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고 있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칠 정도로는 충분한. 서재 일도 많이 밀려 있는 상태이지만, 무거운 짐부터 먼저 더는 기분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비록 나와는 무관하지만,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도 겸하게 되는 건가.
1. 문학예술
먼저 한국소설로는 조정래 선생의 신작 <풀꽃도 꽃이다>(해냄, 2016)과 은희경의 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 2016)을 고른다. 따로 군말이 필요 없는 작가들이다.
오늘도 인천공항이 만원이었다는 보도가 있던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국내 여행을 택한 여행자들이라면 유홍준의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2,3>(창비, 2016)를 길잡이 삼아도 좋겠다.
장르문학 독자들에겐 새로 소개되는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가 좋은 선물이 될 듯. 배경은 스코틀랜드 북부의 험준악 산악 마을이란다. "나이는 30대 중반, 직업은 법을 지키는 경찰이지만 부업으로 가끔 밀렵을 자행하며, 잡종견 한 마리와 함께 유유자적 살아가는 태평한 주인공 해미시 맥베스 순경의 이야기는, 1985년 <험담꾼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2016년 현재 두 편의 외전을 포함해 모두 33권, 시리즈 번호로는 31번째 권까지 이어지면서 3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예술분야에서는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 1,2,3>(돌베개)을 고른다. 2014년에 첫 권이 나오고, 얼마전에 마지막 3권이 출간되었다. "시리즈 마지막 책 <더 클래식 셋>에서는 1888년에 작곡된 말러의 ‘거인’을 시작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33곡을 소개한다."
덧붙여 클래식 애호가라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이야기들도 필독 목록에 들어가겠다. 케이티 해프너의 <굴드의 피아노>(글항아리, 2016)는 굴드가 아니라 '굴드의 피아노'를 소재로 한 점이 이채롭다. 상드린 르벨의 <글랜 굴드>(푸른지식, 2016)은 그래픽 평전. 굴드의 평전으론 피터 오스왈드의 <글렌 굴드>(을유문화사, 2005)가 나왔었는데, 어느새 절판이로군.
2. 인문학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철학서로는 제임스 러셀의 <곁에두고 있는 철학 가이드북>(휴머니스트, 2016)과 다카다 아키노리의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메멘토, 2016)을 고른다. 후자는 '니체, 푸코, 레비나스, 들뢰즈를 무기로 자신을 지키는 법'란 부제를 달고 있지만 겁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평이하게 다룬다. 이성민의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바다출판사, 2016)은 소소한 질문들을 다루며 차근차근하게 사색을 펼친다.
조금 묵직한 책으로는 강유원의 <철학 고전 강의>(라티오, 2016), 최원의 <라캉 또는 알튀세르>(난장, 2016), 그리고 백상현의 <라깡의 루브르>(위고, 2016)를 고른다. 독서도 '이열치열'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호적수가 될 만한 책들이다.
역사 분야에서는 존 앤더슨의 <내추럴 히스토리>(삼천리, 2016)를 고른다. '자연을 탐구한 인간의 역사'가 부제. 먼저 나온 알렉산더 폰 훔볼트 평전 <자연의 발명>(생각의힘, 2016)과 나란히 읽어볼 만하다. 최근에 소개한 로저 애커치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교유서가, 2016)는 열대야에 읽어볼 만한 책으로 특별히 빼놓아도 좋겠다.
3. 사회과학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파스칼 보니파스의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레디셋고, 2016)이 나온 김에 지정학에 관한 책 몇 권을 같이 읽어보는 것도 도서관 피서법의 하나.
남성/여셩, 더 정확하게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베르나르 키리니의 소설 <목마른 여자들>(문학동네, 2016)은 논쟁거리가 될 만한 책. "1970년 페미니즘 혁명으로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여성 제국으로 수십 년 만에 발을 들이게 된 프랑스 지식인들의 여행담" 형식이다. 반면 오찬호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동양북스, 2016)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를 자임한다. <아내의 역사>(책과함께, 2012)의 저자 메릴린 옐롬의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는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를 훑는다.
"독자들은 옐롬과 브라운의 안내를 받으며 여성의 우정에 관한 흥미진진한 역사적 에피소드들과, 최초의 독서클럽이었던 문학 살롱, 일하는 여성의 등장, 가십이라는 현상, 아웃소싱 우정 등 다양한 흐름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생기 넘치며 유익한 정보와 풍성한 디테일이 가득한 이 책은, 여성과 여성,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우정까지 생생하게 조명함으로써 '우정의 역사'를 온전히 그려낸 문화사이다."
4. 과학
과학 쪽에서는 에드워드 윌슨의 신간과 재간본을 고른다. <인간 존재의 의미>(사이언스북스, 2016)가 신간이고,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사이언스북스, 2016)는 2005년에 나왔던 책의 재간본이다.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07)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의 <마음의 탄생>(크레센도, 2016)도 소리소문 없이 나온 의미심장한 책으로 읽어볼 만하다. "저자는 현시점까지 가장 강력한 지능기계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뇌, 특히 대뇌의 신피질을 분석하고 그것이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추출해냄으로써 인공지능의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뇌의 구조나 작동방식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뇌를 분석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저자는 이러한 견해를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5. 책읽기/글쓰기
읽기 분야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현암사, 2016)을 고른다.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독서 성찰"을 담고 있다. "12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사회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고, 살아 있는 인간의 복원을 위해 주류적 흐름에 반하는 대항 연구와 지식 운동을 전개하였다. 저자는 무미건조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용도로 전락한 현대의 독서법을 비판하며 12세기 수도사들의 온몸으로 읽는 읽기를 소개한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 겨울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한 이반 일리치 전집의 2차분도 나올 때가 돼가지 않나 싶군...
16. 07. 3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고른다.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노동자 소설로서 프랑스문학에서는 전무후무한 성취에 해당한다. 국내에는 현재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고, 크로드 베리의 영화도 DVD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아래는 제라르 드파르디유 주연 영화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