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화요일 저녁마다 이진아도서관에서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오늘은 미하일 조셴코의 <감상소설>(문학동네, 2011)을 다루었다. 러시아 풍자문학의 거장으로 국내에는 세 권의 작품(집)이 소개돼 있다. 청어람미디어에서 나온 <되찾은 젊음>과 <부실한 컨테이너>는 저자명이 '조쉬첸꼬'로 돼 있어서 '조셴코'와 같이 검색되지 않는다. 표기를 통일해주는 게 좋겠는데, 현재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조셴코'라고 하는 게 맞다.  

 

 

강의에서는 역자 해설을 간추려서 강의자료로 활용했는데, 역자는 조센코의 생애에 대한 요약을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시작한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조셴코는 1895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 출신으로 화가였고, 어머니는 배우였다. 조셴코는 191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9월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914년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되어 파블롭스코예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초 장교로 임용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는 수차례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1917년 심장병이 발발하여 징집 해제된다. 독일군이 살포한 가스에 의한 중독이 병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근거해서 강의에서도 조셴코가 1895년생이라고 말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1894년생이다(7월 29일생).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본이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 모두가 그렇게 적시하고 있다. 특이하게 한국어 번역본들만 연보에서도 그렇고 1895년생이라고 적었다. 이런 착오가 왜 반복된 것인지 궁금한데, 한편으론 '조센코스런' 현상 같기도 하다(역자나 편집자 모두가 다시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아무려나 조셴코는 1894년생으로 1958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식 셈법으로는 64년의 생애를 살았다. 러시아에서 나온 전집판은 7권으로 구성돼 있으니 아직도 상당수가 우리에겐 미지의 작품이다. 좀더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6.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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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인문한국(HK)연구소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인문저널 '창'의 기획좌담에 참여했었는데 오늘 그 잡지가 배송돼 왔다(비매품이다). 좌담 주제가 ''헬조선'과 인문학의 현실'이었다. 사회자의 서두/마무리 발언과 함께 좌담에서 내가 거든 몇 마디를 옮겨놓는다.

 

인문저널 창(2016년) '헬조선'과 인문학의 현실

 

최진석 : 안녕하세요? 고봉준, 김희정, 손희정, 이현우 선생님. 인문저널 “창”의 창간호 특별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대담의 주제는 “‘헬조선’과 인문학의 현실”입니다. 현재의 사회적 현실에서 인문학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진단해 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것인데, 너무 무겁진 않을지 긴장되기도 하네요. 아무쪼록 여러 선생님들의 진심어린 말씀을 기대해 봅니다.


아시다시피, ‘인문학의 위기’라는 논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제기되어 왔고, 2000년대에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문·사·철의 전통적 분과들이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며 ‘위기’가 운위되었고, 그때마다 위기에 대응하는 담론들이 등장해 왔죠.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유행인 지금도 그런 경향은 계속되고 있는데, ‘위기’는 이제 비단 인문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란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아직 30-40대의 소장 인문학자들로서, 제도 안팎으로 활발히 활동중이신 분들인데, 그만큼 인문학과 현실에 대한 예리한 체감과 주장이 다양하게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현실과 인문학을 함께 성찰의 무대에 올려놓기 전에, 먼저 공유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위기’에 관해 간단히 짚어보도록 할까요?

 

 

이현우 : 90년대부터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조교를 하고 막 강의를 시작할 무렵이어서 대학 밖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기억하는 것은 대략 2000년대 중반 정도부터에요. 대학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이 2006년도에 나왔는데, 그 즈음 서평이나 칼럼을 쓰면서 이 문제를 다룰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국의 인문학 위기 담론이나 유행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어요.


하나는 클레멘트 코스로 잘 알려진 얼 쇼리스입니다. 그의 책 <빈자를 위한 부>(Riches for the poor)가 <희망의 인문학>이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저자가 방한하여 강연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그의 문제의식이 널리 전파되었죠. 소위 ‘노숙자 인문학’은 그의 클레멘트 코스를 모델로 한 것이지요. 또 한 가지의 출처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입니다. 세계적인 성공신화를 이룬 IT업계의 창업자가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자 모두가 인문학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잡스가 말한 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로서의 인문학이었는데 ‘자유교양’이라고도 번역되는 말이죠. 요컨대 ‘쇼리스의 인문학’과 ‘잡스의 인문학’이 들어오면서 대학에서도, 대학 바깥에서도 적극적으로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생겼고, 그와 동시에 대학 밖에서는 ‘노숙자 인문학’, 그리고 대학 안에서는 ‘CEO 인문학’ 강좌들이 생겨났습니다.


대학 내 인문학 위기와는 별개로 대학 바깥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많이 얘기되는데, 좀 과장된 면도 있고 오해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이란 말 자체가 남용되면서 빚어지는 오해도 문제이고요. 통상적으로는 ‘인문교양’ 정도를 뜻하는데, 이것을 ‘인문학’으로 통칭하는 바람에 빚어지는 문제 말이죠. 대학 바깥에서 일반 대중이 논어 강의를 듣는다거나 서양미술사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보다는 인문교양을 쌓는다는 의미죠. 그러나 이에 대해 ‘대중 인문학’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되면 당장 ‘수준’ 문제가 제기됩니다. 대중의 구미에 맞추는 얄팍한 인문학과 본래의 인문학을 대조하면서 전자를 폄하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런 구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인문학 유행의 두 가지 원천을 이야기했는데, 그러한 유행 현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미 한풀 꺾인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던 중에 다시 헬조선에서 인문학과 문과 전공에 대한 사회적 홀대와 비하현상이 불거지면서 인문학이 다시 호명된 것이 아닌가 싶고.

 

이현우 : 약간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지금 주제가 인문학이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가고 있는데, 사실 이런 물음 자체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에는 인문학이 인격화되어 있어요. 인문학이 주어인데, 실상 인문학이 실천한다, 행동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기만 해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주체의 문제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2~30대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헬조선이라는 것은 상당히 체감적인 현실이겠지만, 또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도 마찬가지죠. 인문학자들 전체가 그렇게 ‘헬조선’이라고 느끼는 것인가? 그건 아니죠. 대학 혹은 학계에는 헬조선의 수혜자도 많습니다. 내부적으로 계급화 내지 계층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게 “인문학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것은 그러한 내부적인 문제가 안 보이게 가리는 것일 수 있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다 다르죠. 인문학 전공 학생이 무엇을 할 것인지, 인문학 강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인문학 전임교수가 무엇을 할 것인지 같을 수 있나요? 할 수 있는 것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모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인문학’이라고 다 묶을 수는 없는 거죠. 또 시혜적 관점도 문제입니다. 인문학자로서 우리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대중을 위해서 뭔가 해주는 것 같은 구도 말이죠. ‘대중인문학’의 이미지 자체가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줄까, 어떻게 인도할까, 그런 식이에요. 그런 구도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주체의 문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주체는 개인 연구자뿐만 아니라 HK사업단과 같은 공적 단체도 될 수 있습니다. 인문학 사업단이 헬조선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그런 질문을 해야 할 겁니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말고 아주 구체적인 차원으로 내려가서 인문학 사업단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한다고 할 때에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자로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주체로서, 혹은 다른 자격으로 하는 것인지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하죠.

 

이현우 : 대학 밖에서 인문학 전공자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저는 좀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 경우 대중강의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주로 하는 것이 책에 대한 강의예요. 책을 같이 읽으면서 거기서 무언가 재미를 찾고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이 현재 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당장 그분들의 삶을 바꾼다거나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책을 계속 읽게끔 동기를 부여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게끔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누적된다면 작게라도 어떤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당장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직은 역부족이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우리의 성인 독서량이 OECD국가 중 최저 수준으로 나옵니다. 가장 책을 안 읽는 국민이라는 것인데 그것과 헬조선이 어떤 상관이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아직까지 인과적 관계가 규명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 읽는 것은 충분히 해왔기 때문에 조금 읽게 되면 무언가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는 가져봅니다. 거기에 인문학자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손희정 : 실제로는 헬조선과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연계되어 있으나 그 사이에 한 단계 매개를 넣으면 더 분명해 질 것 같아요. 깊이있게 성찰하지 않고 넓고 얇게만 아는 인문학, 즉 읽지 않았어도 읽은 척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 같은 거요.

 

 

이현우 : 하지만 ‘읽은 척’하는 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적어도 일종의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는 되니까요. 제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태도 중 하나가 대중 인문학에 대해서 폄하하는 태도입니다. 얄팍하게 포장된 지식으로 대중을 길들여놓기 때문에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갖게끔 한다는 시각 말이죠. 하지만 결과는 더 길게 두고 볼 일이라고 생각해요. 얄팍한 책이 계기가 되어서 더 깊이 있는 독서나 공부로 나아갈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출 수도 있습니다. 그건 예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끔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십 만명의 독자가 인문서에 관심을 갖는 이례적인 독서 붐이 일었지만, 학계의 반응은 주로 냉소적이었죠.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단찮은 책이며 그런 유행이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식이었거든요. 물론 그렇게 되기가 쉬운 현상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아쉬웠던 건 우리가 한 손 거들어서 그것을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이끌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은 없었다는 거지요.

 

최진석 : 대담을 시작한지 벌써 두 시간 정도 지났군요. 인문학의 위기에서부터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 만일 대응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 난상토론하듯 떠들었는데, 나중에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좀 난감하네요. 자, 우리는 어떤 응답들을 내놓았나요?(웃음). 즉각적인 답안을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갑갑한 심정 너머로 무언가 시원함을 느끼셨다면, 우리가 인문학에 대해 여전히 무언가 기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경계해야겠으나, 지금 여기서 던져지고 공유된 문제의식들을 더 예리하게 다듬고, 현실 속에서 응답할 수 있는 지점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기있게 타진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아쉽지만, 우리의 토론은 여기서 일단 마감하겠습니다. 활자를 통해 이 대담을 읽게 될 독자들과의 소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지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6.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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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과 '이주의 저자'를 건너뛰는 대신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꾸준히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일의 화수분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책도 부지런하게 사들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손에 쥐지 못한 책들이 널려 있는 걸 보면, 책의 화수분 속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이달에 꺼내놓을 책들의 목록이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페터 바이스의 대작 <저항의 미학>(문학과지성사, 2016)을 고른다. 에세이나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그린" 소설. 작가는 스웨덴으로 망명했지만, 여하튼 20세기 독일문학의 기념비 가운데 하나다. 해설로는 문광훈 교수의 <페르세우스의 방패>(고려대출판부, 2012)가 미리 나왔었다. 사실 이 정도 분량이면 여름이나 겨울방학(휴가) 거리여야 하지만, 출간을 기념하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는다. 영어판도 1권밖에 나와 있지 않기에 충분히 기념할 만하다.

 

 

두꺼운 소설을 골랐으니 얇은 시집도 몇 권. 문지 시인선 신간들 가운데 세 권을 골랐다. 젊은 시인부터 중견시인까지. 이이체, 송찬호, 허연. 가장 궁금한 건 이이체다. "나는 직업이 죄인이다/ 누구보다도 죄를 잘 짓는다"는 자랑질이 먼저 눈길을 끈다. 시인이 지을 수 있는 죄라고 해봐야 별것일 리 없을 거라는 생각이지만.

 

 

예술 쪽으로는 세 명의 화가를 고른다. 반 고흐와 변월룡, 그리고 렘브란트다. 마틴 베일리의 <반 고흐의 태양, 바라기>(아트북스, 2016)는 '해바라기'라는 '걸작의 탄생과 컬렉션의 여정'을 그린다. 문영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컬처그라퍼 2012)은 러시아 최고 명문 레핀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던 변월룡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책. 몇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변월룡전이 진행중이어서 책을 읽을 적기이다. 물론 그의 그림들을 직접 먼저 봐야겠지만(기대 이상의 인상을 받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게으로그 짐멜의 <렘브란트>(길, 2016)가 번역돼 나왔다. 역시나 김덕영 교수가 옮겼다. 렘브란트는 변월룡이 가장 좋아한 화가이기도 하다.

 

 

2. 인문학

 

인문 분야에서는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자음과모음, 2016)과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오월의봄, 2016)을 고른다. 이미 언급한 책들이어서 군말을 더하진 않는다. 거기에 한 권 더 얹자면,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문학과지성사, 2016). '감정 이론, 감정사史, 프랑스혁명'이 부제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역자 김학이 교수에 대한 신뢰 때문에 주저 없이 손에 들게 된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역사학 및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 이 책은 감정이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진행되어온 최근의 감정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뒤, 감정사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감상주의'가 수백 배, 수천 배 증폭되었던 프랑스혁명 시기를 풍부한 역사적 사료를 활용하여 흥미롭게 분석한다."

 

조금 가볍게 읽을 만한 책도 세 권.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와이즈베리, 2016)은 자기와 자존심을 주제로 한 책. "아탈리는 고대 사상, 종교, 근대 철학 속 '자기 자신 되기'의 의미와 역사를 더듬으며, 스티브 잡스, 싯다르타, 피카소, 제프 쿤스, 에드워드 스노든, 고르바초프를 비롯하여 예술가, 기업가, 정치가, 활동가 등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도적으로 인생을 경영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전대호의 시집도 아니고 번역서도 아닌 첫 책, <철학은 뿔이다>(북인더갭, 2016)는 대놓고 논쟁을 거는 책이다. '어느 헤겔주의자의 우리 철학 뒤집어 읽기'가 부제로, "헤겔철학을 화두 삼아 저자가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철학자들은 바로 김상봉, 이진경, 김상환, 이어령이다. 현재 우리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들과 맞서며 저자는 주체와 근대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리처드 스티븐스의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한빛비즈, 2016)는 왠지 읽어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제목부터 새롭진 않다) 그럼에도 신간이다. 원제는 <검은 양>(2015) "이 책의 원제인 검은 양(Black Sheep)은 자기 외에 모두 하얀 양인 무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양을 말하는 것으로, 집안이나 조직의 골칫거리, 말썽꾼, 이단자를 말할 때 쓰인다. 자신이 검은 양이라고 생각하는가? 기왕 나쁜 짓을 할 바에는 일탈행위의 혜택을 누리는 실속 있는 검은 양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직업이 죄인이라고 한 이이체 시인도 마스터함직한 책이다.

 

 

3. 사회과학

 

역시나 언급한 바 있는 존 그레이의 <가짜 여명>(이후, 2016)을 제외하면 토마 피케티의 신작 <세금혁명>(글항아리, 2016)이 있다. "공정하고 실용적인 세금 개혁을 위한 제언'이란 부제의 세금혁명 가이드. 국민의 소중한 재산인 세금이 질이 나쁜 권력의 손에 쥐어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게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일에 북치고 장구친 자들은 누구인지 따진 책도 이달에는 읽어봐야겠다.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같이 펴낸 <녹조라떼 드실래요>(주목, 2016). "환경운동연합과 대한하천학회가 4대강 사업의 진실을 기록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인, 전문가, 언론가 및 사회 인사들의 발언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4대강 사업을 찬동하고 추동한 인물들과 집단이 미래에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이들의 명단과 발언과 과오를 기록하려는 것이다. 저자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4대강 사업의 진실 속으로 함께해 보자."

 

 

4. 과학

 

과학분야에선 진지한 진화생물학 책 한권과 가벼운 물리학 책 두 권을 고른다. 호모 스미스의 <내 안의 바다, 콩팥>(뿌리와이파리, 2016)이 진지한 책. '물고기에서 철학자로, 척추동물 진화 5억 년'을 다룬다. <물고기에서 철학자로>가 원제. "콩팥이라는 특정 기관의 진화를 일목요연하게 다루며, 물고기에서 인간에 이르는 다양한 척추동물들이 어떻게 콩팥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가벼운 책이라고 한 건 과학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를 가리킨다. 양자역학 편으로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동아시아, 2015)에 이어서 그 속편으로 <김상욱의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동아시아, 2016)가 나왔다. 양자역학에 관해서 이보다 더 쉬운 안내서는 없다고 해야 할 터. 정말 그런지는 읽어봐야 알겠다(읽어도 모르는 게 양자역학이라지만).

 

5. 책읽기/글쓰기

 

 

민음사 대표를 지낸 출판평론가 장은수의 <출판의 미래>(오르트, 2016)를 책읽기/글쓰기 책을 꼽기에 앞서서 고른다. '세계 출판의 최전선에서 배우는 미래 출판 전략'이 부제, 출판의 향방을 좀 들여다 보고 손에 닿는 책을 읽는 게 순서에 맞을 듯해서다.

 

그리고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민음사, 2016). 일종의 독서에세이로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 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은 책"이다. 더불어, 작가들의 멘토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창작 가이드북도 <작가의 시작>(책읽는수요일, 2016)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나의 추천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멋진 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워라.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를 키워주는 건 더 나은 실패뿐이다. 더 낫게 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인생이란 초고도 조금씩 개선될지 모른다.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독자에게 당근과 채찍이 돼줄 책이 여기 있다. 꾸준히 글을 쓰며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는 작가라면, 매일 아침에 혹은 매일 점심에 혹은 매일 저녁에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이 책을 찾을 것이다."

16. 04.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아무래도 셰익스피어와 함께 서거 400주년을 맞은 세르반테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2월에도 골랐었지만, 안영옥 교수의 해설판도 나온 김에 <돈키호테> 읽기를 다시 시도해봄직하다. 나로선 이번 가을에 강의에서 다시금 다루려 하지만, 미리 읽는다고 해서 우리의 평판이 나빠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언제 읽어도 제때인 것이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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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인문학자이자 비평가 겸 소설가', 프로필의 소개가 그렇다. 대개는 수전 손택을 떠올리지 않을까. 시리 허스트베트다. 바로 입에 익는 이름은 아니다. 여러번 중얼거려야 한다. 그래도 작가의 이미지가 바로 잡히지는 않는다. 하나 더 얹어야 한다. "시 낭송회에서 작가 폴 오스터와 만나 이듬해 결혼해 뉴욕에서 살고 있다." 아하! 이건 시리 허스트베트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는 감탄사가 아니다. 어떤 경로로 소개되었는지 가늠이 된다는 뜻이다. 설사 그런 경로가 아니더라도 '폴 오스터의 아내'는 속지의 광고문구 정도는 된다.

 

 

파파라치가 불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스타 커플. 그렇더라도 허스트베트를 내가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소개된 <사각형의 신비>(뮤진트리, 2012)를 구입한 게 작년 여름인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손에만 들었을 뿐 읽지 않아서(이후엔 또 어디에 두었는지?) 대면했다기보다는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맞다. 그러곤 지난 달이다.

 

 

릭 게코스키의 고급한 에세이 <게고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6)이 다시 나와서(품절됐던가?) 손에 들었다가 뒷표지에서 시리 허스트베트의 출간 목록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사실도 모르고, 몇 권을 원서와 함께 주문했다(원서가 비싸지 않은 건 제법 독자가 있는 저자란 뜻도 된다). 에세이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뮤진트리, 2014)를 며칠 전에 받았고, <불타는 세계>(뮤진트리, 2016)는 어제 받았다. 이 책들의 원서도 엊그제인가.

 

 

다시 한번 혼자 놀란 건 <불타는 세계>가 소설이라는 점. 그럼 뭔줄 알고 주문했단 말인가? <사각형의 신비>나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가 에세이여서 막연히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실제로 <불타는 세계>는 '소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게 책소개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원저까지 구한 건 나대로의 안목이라면서 혼자 부듯해하고. 게다가 더 흡족한 건 국내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는 점. 폴 오스터 독자의 절반의 절반도 안될 듯싶은 소수의 독자가 그녀의 독자다. 시리 허스트베트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책머리에 붙은 '작품 해설'에서 역자는 이런 소감을 적었다. "번역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은, 허스트베트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과 이번에 출간되는 <불타는 세계>처럼, 독자들의 지성과 독서 행위에 대한 헌신을 철저히 믿고 지적으로 훈련된 독자들이 투입하는 노력에 감동적으로 보답하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무슨 속뜻이냐면, 이 책은 매우 지적이어서 당신이 읽어내기 힘들지 모르지만(아니 필히 그럴테지만) 그래도 읽어낸다면 독서에 기울인 노력 만큼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이 또한 만족스럽다. 허스트베트란 작가가 뜰 일은 없다는 얘기니까(영미에서는 사정이 다를까?). 그러니까 시리 허스트베트는 우리끼리 읽는 작가이고, 내내 우리끼리만 읽는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녀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뮤진트리, 2013)을 미처 구입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 나름 계산은 <불타는 세계>를 먼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것이었는데,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판단이 종료되어서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모든 책'이라고. 한가지 아쉬운 건 한국어판의 표지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눈에 안 띄기로 작정한 표지들인지! <내가 사랑했던 것>과 <남자 없는 여름>만 보아도 그렇다. 원서 표지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혹은 이 작가를 절대 띄우지 말아야겠다는 편집자의 속내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만 사랑하는 작가로 남겨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개입한 것인지도.

 

작가는 1955년생이다. 요즘은 나이 인플레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된 사이니 좀 젊은 시절의 이미지로 시작해보기로 하자.  

 

 

여기, 시리 허스트베트의 유혹적인 세계가 있다...

 

16. 04. 02.

 

P.S. 아침에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문학과지성사, 2016)에 대해 적은 페이퍼를 날려먹었다(로그아웃되는 바람에). 다시 적을 기력이 없어서, 허스트베트 이야기로 건너뛴다. '저항의 미학에서 불타는 세계로'가 오늘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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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의 저자 존 그레이의 신작이 출간됐다. <가짜 여명>(이후, 2016). 정확하게는 신작이 아니라 구작이다. 그레이의 책으론 가장 먼저 소개되었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창, 1999)이 같은 책을 옮긴 것이다. <가짜 여명>의 부제가 바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이다. 원저는 1998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9년에 2판이 출간되었다. 이번 번역판은 2009년판을 옮긴 것이니 나름 신작이라고 해도 되겠다. 겸사겸사 그간에 나온 그레이의 책을 한데 묶어놓는다. 언젠가 나대로 명명한 바에 따르면, 지젝이 '우리시대의 헤겔'이라면 그레이는 '우리시대의 쇼펜하우어'이다. 정작 둘은 사이가 썩 좋지 않지만, 독자로선 둘다 필독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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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여명-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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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침묵- 진보를 비롯한 오늘날의 파괴적 신화에 대하여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문강형준 / 이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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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화 위원회-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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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동맹- 종교적 신념이 빚어 낸 현대 정치의 비극
존 그레이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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