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서머타임이 해제돼 포르투갈과 한국의 시차는 한시간이 더 벌어져 9시간이다(바로 이웃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독일과 같은 시간대에 맞춰 포르투갈보다 한 시간 빠르다. 친나치였던 프랑코정권 때 그렇게 맞추었다고 들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 포르투갈은 영국과 같은 시간대를 쓴다. 낮밤이 정반대까지는 아니어도 시차적응이 쉽지는 않다. 한국의 새벽시간인 저녁에 잠이 쏟아지고 한국의 낮시간인 한밤중에는 정신이 또렷해진다.
또렷해진 김에 문학기행 2일차이자 실질적으로는 첫날이었던 어제의 일정을 복기한다. 당초 빡빡할 걸로 예상했지만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만족스러웠다. 현지 생활 10년차라는 베테랑 가이드의 진행이 큰몫을 했고 화창한 날씨도 도움을 주었다. 일교차가 있기는 하지만 리스본의 낮기온은 26도까지 올라가서 우리 9월 느낌을 갖게 했다. 한낮에는 반팔차림이 자연스러워보일 정도.
대략적인 동선. 전용차량을 타고 시아두 지역 카몽이스 광장까지 가서 도보로 바이샤 지구까지 둘러보았다. 다시 차량을 페소아문학관(페소아의 집)으로 가서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1-3층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예약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첫번째 현지식). 이어서 벨렝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가서 산타마리아성당과 회랑을 구경했다. 성당에는 포르투갈의 국가적 인물인 바스코 다 가마와 국민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석관묘가 자리하고 있고 회랑 한쪽에는 1985년 사후 50주년때 이장된 페소아의 묘가 조형물 형태로 위치해 있다. 시아두 지구에 있는 페소아 생가와 카페 브라질레이라의 동상, 그리고 페소아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고 현재는 문학관이 된 집과 무덤까지 둘러보았으니 ‘페소아의 날‘에 어울리는 풀세트였다.
수도원 방문 이후에는 상조르즈 성을 찾아 성곽을 구경하고 리스본의 일몰을 지켜보았다(요즘 표현으로 일몰 맛집). 리스본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알파마 지구의 전망대 두곳(포르타스 두 솔과 산타루지아)을 연이어 찾아 저녁-야경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찍는 장소이면서 사진에 담기는 장소들이었다.
상조르즈 성이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연결돼 있다면(사라마구의 소설 <리스본 쟁탈전>의 소재가 된 1147년 리스본 공성전의 배경이 상조르즈 성이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제국의 역사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대항해시대를 살았던 카몽이스의 대표 서사시가 나오는 건 1572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젊은 왕 세바스티앙 1세에게 헌정하지만 이 비운의 왕은 1578년 모로코 친정에 나섰다가 전사하면서 포르투갈에 재앙을 가져온다(포르투갈은 1580년부터 60년간 스페인에 병합된다). 시신도 수습됐는지 미심쩍은 왕(1582년 펠리페 2세가 세바스티앙의 유해라며 리스본으로 옮겨 제로니무스에 안치했지만 진위는 의심받는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 제국의 화려했던 시절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의 구심점이 된다(세바스티아니즘). 카몽이스와 페소아가 연결되는 주제다.
내가 생각하는 포르투갈 근대문학의 해명은 (1)대항해시대 역사와 그 문학적 상관물로서 카몽이스의 <루지아다스> 읽기, (2)포르투갈 제국의 신화가 페소아의 시집 <메시지>(<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 일부 번역되었고 아직 완역되지 않았다)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해체되는지 따져보기를 실마리로 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자리한 두 국가적 시인의 무덤은 둘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문학사적 해명 이상의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해준다. 포르투갈 근대사의 해명이기도 하니까.
카몽이스에서 페소아로의 이행 구도에서 빠진건 19세기 작가들이다. 낭만주의 최대작가 알메이드 가헤트와 사실주의 최대작가 에사 드 케이로스가 대표적인데, 특히 발자크와 졸라의 소설을 포르투갈 버전으로 바꿔놓은 에사가 중요하다.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 포르투갈 문학을 대표하는 페소아와 사라마구가 에사의 문학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음미해볼 만한데, 나는 세 사람을 잇는 삼각형이 포르투갈 현대문학을 이해하는 간명한 도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페소아에 이어서 오늘 3일차에 사라마구, 그리고 아베이루에 들르는 6일차에 에사 드 케이로스 문학에 대한 짧은 강의를 통해서 나는 이 삼각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풀어보려 한다(이번 문학기행 해설로서의 역할이다). 포르투갈 근현대문학에 대한 도식적 해명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은 이베리아문학의 해명이 과제가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근대문학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가. 포르투갈어로는 왜 ‘돈키호테‘가 쓰이지 않았던가, 등등. 거기에 브라질문학과의 비교도 포르투갈문학에 대한 이해에 매우 요긴한 도움이 될 것이다. 브라질이라,.. 브라질문학기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