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신작 시집을 사러 지역서점(동네서점보다는 크고 대형서점보다는 작기에 지역서점이라 부르겠다)에 들렀지만 허탕이었다. 그래도 뜻밖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민음사)의 새 번역본.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가 새 영역본(피터 빈 역)에 근거해 옮긴 번역판이다. 그렇지만 피터 빈판은 이미 이종인 번역으로 나왔기에 처음은 아니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는(이 또한 예고는 돼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윤기본(열린책들)과 이종인본(연암서가)과 함께 김욱동본(민음사) 간의 3파전이 될 모양새다. 그 전망에 대해 적으려고 했더니 민음사판은 아직 알라딘에 입고돼 있지 않다. 특이한 일이지만 그렇다. 그래서 일단은 지역서점에 구입. 나중에 번역본들 간의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면 페이퍼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강의에서 다뤘고 그 대략은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에 정리해놓은 바 있다. 90분 강의분량을 간추린 것이라 개략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정도만을 원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더 자세한 카잔차키스론은 언젠가 다른 기회가 마련되면 시도해볼 참이다(카잔차키스 문학기행이라도 떠나게 된다면!).

카잔차키스에 대해서는 피터 빈의 두 권짜리 전기도 오래 전에 구해놓았다. 현재까지는 결정판 전기가 아닌가 싶다. 전집도 나와 있는 마당이니 이 정도 전기도 소개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적은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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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내리는비 2018-02-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서점에서 구입하신 책이 맨 아래 사진에 보이는 파란 책인가요? 그 책은 민음사 북클럽 회원(유료회원 가입시에 출간 예정책들 중에 몇 권 선택)들에게 책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제공되는 가제본(북클럽에디션) 책이에요. 옆에 있는 마르케스 책(조만간에 정식 출간예정이라고 하네요)도 그렇구요. 원래 판매가 안되는 책일텐데 신기하네요^^;;;;

로쟈 2018-02-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안 떠서 대신 가져온 거구요. 겉표지가 있습니다.~

시월에내리는비 2018-02-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민음사 홈페이지에도 새 책으로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서 착각했습니다.
민음사 블로그에는 조금 전에 신간 안내 글이 올라왔네요
세계문학전집 판형이 아닌게 조금 아쉽긴하네요~
바쁘실텐데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방에 강의를 떠나면서 가방에 앏은 책 하나를 강의책 외에 더 챙겨넣었는데 백상현의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에디투스)이다. 꺼내볼 시간이 없다가 저녁까지 먹고 귀가길 전철에서 펴든다. 막간 독서용.

저자는 라캉(저자는 ‘라깡‘이라고 표기한다) 정신분석 전공으로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악령의...>도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데, 이번에 다룬 주제는 철학의 기원으로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가 부제. 주된 분석 텍스트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쯤 되면 제목 ‘악령‘이 ‘다이몬‘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이라는 정신병에 관하여‘는 프롤로그의 제목인데, 얼핏 철학을 단죄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의도는 그렇지 않다. ˝철학은 하나의 욕망이고, 그것은 변화하려는 욕망이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권력에 대항하는 고함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게 저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다. 이렇게 다시 요약한다.

˝철학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반항하는 욕망이고, 기성세대의 권력에 테크니컬한 방식으로 침을 뱉는 행동이고, 꼰대들의 담론에 욕설을 퍼붓는 일종의 하드코어 랩에 다름 아니라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배자들에게 했던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고, 그래서 사형당한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적고 전철에서 내렸다. 과연 저자의‘ 소크라테스 구하기‘ 내지 ‘철학 구제하기‘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그게 아니면 세번 죽이기?)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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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루의 지방 강의를 남겨놓고 있어서 이주의 일정도 마무리 단계다. 내주에는 설연휴가 있어서(연휴의 일거리가 따로 있지만) 강의는 평소의 절반만 진행하면 된다. 한숨 돌리는 셈이어서 마치 주말을 맞은 듯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잠시 뒤적여본다.

시리즈의 책들은 완간이 되어야 개운한데 이번주에는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쉬즈위안의 국가 3부작‘이 <한 유랑자의 세계>(이봄)가 나옴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저자 쉬즈위안은 1976년생으로 ˝사회비평가 겸 작가이자 인문책방 운영자˝라고 소개된다. 국내에는 ‘국가 3부작‘ 외에 <독재의 유혹>과 <저항자> 등이 더 출간돼 있다. 짧은 기간에 여러 권의 책을 나온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꽤 ‘핫한‘ 저자가 아닌가 싶다.

<유랑자의 세계>는 제목이 일러주듯 저자의 여행기다. 동남아와 인도를 포함해 러시아와 유럽까지 많은 곳은 주유한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는데 나로선 먼저 눈길이 가는 장이 러시아 기행이다(‘레닌의 그림자‘가 제목이다). 아무래도 가장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기 때문인데 저자가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에서 읽었다는 문구를 동행하는 기분으로 찾아보았다. 이런 대목이다.

˝쿠르스카야 지하철역의 아치형 천장에서 나는 새롭게 등장한 스탈린에 대한 찬사를 발견했다. ˝스탈린은 우리에게 사람에 대한 충성을 가르쳤고 노동정신과 영웅주의를 고취시켰다.˝ 찬사는 부조 형식으로 역사 입구 홀의 천장에 돌출되게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아래 사진의 문구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벌것 아니지만 문득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사가 그리워졌다. 특별한 사연은 없지만 모스크바에 체류하던 시절에 자주 이용하면서 친숙하게 된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때묻은 모든 것이 향수의 대상이 되곤 하잖은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타고서 모스크바강의 철교를 다시 건너가보고 싶다. 객차가 다리를 건널 때 울리는 소리를 다시금 들어보고 싶다. 그런 사소한 기계음도 기억의 시간 속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여차하면 모스크바에 다시 가볼까도 싶다. ‘유랑자의 세계‘에 전염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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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2-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사진이 지하철 역의 모습이라는게 놀랍네요.

로쟈 2018-02-09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이 그런 건 아니지만 화려하고 과시적인 역사들이 있습니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오랜만에 강의에서 다루었다. 포크너 자신이 이 소설에 대해 ‘네 번의 실패‘라고 불렀는데(4부로 구성돼 있다) 2주간의 강의는 ‘두 번의 실패‘라고 불러도 되겠다. 충분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강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최소한 4회 정도의 강의가 필요하다. 8시간의 강의 혹은 독서.

역설적일 수 있지만 대개의 작품을 1회 강의(2시간)로 다루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과 평화>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들을 2회(4시간)에 걸쳐 다루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막상 본격적으로 읽고자 하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도 독서모임에서 당초 4회 강의로 계획해서 읽어나가고 있지만 역시나 턱없이 부족해서 1회 연장했다. 그래도 충분히 다루려면 6-8회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그렇게 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대학강의에서라면 한학기 동안 읽어도 되겠다. 소위 ‘천천히 읽기‘이면서 ‘충분히 읽기‘다.

포크너의 작품이 더 소개된다면, 이란 단서를 붙여서 말하자면 <소리와 분노>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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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기형도의 시에 대해 강의하게 되어(그것도 지난해 개관한 기형도문학관에서다!) 역시 오랜만에 기형도의 책을 찾았다가 바로 눈에 띄지 않아 다시 주문했다.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과 2009년 20주기에 나온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문학과지성사)다(30주년이 되는 내년에도 책이 나올까?). 그리고 주문하고 아직 못 받은 책으로 금은돌의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국학자료원)가 있는데 기억에는 최초로 나온 박사학위논문이었다(오래 전에 대략 읽어본 것 같다).

앞의 두권을 오늘 받아서 보니, 새책이라 그런지 감회도 새롭다. 1989년 3월 7일. 그의 기일도 곧 다가오는데, 당시에 부고기사를 접하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몇편의 시들로 기억하고 있었지만(대표적으로 ‘안개‘) 아직 첫 시집도 내기 이전의 시인이었기에.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고 나서야 비로소 뭔가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한 시인이라는 인식도 그때 갖게 되었다. 이후엔 ‘기형도의 모든 것‘. 어떤 시인을 평가할 때 주로 적용하는 기준이다. ˝그래서 기형도보다 중요한 시인인가?˝ 2000년대 시가 아직도 (도래하지 않은) 미래파라는 느낌은 그런 기준 때문. 무엇이 기형도를 기형도이게 한 것인지 오랜만에 다시 읽고 반추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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