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준비차 블라지미르 오도예프스키의 <러시아의 밤>(을유문화사)를 읽다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란 표기가 나와서 잠시 검색을 해보았다. 우리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고 부르는 15세기 탐험가의 이탈리아어 이름이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다. 아직 뉴스기사나 인터넷 사전에서 콜럼버스가 콜롬보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너무 친숙해진 이름이어서 변경에 대한 거리낌도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한 것은 고유명사의 번역 문제인데 예전에 ‘어륀지‘(오렌지) 파문이 한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싶다. 의견 차이가 커서 정리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겠고. 오렌지는 고유명사가 아니니까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공통적인 것은 우리말 표기에서 원음주의(원음 충실주의)를 어느 수준까지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원칙적으로는 원음주의가 절대적으로 옳은/우선적인 기준이냐라는 문제도 걸려 있다.
생각나는 사례가 도시명의 표기인데 작고한 안동림 선생은 ‘시카고‘란 도시이름은 반드시 ‘쉬카고‘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게 원음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출판사 창비는 자체적인 외국어 표기법을 갖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일본 수도 ‘도쿄‘는 ‘토오꾜오‘라고 적어야 한다(창비 출간서에서는 그렇게 표기한다). 그것도 원음이 그에 가깝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이 두 표기는 아직 우리사회의 통용 표기는 아니다. 원음(현지음)도 고려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가장우선적인 고려사항은 아니기에 그렇다.
가령 <러시아의 밤>의 저자 ‘블라지미르 오도예프스키‘를 현행 외국어표기법에 맞게 고치면 ‘블라디미르 오도옙스키‘가 된다. ‘블리디미르‘와 ‘블라지미르‘의 차이는 구개음화된 ‘di‘의 음가를 어떻게 읽어줄 것이냐의 차이다. 구개음화를 반영하면 ‘지‘에 가깝고 철자만 그대로 옮기면 ‘디‘가 된다. 그런데 ‘오도예프스키‘와 ‘오도옙스키‘의 차이는 정반대다. ‘오도옙스키‘에서 ‘옙‘이 실발음의 근사치를 표기하기 위한 조처라면 ‘오도예프스키‘의 ‘예프‘는 철자를 분리시켜서 표기했던 예전 표기법의 관행을 따른 것이다(‘도스토옙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다). 두가지 조합 모두 어떤 일관된 원칙이 적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블라지미르 오도옙스키‘와 ‘블라디미르 오도예프스키‘로 표기한다면 나름 일관적일 테지만).
외국어 표기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행과 합의다. 관행을 존중하되 타당한 근거(원음주의는 그 근거 가운데 하나다)에 따라 합의로 변경가능하다는 것. 남아공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현재는 남아공을 떠났지만) 존 맥스웰 쿳시(Coetzee)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코에체‘라고 표기됐었고, 지금도 일부 백과사전에서는 ‘쿠체‘라고 읽는다. 대체 철자만 갖고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철자중심주의의 한계다). 당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쿳시‘라고 부른다고 하여 이후에는 ‘쿳시‘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관행으로 굳어지기 전에 표기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코에체‘로 굳어졌더라도 나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우리(한국어사용자)끼리의 합의의 문제라서다.
각 언어는 발음과 표기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맞추려고 할 때 어륀지 사태 같은 해프닝이 벌어진다. ‘헤겔‘ 같은 독일철학자를 프랑스에서는 ‘에글‘이라고 읽고 러시아에서는 ‘게겔‘로 읽는다. 그런 경우 ‘에글‘과 ‘게겔‘은 이미 프랑스어와 러시아어에 체계에 들어가 있기에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넘어선다. 러시아에 있을 때 서점에 가서 ‘조지 오웰‘의 책을 찾다가 낭패를 겪은 일이 있는데 오웰은 러시아어로는 ‘오루엘‘이라고 읽는다. 곧 영어(오웰)와 러시아어(오루엘)의 차이를 알지 못해서 빚어졌던 해프닝.
공연히 긴 얘기가 되어 버렸는데, 다시 콜럼버스 문제로 돌아오면 문제는 이것이 한국어인가 아닌가, 곧 외래어가 된 고유명사인가 여전히 외국어인가, 이다. 한국어 체계라는 문턱을 넘어온 것인가 아니면 아직 그 바깥에 있는 것인가. 한국어 체계 안에 들어와 있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사람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를 이르는 한국어다. 이 경우 ‘콜롬보‘는 음역이지 번역이 아니다. ‘쉬카고‘나 ‘토오꾜오‘나 ‘어륀지‘가 번역이 아니라 음역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번역은 한 자연어를 다른 자연어로, 우리의 경우엔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더 복잡할 테지만 외국어 고유명사 표기에 대한 나의 견해는 대략 이러하다. ‘콜롬보의 달걀‘은 한국어가 아니라는 얘기를 길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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