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후에 한 시간여 잠을 보충하고 나서야 정상 컨디션이 되었다. 강의자료들을 식탁에 늘어놓고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이라 손에 잡히는 시집을 읽었다(손쉬운 게 시집이다). 사실은 이미 읽었던 시집이다. 이민하의 <세상의 모든 비밀>(2015). 첫 시집 <환상수족>으로이름을 알린 시인이다.

‘세상의 모든 비밀‘은 근사한 제목이지만 막상 시들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했다는 기억을 다시 읽으며 확인했다. 시집을 빨리 읽는(빨리 읽어야 한다면) 요령이 있다면 처음 두어 편과 표제작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 시집의 첫 시는 ‘원근법‘이다. 비오는 날의 풍경을 묘사한 시다. 혹은 그래 보이는.

검은 우산들이 노란 장화를 앞지르고 있었다
차도에는 강물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머리가 지워진 사람과 발목이 잘린 아이들이 떠내려 간다

아마도 ‘강물‘ 정도의 빗물이라면 장맛비인지도. 그렇지만 풍경묘사가 아주 새롭진 않다 우산에 가려 ˝머리가 지워진 사람들과 발목이 잘린 아이들이 떠내려간다˝는 것 정도니까.

오후에 떠난 사람과 저녁에 떠난 사람이 똑같이
이르지 못한 새벽처럼

한 점을 향해 가는
길고 긴 어둠의 외곽 너머

원근법의 소실점이 죽음의 은유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추상적인 진술로 일관하고 있어서 와닿지 않는다.

텅 빈 복도에 서서
눈먼 노인과 죽어가는 아이가 함께 내려다보는
마르지 않는 야경 속으로

몇 방울의 별이 떨어졌다

시의 엔딩이다. ˝마르지 않는 야경˝은 계속 비가 내리는 풍경이다. 그 야경의 소실점에는 죽음이 있다. 비와 죽음이 ˝몇 방울의 별˝이라는 이미지로 응축된다. 그렇지만 ‘눈먼 노인‘과 ‘죽어가는 아이‘ 같은 좀 상투적인 표현이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가 죽음을 향하고 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죽어간다는 것 정도가 시의 메시지라면 새로울 게 없고 표현도 놀랍거나 감동적이지 않다. 시집 전체가 이런 기조다.

표제시인 ‘세상의 모든 비밀‘도 기대에 못 미친다. 대단한 비밀을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뭔가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은가.

나는 옆집 아이의 태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 애 아빠의 정치적인 비밀을 알고 있다
왜 그들은 내게 입막음을 안 하나

하루아침에 미용실 여자가 미인이 된 까닭을,
편의점 남자가 시인이 된 까닭을, 그들이 손잡고 구청에 간 까닭을,
석달 후 남자 혼자 구청에 간 까닭을 나는 알고 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이 첫 두 연이 아니다. 이런 비밀들의 목록은 한참 더 이어질 수 있었겠다. 한데 시인은 독자보다 먼저 진절머리를 낸다.

여자의 머리색이 남자의 정치색과 어울려
신발 속에 감춰진 짝짝이 양말처럼 아무도 모르게
호들갑을 피우는 오후

그나마 구체적이었던 비밀의 세목이 ˝여자의 머리색˝과 ˝남자의 정치색˝으로 일반화되면서 시의 재미도 꺾여버렸다. 이후에 만회도 되지 않는다. 가령,

지하철 남자의 의족이 지상의 물결 위로 떠오를 때
인어공주가 되는 이야기
아름다운 두 다리의 침묵에 대하여

같이 뭔가 절묘한 비유라도 되는 양 뽐내지만 식상하기 짝이 없는 진술들로 이어질 때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시집의 자세한 해설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시가, 시로서 왜 실패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어봄직하다...

PS. 페이퍼를 쓰는 중간에 저녁을 먹고 영화 <남아있는 나날>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정말 두 주연 배우의 이미지 빼고는 기억에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영화였다. 물론 다시 보니 원작뿐 아니라 영화도 빼어나다. 더불어 2차세계대전이 한 시대의 종말었는가를 다시금 알겠다. 그런 종말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시구로는 안톤 체호프도 떠올리게 한다. 차이라면 이시구로는 ‘종말 이후‘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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