권 대신 등장한 완역본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건 뮌가. 1권은 내다버리라는 얘긴가? 간혹 1권만 나오고 그 이후는 함흥차사가 된 책들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춘판사에서 책을 내면서 1권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완역본을 내는 경우는 처음 본다. 5년전에는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완역본이 980쪽이고 1권이 462쪽 분량이니 대락 절반이다. 이 경우에는 520쪽 정도 분량의 2권을 내고, 나중에 합본판을 내거나 하는 게 온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책값이 두권 값보다는 싸다는 것. 2권짜리 분권 형태였다면 5만원 정도는 했을 텐데 완역본은 3만7천원이다. 하지만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는지는 좀더 계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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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에 잠이 드는 바람에 밤 2시에 잠이 깨어 누워있다가 급기야는 3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에서 아무 책이나 빼서 읽기 시작했다. 아무책이라고는 하지만 지난주에 빼놓은 책들 가운데 하나로 밥 버먼의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예문아카이브)다. <바이오센트리즘>의 공저자이기도 하다는 건 지금에야 확인했는데, 여하튼 ‘거의 모든 것의 속도‘ 내지는 ‘속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으로 꽤 흥미롭다. 동어반복인데 애초에 흥미로울 것 같아서 손에 든 책이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강의차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으며 ‘빅히스토리‘ 얘기를 곁들이려다 보니 자연스레 빅뱅과 우주론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거의 모든 것의 속도> 서두는 바로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매우 비인간적인 속도를 주로 다루지만(광속의 절반이 넘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천체들) 그런 사실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는 그래도 인간적이다. 덕분에 우주팽창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암흑에너지(대단한 에너지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에너지라는 의미라고)에 관한 책들도 장바구니에 넣었다(이미 구입한 책들도 있건만).

그러면서 한밤중에, 아니 새벽에 주문한 책은 데이비드 아이허의 <뉴 코스모스>(예문아카이브)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업데이트 버전. 새삼 업데이트된 내용이 궁금해서 주문했고 당일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다. 평소에 읽기 어려운 역사서와 과학서들을 읽자니 방학 기분이 좀 나는 것도 같다. 그럴 여유가 있느냐는 마음 한쪽의 질타에 대해선 폭염에 이런 낙도 없으면 어떡하냐고 변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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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아니어도 폭염을 핑계로 휴가도서에 손을 댄다. 배상열의 <조선 건국 잔혹사>다. 조선의 건국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는데, 저자의 발상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미심쩍다는 것. 사실 그럴 만한 게 태조실록만 하더라도 실시간 기록이 아니라 개국 이후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하에 쓰였기에 여러 가지 변조와 미화의 여지가 있다. ‘실록‘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공민왕과 신돈에 관한 기술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정황상의 추론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시나 확실한 견해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진실은 그러한 기록과 의혹 사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조선왕조실록>은 한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한 것도 한 계기인데, 이제는 읽어보려 한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과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같은 베스트셀러 외에 최근에는 역사저술가 이덕일도 <조선왕조실록>을 펴내기 시작했다.

<조선 건국 흑역사>가 다루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나로선 태조실록부터 태종실록까지가 일단은 관심의 대상이다. 막상 실록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다른 한편으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 가령 이성계나 이방원이 아닌, 정몽주나 정도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선 건국 잔혹사> 덕분에 조선사를 조금 삐딱한 눈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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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2018-07-3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역사책 논란이 많던데 어떤가요 읽어볼만 하나요? 왜곡이 심하다는 지적도 있고 창조적인 역사 해석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인문학자가 보시기에?

로쟈 2018-07-31 19:49   좋아요 0 | URL
논란이 된 책들(정조나 노론 관련)은 제가 읽어보지 않아서요. 조선왕조실록은 창조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 같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