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 저물어가려니까 머리가 무거워진다. 다음 학기부터는 가급적 월요일 강의를 맡지 않든지 해야겠다(그게 뜻대로 될 리 없지만). 더구나 내주엔 입시 한파도 몰아친다고 하지 않는가? 새로운 한주의 시작이 갑자기 끔찍해진다. 게다가 해야 할일들을 생각하니 나도 벤야민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말았으면 싶다. 그런 생각으로 잠시 뉴스나 훑어보다가 <닐스의 신기한 여행> 완간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번역분량이 전3권이니까 어린시절에 내가 읽은 건 반쪽짜리 정도였겠다(지금 딸아이가 읽는 그림책은 줄거리 정도일 테고). 반가운 마음에(이런 날은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싶기도 하므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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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06. 11. 11)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가 쓴 동화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혹은, '여성작가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알려져 있는 셀마 라게를뢰프(1858-1940)의 빼어난 동화 <닐스의 신기한 여행>(배인섭 역·오즈북스 전3권)이 출간 100년을 맞아 한국에서 완역됐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 그림 가득한 축약본으로 번역된 같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장난꾸러기 한 소년(닐스 홀게르손)이 손가락만큼 작아져 거위의 등을 타고 온갖 곳을 떠돌다가 결국은 착한 소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땐 소년이 모험을 겪으며 머물고 떠나는 도시가 어느 나라에 붙어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고, 또한 그 작품을 쓴 사람이 교육자와 작가로서 전국민적 존경을 받았던 여성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사실 본격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동화작가'라면 한수 아래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좋은 동화 속에선 소설이나 시 이상의 감동과 만날 수 있고, 세계와 인간에 대한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바로 이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 그렇다.
1858년 스웨덴 모르바카에서 태어난 셀마 라게를뢰프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또다른 꿈이 있었다. 바로 작가가 되는 것. 그녀가 서른 세 살 되던 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짬짬이 써낸 첫 소설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비장미와 서정적인 문체로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 문단을 놀라게 했다. 이후 1885년부터는 교직을 떠나 창작에만 전념했는데,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쓴 <반그리스도의 기적>이 평론가와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녀에게 '스웨덴이 자랑할만한 작가'라는 호칭을 안겨준 작품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 머물며 쓴 1902년작 <예루살렘>.
이처럼 탄탄한 문장과 빼어난 감수성으로 사랑받던 라겔를뢰프에게 스웨덴 교육계가 한 가지 제의를 건넨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국의 아름다움과 자연, 풍속을 쉽게 알려줄 수 있도록 동화를 써보는 게 어떻겠는가?" <닐스의 신기한 여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그 부탁에 기꺼이 응한 그녀는 1906년 집필을 시작해 이듬해 흥미진진하면서도 교훈 가득한 이야기를 완성시켰고, 그 공로로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성작가 최초의 수상이었다.
스웨덴의 남부 스코네에서 시작해 북쪽 끝자락 라플란드까지 날아갔다 돌아오는 닐스와 기러기들의 여행에 동행하며 스산하지만 아름다운 북유럽의 풍광과 만난다는 것, 호수와 숲 속에서 숨쉬고 있는 동·식물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 또한 신비로운 신화와 전설을 만난다는 건 근사한 경험이다.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그렇다. 거위 모르텐, 우두머리 기러기 아카, 여우 스미레, 거위치기 소녀 오사와 그녀의 아우 마츠, 까마귀 비타키, 독수리 고르고 등 유년시절 기억 속 아득한 이름들을 불러내는 이 동화와 만나는 겨울이라면 춥지만은 않을 듯하다.(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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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좀 엉뚱하게도 <삐삐 롱스타킹>이다. <말광량이 삐삐>(1969)란 영화로 우리에겐 더 잘 알려진 작품인데, 나도 작품을 읽은 게 아니라 어릴 때 TV시리즈로 본 게 전부이다. 이 <삐삐 롱스타킹>을 다시 기억하게 된 건 요하힘 숄이 쓴 '클라시커 50' 시리즈의 <현대소설>(해냄, 2002)에서 <삐삐 롱스타킹>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과 함께 나란히 '베스트 50'에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이런 리스트를 만들 때 누가 <삐삐>까지 고려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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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롱스타킹>의 작가가 또한 스웨덴의 여성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다. "북유럽 현대작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작가"라고 하니까 여성작가로서 라게를뢰프의 적통을 이은 게 아닌가 싶다(알라딘의 소개는 한술 더 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 독자를 가진 작가"!). 흔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이야기하지만, 20세기에 오면 이 '닐스'와 '삐삐'의 산파 두 사람이 다 해먹는 게 아닌가 싶다.
<삐삐 롱스타킹>에 대한 요아힘 숄의 평가는 이렇다: "<삐삐 롱스타킹>은 20세기 후반에 어린이 교육을 개혁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다 큰 아이들도 삐삐처럼 매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강해지고 싶어한다." 매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강해진다? 어른이라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사항들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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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 여사의 책들은 <삐삐> 시리즈 외에도 다수가 번역/소개돼 있다. 한데, 그 중에서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건 '라스무스' 시리즈이다. 원래는 <라스무스와 방랑자>, <라스무스와 폰투스> 두 권인 듯한데, 내가 읽었던 건 한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에 들어있던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였다(<라스무스>의 저자가 린드그렌이라는 건 이번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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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자유로운 방랑자가 맨발로 진흙탕을 지날 때 발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쾌감을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이 이후로 내겐 자유의 한 가지 표상이다. 한데 이젠 닐스처럼 거위의 등을 타고 날아가지도 라스무스처럼 맨발로 세상을 방랑하지도 못하는 처지로구나. 동화의 바깥 세상은 쌀쌀하다. 곧 겨울이 되리라. 다시 <성냥팔이소녀>나 읽어야겠다...
06.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