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페이퍼 거리들이 있다고 했는데 남미 시인(페루 출생) 세사르 바예호(1892-1938) 시선집 얘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앞서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문학과지성, 1998)란 제목으로 나왔던 시선집의 개정증보판이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2017).

시집이 다시 나온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는데 편집자가 바예호의 시에 대해 예전에 적은 글에서 추천사로 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고 연락해와서다. 인용된 문장은 이렇다. ˝한때 인생이 아주 싫었던 날들에 나는 바예호의 시를 읽으며 버텼다‘˝

내가 염두에 둔 건 표제가 된(정확히는 ‘되다 만‘) 시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이다. 이 제목이 좀 길게 여겨졌는지 개정판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까지만 제목으로 취했다. 원시는 따로 제목을 갖고 있지 않아 관례상 첫 행을 제목으로 삼는데 그렇더라도 첫 행은 다 제목에 포함시켰으면 더 좋았겠다. 시의 첫 연이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내 전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내 말 뒤에 숨어 있는
혀에 한 방을 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연.

엎드려서 사는 거라 해도 산다는 것은 어쨌든 늘 기분 좋은 일일 거야.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다니! 그리고 많은
세월이었건만늘, 언제나, 항상, 항시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니!‘
이렇게 나는 늘 말해왔고 지금도 말하니 말이다.

이런 구절을 읊조리며 버티던 때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건 번역으로도 뭔가 통하기 때문인데,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는 시만 하더라도 너무도 잘 이해되지 않는가!

이제 개정판도 다시 나온 김에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싶을 때마다 바예호의 시를 한편씩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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