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광명을 지났다. 그런데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오랜만에 펼쳐든 터라 머릿속은 무진행 버스 안에 있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로 갈아탄 뒤 덜커덩거리는 시골길을 달리는 중이다. 그 덜커덩거림은 상상이 필요하다. KTX에서는 턱관절이 덜그럭거릴 정도의 진동을 경험하기 어려우니까.

하루 일정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가방(오늘은 임시로 여행가방)에 충분한 읽을 거리를 넣었다. 처음엔 다섯 권을 넣었다가 무거워서 두 권을 뺐는데, 그래도 세 권이면 이틀 읽을 거리는 될 터이다. <무진기행>과 토마스 만 중단편집은 당장 월요일에 강의할 책들이다. 토마스 만의 작품 가운데서는 ‘토니오 크뢰거‘와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주로 다룰 예정. 그리고 어젯밤에 받은 이글턴의 <문학 이벤트>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오늘의 동행들이다.

무진은 가공의 지명이고 실제로는 전남 순천이 모델이다. 안 가본 곳이 한둘이 아니지만 순천 또한 내게는 이름만 친숙한 도시다(외가가 광주라서 안 가보고도 가본 것처럼 여겨지는 도시가 목포나 순천이다). 책을 읽다보니 무진의 안개, 순천의 안개를 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문학기행차 빈과 프라하도 다녀오는데 순천에 못가본다는 것도 말은 안된다. 내주에는 하동에도 처음 가볼 예정인데, 하동과 통영 등도 내게는 런던과 파리처럼 책에만 있는 지명들이다.

‘문화유산답사기‘를 쓸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한국일보의 김훈, 박래부 기자가 연재했던 ‘문학기행‘의 루트를 되밟아보아도 좋겠다 싶다.

오늘밤 늦게 귀가하면 어제 주문한 김승옥 소설전집이 배송돼 있을 것이다. 오며가며 나는 내내 무진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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