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턴의 <문화> 머리말에서 인상적인 것 두 가지.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핵심적이지 않다는 것(동의한다)과 아일랜드 모티브(스위프트 이래의 전통)가 관통하고 있다는 점. 프로필에서 확인하니 ‘영국 샐퍼드의 아일랜드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다!..
이어서 흔히 속물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문화관념이 왜 그처럼 중요해졌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 다양한 범위의 답을 제시한다. 주요한 답들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미학적 혹은 유토피아적 비판으로서의 문화라는 관념, 혁명적민족주의, 다문화주의, 정체성 정치의 발흥, 종교의 대체재를 찾으려는 노력, 소위 문화산업의 출현 등이다. 또한 문화주의라는 원칙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예정인데, 이는 문화가 인간 존재 속에 철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으로,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 역시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문화가 일부 옹호자들이 상상하듯 현대사회에서 결코 핵심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다수 제시한다.명민한 독자들은 스위프트, 버크, 와일드에서 아일랜드의 반식민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의 모티프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 P9
바디우의 대중강연을 옮겼는데, 분량이 짧기도 하지만 기대한 만큼 깊이가 있지는 않다(함기석 시인의 해제가 더 수준이 높을 정도다). 바디우의 무한론은 다른 책에서 기대해봐야겠다...
평범한 삶은 유한 속에 있습니다. 무한과의 만남은 걱정스럽고,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숱한 노력과 엄청난 긴장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무한 앞에서 우리가 물러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렇게 알려진 무한 앞에서 물러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무한한 공간들이 자아내는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무한에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것은, 어쨌든 무한이 우리 평범한 존재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무한은 무언가 대한 대가 혹은 보상입니다. 평범한 삶속에 정착하는 데 동의하며 한편으로 자신의 삶에서 적어도한 번은 무한을 만나기를 바라면서(물론 공포에 떨면서), 우리는항상 이 둘 사이의 균형 속에 있습니다. - P52
2년 전 이탈리아 문학기행 때 북부 도시 토리노를 찾아 프리모 레비의 발자취와 니체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알베르토 광장을 찾았었다...
강좌 공지다. 크라스키노 포럼에서 주최하는 러시아 인문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전체 일정은 아래 포스터 참조). 러시아문학 관련 2강을 맡았는데, 다른 강의와는 달리 목요일 저녁 일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4월 22일(목):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
4월 29일(목): 우리가 아직도 <죄와 벌>을 읽는 이유
11년 전에 쓴 글이다. 봄학기에 톨스토이 강의를 진행하는 김에 다시 불러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