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강의를 떠나면서 가방에 앏은 책 하나를 강의책 외에 더 챙겨넣었는데 백상현의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에디투스)이다. 꺼내볼 시간이 없다가 저녁까지 먹고 귀가길 전철에서 펴든다. 막간 독서용.
저자는 라캉(저자는 ‘라깡‘이라고 표기한다) 정신분석 전공으로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악령의...>도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데, 이번에 다룬 주제는 철학의 기원으로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가 부제. 주된 분석 텍스트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쯤 되면 제목 ‘악령‘이 ‘다이몬‘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이라는 정신병에 관하여‘는 프롤로그의 제목인데, 얼핏 철학을 단죄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의도는 그렇지 않다. ˝철학은 하나의 욕망이고, 그것은 변화하려는 욕망이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권력에 대항하는 고함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게 저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다. 이렇게 다시 요약한다.
˝철학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반항하는 욕망이고, 기성세대의 권력에 테크니컬한 방식으로 침을 뱉는 행동이고, 꼰대들의 담론에 욕설을 퍼붓는 일종의 하드코어 랩에 다름 아니라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배자들에게 했던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고, 그래서 사형당한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적고 전철에서 내렸다. 과연 저자의‘ 소크라테스 구하기‘ 내지 ‘철학 구제하기‘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그게 아니면 세번 죽이기?)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