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새로나온 책들을 검색하다가 괴테(1749-1832)의 <서동시집>(문학과지성사, 2006) 완역본이 출간된 걸 알게 됐다. 지난 2002년에도 <서동시집>(시와진실)이라고 출간된 적이 있지만, 분량으로 보아 완역은 아니었던 듯싶다. 마땅한 리뷰가 올라오길 기다렸는데, 마침 서울신문의 리뷰 기사가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페이퍼의 제목을 '괴테와 하이젠베르크'라고 단 것은 <서동시집>이 연상시켜주는 이름이 단연 <부분과 전체>의 저자 하이젠베르크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학부시절에 읽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있는 대목은 젊은 시절에 그가 독일의 휴양지에서 양자역학에 몰두하고 있었을 즈음에 대한 회상이었다. "잠은 조금도 자지 않았다. 하루의 삼분의 일은 양자역학 계산을 했고 삼분의 일은 바위에 기어올라갔으며, 삼분의 일은 괴테의 <서동시집>을 외웠다."

이 '전설적인'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잠은 조금도 자지 않았다!), 여하튼 이 물리학자의 고백이 그러하며 <서동시집>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 대목에서 결정되었다. 해서 올해 출간된 새 <괴테 자서전>과 새 번역 <파우스트>들과 함께 <서동시집>의 출간은 '한국어 괴테'의 귀중한 성과이면서 개인적인 반가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이젠베르크식으로 이 책을 읽는 건 곤란하겠지만(어느 바위산을 기어올라야 하나?).

소개에 따르면, <서동시집>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주창한 '세계 문학'의 이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시집"으로서 "헤겔이 '괴테의 저작 가운데 가장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꼽은 바 있다. 괴테의 '세계 문학' 이념은 각 민족이 지니고 있는 개별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데 의의를 둔다. <서동 시집>은 괴테가 아랍 세계와 서구에 큰 영향을 끼친 페르시아의 대시인 하피스에게 보내는 시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극심한 분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괴테는 당시 독일어로 번역, 출간된 하피스의 시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고, 거기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싶은 강한 창작 의욕을 느꼈던 것."

"괴테는 시의 주제와 형식면에서 하피스를 모방하면서도 새로운 형식 실험을 시도한다. 이러한 태도에는 새로운 것과 낯선 것을 받아들여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내적 조화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족 간의 이해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창조적 정신이 살아 숨 쉰다. 모두 239편의 시를 12개의 시편(Buch)에 나누어 묶은 연작시 형식이다. 번역은 한국괴테학회 산하 단체인 괴테 독회 회원 17명이 공동으로 작업했다. 6년에 걸친 토론을 통해 번역상의 오류를 수정하고, 최종적으로 대표 번역자인 한국괴테학회 회장 안문영 교수가 통일된 문체로 조율하였다." 하여, 노작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아래는 리뷰 기사이다. 이번에 알게 된 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존재인데, 사실 '서동시집'을 영어로 검색해보면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 오케스트라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생각의나무, 2003)에 관련내용이 나와있을지 모르겠다.

 

서울신문(06. 11. 10) 괴테, 순수한 동방을 노래했다

“북쪽, 서쪽, 남쪽이 산산조각 나고/왕좌들은 부서져 왕국마다 떨고 있으니/달아나라 그대여, 순수한 동방에서/옛 족장들의 숨결을 맛보아라/사랑과 술과 노래 더불어/키저의 샘물이 그대를 젊게 하리니.” 독일의 문호괴테가 쓴 ‘헤지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헤지르는 마호메트가 기원 622년 고향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이주해 이슬람의 기원을 세운 사건을 가리키는 아랍어 ‘헤지라’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 괴테는 아랍 문화가 프랑스를 통해 유입됐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프랑스어 번역을 택했다.

괴테는 일찍이 ‘세계문학’을 주창했다. 문학이란 모름지기 각 민족이 지닌 개별성을 존중하는 한편 인류의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세계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데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괴테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글을 썼다.‘서동(西東) 시집’(안문영 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괴테의 그런 문학관이 그대로 녹아 있는 세계문학의 모델이 될 만한 작품이다.

괴테는 근대 유럽이 마지막으로 낳은 ‘보편적 천재’, 근대 최고의 교양인으로 불린다. 시·소설·희곡 등 문학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해부학·광학·식물학·광물학 등 자연과학 부문에서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게르만적이고 현학적인 자만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시각을 얻기 위해 괴테는 이슬람 세계와 중국은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였다.

‘서동 시집’은 괴테가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의 시들을 읽고 감흥받아 지은 연작시 형태의 시집이다. 239편의 시가 12개의 시편으로 나뉘어 묶였다.‘서동’은 유럽과 동양의 세계를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 괴테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국수적인 민족주의로 인해 유럽이 극심한 분열에 빠진 데 대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때 읽은 하피스의 순결한 시들은 괴테로 하여금 내면의 원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할 만큼 충분히 감동적인 것이었다. 노시인의 눈에 비친 동방 세계는 신과 족장의 권위를 경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시인의 노래를 사랑할 줄 아는 순수의 땅 그 자체였다.‘서동 시집’은 그처럼 젊고 순수한 동방에 대한 찬가다.

“존경하는 마음으로/그대의 질문에 답하노라/내가 복 받은 기억력 덕분에/‘코란’이 명한 유언을/고스란히 간직하고/경건한 자세를 지녀/평범한 일상의 해악이/나뿐만 아니라/선지자들의 말씀과 그 씨앗을/소중히 여기는 자들을 건드리지 못하므로/내게 그런 이름을 주었노라.”(‘하피스’중에서) 아랍어로 하피스는 ‘코란’을 완전히 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새롭고 낯선 문화를 받아들여 내적인 조화를 이룩하고 민족간의 이해를 도모하려는 드넓은 포용의 정신이 전편에 넘쳐 흐른다.

괴테는 동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르코폴로를 비롯해 하피스의 시를 번역한 폰 하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왜곡된’ 동방수용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괴테의 이 같은 깨어 있는 의식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1998년 유대 출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대·아랍 민족간의 화합을 위해 만든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라고 지은 것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책에는 괴테가 ‘서동 시집’에 실린 시들의 내용과 문체가 당시 독자들에게 낯설게 비칠 것을 염려해 지은 ‘서동 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도 함께 실려 있어 관심을 모은다.(김종면 기자)

0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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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2006-11-13 22:51   좋아요 0 | URL
이번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책과 달리 요전에 나왔던 시와 진실판은 괴테가 직접 쓴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가 빠진 채 시만 번역되어있습니다. 번역은 의역과 직역의 차이인지, 개인번역과 공동번역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시와 진실판이 부드럽고 훨씬 시다운 번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쟈 2006-11-13 23:37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라면, 좀 유감스러운 일인데요. 더 나중에 출간된 책에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한국괴테학회의 역량이 반영된 책이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