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2026)이란 시집의 마지막 시다. 뒤에 5행이 더 붙어 있지만, 잘라먹어도 요지는 전달되는 듯싶다. 내란 재판이 아직 진행중이고 내란 수괴에 대한 구형조차 내일(13일)로 미뤄진 상태다(결과는 내일 자정을 넘겨 바르샤바 공항이나 프라하공항에서 알게 될 듯싶다). 그러니 아직도 ‘비상시국‘은 진행형이다.

<소설책>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교유서가에서 시집이 나오는 줄은 이번에 알았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이었던 첫시집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기립박수>(2014)은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서점에서 넘겨봤던 듯싶다(구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소피아 로렌의 시간>(2018)이 사이에 있었는데 모르고 지나쳤다. 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2022)도 시집이군. 정정하면 <소설책>은 네번째 시집이다. 평론가로도 등단한 이력을 보아, ‘평론집‘도 시집 목록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허수경 시인이 진주 출신이었지...

꽃이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다면
웃음만을 지으시라 향기를 출동시켰을 것이다.
바람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면
눈보라를 내몰고 샛바람의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림자가 반역을 꾀할 수 있다면
햇살의 뒤편에서 웅크리지 않았을 것이다.
백두대간 거친 협곡이 불복종한다면
인위적인 모든 쇠붙이를 거부했을 것이다.
봄을 기다리던 소년의 눈동자가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꽃과 바람과 그림자와 백두대간의 수괴가 되어
이 땅의 유일무이한 권력자들에게
완성된 혁명의 풍경을 되돌려주었을 것이다.
보이는가? 우리 모두는 비상시국이었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민주주의의 함성을 지키기 위해
한 번도 느슨한 풍경을 보인 적이 없다.
봄이 되돌아올 때마다 어떤 풍경에선 피가 흐르고
기쁨과 눈물이 겹쳐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결코 계엄을 푼 적이 없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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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역사보다 더 철학적인 것은 없다"

18년 전 페이퍼다. 그사이 테러 시대에서 무법자 시대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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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삶에 대해 들뢰즈의 요약으로 다시 읽는다. 오늘은 <신학정치론>에서 계속 멈춘다. 스피노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16세기 프랑스의 청년 라 보에시가 <자발적 복종>에서 다루는 질문들과 같다. 인민들은 왜 그토록 비합리적인가? 인민은 왜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 수백년이 소요되었다.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따라서 1665년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잠시 중단하고 <신학정치론>을 기획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주요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인민은 왜 그토록 비합리적인가? 인민은 왜 자신의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 왜 인간은, 예속이 자신들의 자유가 되기라도 하듯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가? 자유를 얻는 것뿐만아니라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왜 그토록 어려운가? 왜 종교는 사랑과 기쁨을 내세우면서 전쟁, 편협, 악의, 증오, 슬픔, 양심의 가책 등을 불러일으키는가? 1670년에 <신학 정치론>은 가상의 독일출판사 이름으로 저자의 이름도 없이 출간된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곧바로 드러났다. 그렇게 많은 반박과 비난, 경멸과 저주를 불러일으킨 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태인들, 가톨릭 교도들, 칼뱅파, 루터파 등 사상계 전체가, 심지어는 데카르트주의자들까지도 다투어서 이 책을 고발하고 나섰다. ‘스피노자주의‘와 ‘스피노자주의자‘라는 말이 모욕과 위협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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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잃어버린 표지를 찾아서

10년 전 페이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본 두 종이(하나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이지만) 경합하며 나오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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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폴란드 문학기행을 이틀 남겨놓고 있다. 책짐을 챙겨야 하는데(무게를 고려하면 10-15권쯤) 좀 무겁긴 해도 폴란드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남성 이름의 어미가 통일되지 않고 -에비치, -에비츠로 혼용되고 있다. 미츠키에비츠와 미츠키에비치가 같이 쓰이는 것. 폴란드문학자들은 -에비츠를 선호하는 듯하지만, 곰브로비치나 비트키에비치에서 보듯 제각각이다. 거꾸로 -에비치로 통일하는 게 빠를 듯싶다)의 대표 서사시 <판 타데우시>(1834)는 넣기로 했다(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의 분할 점령기 폴란드의 고난이 작품 배경이다). 바르샤바의 문학박물관 이름이 미츠키에비치문학관인데서도 시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헝가리문학의 페퇴피 산도르 같은). 인용한 대목은 시의 에필로그에 나온다.

오, 조국 폴란드여! 너는 그렇게 방금 관 속에 눕혀졌으니
-너에 대해 말할 힘조차 없구나!

아, 지금 누구의 입이 감히,
대리석처럼 무거운 절망감을 누그러뜨리고,
가슴에서 짓누르고 있는 석관을 들어올리고,
가득한 눈물로 퉁퉁 부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할,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 하겠는가?
오랜 세월 동안, 그런 말은 찾을 수 없을 것 같구나.

언젠가, 복수의 사자들이 포효를 그치고,
나팔소리 멈추고, 군대가 해산되고,
원수가 마지막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숨이 멎으며, 세상에 자유가 선포될 때,
우리의 독수리들이 옛 볼레스와프 용맹왕 시절
우리의 영토로 번개처럼 내려앉아,
원수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신 다음,
마침내 안식의 날개를 접으리라!
그 때, 참나무 잎 월계관을 쓴 우리의 기사들은,
검을 던지고 무장을 풀고 둘러앉아서
노래를 듣고자 하리니!
세상은 현재의 상황을 부러워할 것이고,
그들은 지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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