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가 로베트르 발저(1878-1956)의 산문과 단편 선집이 한권 더 출간되었다. <세상의 끝>(문학판, 2017). 최근에 독문학계에서 발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는 전언도 들은 바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때맞춰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 나와서 바로 구입했다.

 

 

 

발저의 책으로는 배수아 번역의 <산책자>(한겨레출판, 2016)와(민음사판은 <산책>)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벤야멘타 하인학교>(문학동네, 2010) 등이 나와 있다. 올 한해 독일문학 강의를 꾸준히 해온 게 나름의 성과인데(현재도 진행중이고) 내년에는 발저와 제발트까지 다루는 게 목표다. 발저의 경우는 3-4강 정도의 강의를 진행할 수 있겠다.

 

생몰연대로 알 수 있지만 발저는 카프카와 동시대 작가다. 그리고 카프카를 비롯해서 벤야민과 헤세 등에 영향을 미쳤다. "작가 로베르트 발저는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발터 벤야민 등에게 격찬을 받았으나 생전에 작가로서 명성을 누리지 못하고 일생을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그러다 1970년대 그의 작품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이 새롭게 이루어지면서 스위스에서 국민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일단 관심사는 카프카와 벤야민, 그리고 발저 사이의 커넥션이다. <카프카 문학사전>(학문사, 1999)에서는 '로베르트 발저' 항목에서 카프카와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카프카의 작품을 최초로 다루었던 비평가들은 발저와 카프카 사이의 유사성을 확인했다.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의 단편집 <관찰>이 발저를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고 질책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단어와 대상 사이의 전통적 의미의 해체, 간결한 언어의 표현, 절망의 원칙 등을 들 수 있다."

 

요컨대 카프카의 첫 책 <관찰>(1912)이 발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발저의 '작은 문학'은 카프카의 '단편산문'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도움을 준다. 수전 손택은 발저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발저의 작품에 나타나는 윤리의 핵심은 권력과 지배에 대한 저항이다. 발저의 힘은 고도로 세련된 예술의 힘이다. 그는 진실로 놀라움과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 작가이다." 권력과 지배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 바로 발저와 카프카를 같은 범주로 묶어준다.

 

 

 

이 '작은 문학'은 벤야민과의 연결고리도 되는데, <베를린의 유년시절>(<베를린의 어린시절>)과 단편들(영어판이 <이야기꾼>이라고 나와서 구입했다)의 벤야민을 '발저적'이라고 읽을 수 있겠기에. 발저와 카프카, 그리고 벤야민의 단편산문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보고 내년 카프카 강의에서부터 적용해봐야겠다.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비롯해서 얼마전 특강까지 한 책, 게르하르트의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에디투스, 2017), 들뢰즈/가타리의 <카프카>(동문선, 2001), 블랑쇼의 <카프카에서 카프카로>(그린비, 2013) 등도 참고할 책들. '카프카와 로베르트 발저'도 연구 과제 가운데 하나로 올려놓는다...

 

1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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