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독본>은 미시마의 소설론만을 모아놓은 유익한 선집이다.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건 ‘풍요의 바다‘ 집필 시기에 별도로 연재한 ‘소설이란 무엇인가‘인데, 특히 <새벽의 사원> 탈고 직후에(1970년 초반쯤) 밝힌 소회는 그의 문학관을 잘 엿보게 해준다. 핵심은 문학(작품 내 현실)과 현실(작품 밖 현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소설가의 자유‘라는 것.

이 선택의 보류가 바로 ‘쓰는 일‘(소설쓰기)인데, ‘풍요의 바다‘ 마지막권 <천인오쇠>를 끝낸 날, 마침내 이 보류를 중단한다. 곧 선택의 자유를 행사한다(일본 자위대를 찾아 헌법개정을 위한 결기를 외치고 할복자살). 그런데 그 선택은 문학과 현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학과 현실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작품의 종지부를 찍으며 자신의 생에도 똑같이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미시마의 응답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명인 기질을 가진 예술가 이미지는 작품 내의 현실에 몰입하느라 작품 밖의 현실을 이탈하는 예술가의 모습이고, 앞에서 언급한 발자크의 일화는 미담이 된다. 그러나 두 가지 현실 중 어디에도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두 현실의 대립과 긴장에서 창작 충동의 원천을 발견하는 나 같은 작가에게, 쓰는 일은 비현실적인 영감에 계속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 자신의 자유의 근거를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 자유란 흔히 말하는 작가의 자유가 아니다. 내가 두 종류의 현실 중 어느 하나를 언제 어떠한 시점에서든 결연히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이 자유의 감각 없이는 나는 계속 쓸 수가 없다. 선택이란 간단히 말하면 문학을 버리느냐, 현실을 버리느냐이며, 그 아슬아슬한 선택의 보류를 통해서만 나는 계속 쓰고 있는 것이며, 어느 순간 자유류 확인하면 비로소 ‘보류‘가 결정되고, 그 보류는 즉 ‘쓰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자유도 없고 선택도 없는 보류라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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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앞서 나간 자들

6년 전 페이퍼다. 완독은 못한 책인데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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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로쟈와 함께하는 강제독서'는 올해 과학고전(과학 저자) 읽기로 진행한다. 첫번째 저자는 칼 세이건.그의 대표작 <코스모스>를 <창백한 푸른 점>과 같이 오랜만에 재독하려 한다(이탈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찬조출연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비대면 유료강의이며 단강 신청도 가능하다. 문의 및 신청은 010-9024-5850 김인숙).



로쟈와 함께 읽는 칼 세이건


1강 4월 06일_ 칼 세이건, <코스모스>(1)



2강 4월 20일_ 칼 세이건, <코스모스>(2)



3강 5월 04일_ 칼 세이건, <코스모스>(3)



4강 5월 18일_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1)



5강 6월 01일_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2)



6강 6월 15일_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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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강의에서 읽은 대목이다. 영문학 연구의 발흥 과정을 짚으면서 문학은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라는 걸 이글턴은 웅변한다. 사실 따져보면 이글턴의 책이 여느 문학이론입문서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영문학 연구의 발흥(1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에 처음 읽을 때는 건너뛰기도 했던 장인데 지금은 가장 재미있게 읽게 되는 장이다.

이글턴은 영국이 산업화된 근대사회로 진입한 이후(19세기 중반 이후), 종교가 사회적 구심점(사회적 접합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문학이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요청받았다고 설명한다. 영국은 병들었고 영문학이 영국을 구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것이 영문학이 떠맡은 이데올로기적 임무다. 근대영국이 근대의 표준이 된 것처럼(프랑스대혁명 이후엔 프랑스와 지분을 나눠갖는다) 영문학은 근대문학의 기준이 된다. 19세기 영문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그런 생각에서 봄학기부터 1년간 영문학 다시 읽기를 진행한다. 제인 오스틴부터 D.H. 로렌스까지).

문학은 여러 면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사업에 적합한 후보자였다. 문학은 개방적이고 ‘교화력있는‘ 분야로서 정치적 아집과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에 효능있는 해독제를 제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문학은 내전이나 여성의 억압이나 영국 농민층의 토지로부터의 축출과 같은 자질구레한 역사적 사건들보다는 보편적 인간가치들을 다루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에 대한 더 높은 통제권과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 대한 노동계급의 사소한 요구들을 우주적 원근법 안에 놓는 데 봉사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운이 좋으면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영원한 진리와 미를 고상하게 명상하는 가운데 그러한 사소한 문제들을 망각하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영국 교사들을 위해 만든 빅토리아시대의 한 편람에 쓰인 대로 영문학은 "모든 계급들의 공감과 동포의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빅토리아기의 어떤 작가는 문학이 "근심과 일과 언쟁으로 찬 인간의 천한 생활에서 대하는 소란과 소동, 소음과 혼란"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만나 공동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청명하고 빛나는 진실의 영역"을 열었다고 말한다. 문학은 하층계급을 하나 이상의 관점 즉 그들의 것 외에 고용주들의 관점을 인정하도록 설득하면서 다원주의적으로 사고하고 느끼는 습관이 그들의 몸에 배도록 할 것이었다. 문학은 그들에게 부르조아문명의 도덕적 부를 전달할 것이며 중산계급이 성취한 업적들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줄 것이었다. 그리고 독서는 본질적으로 고립되고 관조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문학은 하층계급이 지닌 집단적 정치행동에로 이르는 불온한 경향을 억제할 것이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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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설국을 가다>는 지난해 1월 진행한 ‘일본근대문학기행(설국 기행)‘의 기록이다. 저자 양기화 선생이 치매병리 전공자이면서 다수의 독서기(양기화의 BOOK소리) 저자라는 사실은 첫날 도쿄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4박5일의 짧은 여정이었음에도 선생은 많은 작품과 자료 독서를 보태서 매우 꼼꼼한 여행기를 지난가을에 펴냈다(지난기을에 진행한 ‘중국현대문학기행‘도 머지않아 책으로 나올 듯싶다). 덕분에 여행의 기억을 상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음달초에 진행할 교토문학기행(다니자키 준이치로외 미시마 유키오 등이 주요 탐사 작가다)을 앞두고 다시 폈다가 일본근대문학관 방문기를 읽었다. 당시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가 특별기획전으로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두고 있다가, 지난해 봄 그의 마지막 대작 ‘풍요의 바다‘가 완간된 걸 계기 삼아 교토문학기행도 기획하게 된 것이었다(대표작의 배경 금각사를 방문한다). 그렇게 꼬리의 꼬리를 무는 게 문학기행이기도 하다(오늘은 <새벽의 사원> 배경이 되는 태국 방콕 문학기행도 궁리해봤다). 이달에 미시마 강의를 마무리하고 나면 내달엔 곧바로 교토로 떠나게 된다. 올해 봄은 교토에서 먼저 맞게 될 듯싶다...

우리 일행이 찾아갔을 때는 2024년 11월 30일부터 2025년 2월 8일까지 이어지는 「미시마 유키오(三島) 탄생 100주년 축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협력전시회의 형태였는데 300엔의 입장료를 따로 받았다.
문학관 입장에 앞서 로쟈 이현우 교수님은 일행을 모아 미시마 유키오의삶과 작품세계를 설명해 주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는 달리 강건한 문체의 소설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무렵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다고 했다. 이현우 교수는 여행기에서 일본 극우의 간판 작가로 소개돼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지만(그러나 극우라는 인상도 ‘연기‘로 본다고 했다), 매우 강렬하고 도발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독자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전시된 자료는 물론 전시를 안내하는 소책자 역시 일본어로만 되어 있었다. 우리말은커녕 영어 자료도 볼 수 없어 전시된 내용을 자세히 알수 없었다. 그저 사진 등으로 분위기만 느껴볼 수 있었는데, 반면 일본인 관람객들은 전시자료를 꼼꼼히 읽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촬영도 금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는 자료가 별로 없다. 일행 가운데 자료를 많이 공유해주셨던 이영혜 님은 전시 내용을 ‘점자로 읽어내는 기분이었다.‘라고 하면서 "전시회 기획자(일본)가 ‘이런 작가의 전시는 전 세계에서 보러올 테니 영어 표기는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잘난 척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적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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