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엔 모스크바에서 온 친구와 술을 마시고 토요일 아침 일찍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러 나갔다가 연속으로 늦게 귀가한 탓인지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이지만 강의일정부터 조정해야 하게 생겼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하는 탓도 있지만 체력이 바닥이다. 생각없이 인터넷에 띄워져 있는 글들을 그냥 뒤적거려보다가 지난 2000년말에 출간된 쿤데라의 <향수>(민음사)에 대해 몇 마디 적어놓은 걸 발견했다. 아마도 2001년초쯤에 씌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겠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후보로 언론에 오르내리던 밀란 쿤데라(1929- )도 최근 몇년간은 수상권에서 멀어진 듯하다. 얼마전에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더니 <소설의 기술>과 <배반당한 유언>(국내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출간)에 이은 세번째 에세이집 <커튼(Le rideau)>(2005)이 <향수> 이후에 출간돼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이 좀 의아한데 조만간 번역되기를 기대한다(영역본은 2007년 2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럼, 쿤데라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잠시 떠올리게 해준 토막글을 옮겨놓도록 하겠다. 어투에서 알 수 있지만 간단한 댓글로 씌어진 것이다.

 

 

 

 

버스나 전철에서만 읽다 보니, 아주 느릿하게 읽게 되었는데, 어제 드디어 <향수>를 한번 읽었습니다. 저는 책읽기란 언제나 다시-읽기(re-reading)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감상은 아주 소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처음 읽는 것은 그것이 두번 읽을 많한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 읽는 것이죠...  

**님의 자세한 감상을 읽어 보았습니다. 조세프와 이레나에게 보다 많은 비중이 두어져 있지 않은 것이 다소 의외였으나 여러 가지 핵심을 잘 짚어놓으셨더군요. 특히 맨마지막 결론은 별다른 유보 없이 동의합니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34장입니다. 삶의 유한성, 보다 정확히는 우리 수명의 한계 때문에 온갖 정념이 발생하는 거라는 주장이요. <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장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토록 일찍 죽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뭔가를 알기에는 너무 일찍 죽는다는 것. 제 생각엔 이것이 쿤데라의 핵심적인 전언이기도 하고, 그의 실존론의 집약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장르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애매한 이유는 우리가 모든 걸 분별있게 알고 이해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죠. 즉 충분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그 점에서 무지는 실존의 유한성(=일찍 죽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70세를 넘긴 쿤데라의 나이를 생각했습니다. 미소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것이 어떤 미소인지는 명확히 말하기 힘들군요...

그 다음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51장입니다. 조세프와 이레나가 정사를 나누고, 그의 무지에 대해 그녀가 히스테리를 부린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오랜 울음을 울다가 지쳐 잠이 듭니다. "이러한 뜻밖의 변화는 슬플 정도로 우스꽝스러웠다"고 쿤데라는 쓰고 있는데, 호메로스에게서도 읽을 수 있는 이런 대목을 '전면적 진실'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그녀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습니다. 그리하여 <향수>의 이 장은 그녀의 음부, 여성의 성기에 관한 관찰/성찰에 바쳐져 있습니다(*김훈적인 테마 아닌가?).  

조세프는 "오랫동안 마법이 풀린 이 불쌍한 곳을 쳐다보았으며 커다란, 커다란 슬픔에 사로잡혔다."라고 쿤데라는 적고 있는데, 그 커다란 슬픔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다음장의 밀라다의 얘기에서 암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육체라는 공포, 육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공포"가 빚어내는 슬픔이 아닐까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성의 음부(자궁)이란 우리의 육체적 형태의 모태이자 근원이니까요.

향수/귀환을 주제로 한 이 소설에서 쿤데라는 자궁(모태)회귀 본능 또한 테마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향인 프라하에서(프라하는 유럽의 자궁인가?), 또 고향인 여성의 음부 앞에서 느끼는 슬픔. 삶의 유한성, 일찍 죽는다는 것과 우리가 육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 <향수=무지>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그러한 앎을 되새기게 해주면서 마감되고 있습니다. 벌써 저녁이군요...

 06.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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