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늦잠을 자고서 식탁에 앉아 늦은 아침(에 해당하는 것)을 먹으며 논문을 읽다가 손 가까이에 있어서 이병률의 <눈사람 여관>(문학과지성사)을 뒤적였다. 일거리로 써야 할 페이퍼는 많지만, 또 읽은 김에 몆자 적는다. 눈길이 멎은 시에 대해.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법하고 시상도 일견 단순하다. 그런데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해가 진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느라
다리를 건너다
다리에서 한없이 쉰다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그 이유에 관여하는 것들이 우주의 속살로 썩는다

생각을 앉히고
생각 옆으로 가 앉지만
나는 지렁이

나는 나만을 생각하여서
나에게 던진 질문 따위로 흘러내리고
그러고도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할 수 없음을 방관하면서

‘나는 나만을 생각한다‘와 ‘해가 진다‘를 연결한 것이 시의 착상이다.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고 나는 나만을 생각하는 바람에 우주의 속살이 썩는다. 우주까지 갈 건 아니고 지구가 자기 손금대로 살지 못한다. 이 시에서 재밌는 대목은 나만을 생각하는 바람에 시답지 못한 시행들도 방관한 점이다. ˝그 이유에 관여하는 것들˝이라든가 ˝그러고도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할 수 없음을 방관하면서˝는 지극히 비시적인 표현들이다. 이런 구절을 포함하려면 명분과 작업이 필요하다. 이 시에는 그게 마련되어 있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해가 진다
고개를 들 수 없는 땅을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가야 해서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참으로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이다

이 시의 착상이 ‘해가 진다‘와 ‘나는 나만을 생각한다‘를 연결시킨 것이라고 했는데 그 둘 사이에 인과성이 있다.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참으로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이다˝ 말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진정 나만 생각했다면 해가 지거나 말거나 방관했을 터이며 자책도 갖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지렁이‘로서 나는 그렇게 자책한다.

이 자책은 시적이지만 논리적이진 않다. 사실 지렁이는 지구 생태계의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인 것. 고작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기어가려고 자기 생각만 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해야 하지만 자신을 지렁이에 빗댄 시적 화자는 자기 생각만 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한사코 나만 생각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나에게로만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마지막 연이다. 별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은유이자 대체이므로 사람들이 혹은 애인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내 생각만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도 더 멀어질 테고. 그게 ‘해가 진다‘는 표현의 함축이다(별도 진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착상과 비유다. 문제는 애먼 지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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