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에 자꾸 쌓이는 책들을 좀 털어내보려고 한다(머릿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이 벌레들!). 이번에 다룰 책들을 뭉뚱그리자면, "곤충들의 도서관에서 세계의 명작들을 읽으며 내면의 침묵에 빠져들다가 끝내 국경을 넘어 중세로 달아나버린 한 책벌레"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이 이야기에 캐스팅되지 않은 책들은 또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럼, 먼저 '전략의 귀재들, 곤충'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제일 먼저 꼽을 책은 토마스 아이스너의 <전략의 귀재들, 곤충>(삼인, 2006). 원제는 'For Love of Insects'(하버드대출판부, 2005)이고 원서의 표지는 국역본의 표지와 같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파리 종류인 거 같다. 국역본의 제목은 다소 튀는데, 같은 제목이더라도 '곤충, 전략의 귀재들'이라고 배치하는 게 보통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아이스너 교수는 코넬대학의 석좌교수인데, 동물행동학과 생태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아주 작고 놀라운 곤충의 세계. 반세기 동안 우루과이, 호주, 파나마, 유럽, 북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관찰하고 실험하여 발견한 곤충들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고. 특히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곤충들의 생존 전략, 진화에 승리한 비밀을 해독해내는 과정과 연구 순간순간을 포착한 원색 사진들이 돋보인다"고 한다.

568쪽 분량에 책값도 5만원에 육박하지만, 사실 이 정도 설명뿐이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한데, 역시나 세계적인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이 책은 프랑스의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를 계승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유능하고 열정적이며,박학다식하고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동물학자가 반세기 넘는 시간을 곤충에 투자한 노력의 산물이다"라는 최상급의 추천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 흔한 말로 '강추'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더 눈길을 주는 수밖에(참고로, <파브르 곤충기>는 아직도 완역되지 않은 듯하다. 분량이 방대하긴 하지만).

거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 곤충>(다른세상, 2005)의 저자 메이 베렌바움이 거들기를 "곤충학의 세계에도 초인적인 영웅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토머스 아이스너일 것이다. 톰은 화려한 업적을 쌓아오면서 곤충이 화려한 색상이나 기이한 돌기, 아주 고약한 분비물을 지닌 이유를 수도 없이 밝혀냄으로써,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과학자들의 기를 꺾어왔다. 이 책에서 그는 재치 넘치는 문체와 입이 떡 벌어지게 멋진 사진들을 통해 흥미진진한 과학의 세계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곤충과 그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정도 밀어주는 분위기라면 소장용 도서로 꽂아두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원색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니까 초등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도 유용할 듯싶다. 어른이야 곤충을 '사랑할'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두번째 책은 책벌레들의 전당, 도서관에 관한 것이다. 로널드 맥케이브의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이채, 2006)이 그것인데, 딱히 이 책에 주목해서라기보다는 그간에 도서관을 표제나 주제로 해서 나온 책들을 이 참에 호명해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령, 얼마전에 출간된 최정태 교수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06)이 소장가치로는 더 앞선다.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책들도 있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미궁 같은 도서관의 모델의 되었다고 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책도 눈길을 주어볼 만한 책이다.

원제가 'Civic Librarianship: Renewing the Social Mission of the Public Library'(2001)인 신간은 '도서관과 사서의 위기 극복을 위한 철학적 고민'이란 부제를 갖고 있으며, "책은 미국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펼치며 도서관 사서들이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시민사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미국 공공도서관 역사를 짚어가며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의 새로운 공공도서관의 청사진을 이야기한다"는데, 순전히 미국적 상황과 처지에 관한 내용일 듯하지만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 등에서 촉발된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여론을 보다 체계화/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보인다.

아마도 도서관 사서들의 연수교재용으로 딱 알맞아 보이는데, 이 '공적인 책'에 따분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들의 풍광을 잠시 훔쳐보아도 좋겠다(저자는 러시아 도서관들을 훑어볼 포부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부가 절로 될 만하지 않는지?.. 

 

 

 

 

그럼, 우리의 아름다운 (가상의) 도서관에서 무슨 책들을 읽어야 할까? 최근에 나온 따끈따근한 고전 명작들은 어떻겠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학사에서나 자주 접하던 프랑스 작가 테오필 고티에(1811-1972)의 <모팽양>(열림원, 2006)이다. <미라 이야기>(열림원, 2006) 같은 청소년물이 지난 7월에 출간되기도 했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의 주창자 고티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이런 유미주의 작가로 가장 유명한 이로는 영국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있다).

작가 고티에가 고작 24살 때 발표한 작품이라는 <모팽양>은 "관습적인 성역할을 넘나드는 여주인공을 통해, 사회적 성정체성인 젠더(gender)를 치열하게 성찰한 작품"으로 "주인공 '모팽 양'의 실제 모델은 17세기의 남장 여가수이자, 후에 모팽 부인이 되는 '마들렌 도비니 양'이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자존심이 높았고, 기사복을 입고 다녔으며, 결투를 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봤을 때도 다소 '전복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듯한데, "이 작품은 1835년 출간되어 발자크, 위고의 극찬을 받았고, 당시의 프랑스의 고전비평과 부르주아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히 동시대 공리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아름다움의 무용성을 극단적으로 주창한 서문은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니 작가의 나이는 잠시 잊어주는 게 좋겠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버티고, 2006)도 최근에 나온 작품이다. 한데 엄밀히 말하면 이미 출간됐던 작품이다. 지난 1990년에 나온 중앙일보사의 소련동구문학전집 중 한권으로 밀란 쿤데라의 <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과 함께 묶여 있었던 것이다. 중앙일보사판은 역자가 이윤기씨로 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이 "국내 최초의 체코어 완역본"이라는 건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무려나 흐라발은 쿤데라와 함께 체코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하다. 안면이 좀 있었던 체코출신의 한국 유학생은 대단한 작가라고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적이 있었다.

그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1965년 작인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를 배경으로, 독일에 점령당한 체코인들의 삶을 그렸다. 냉혹한 현실에 우스꽝스러운 등장인물들을 배치,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수습 역무원 흐르마는 소심한 성격의 스물두 살 청년.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나 3개월 만에 근무에 복귀한다. 하지만 독일군에 점령당한 기차역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총살당할 뻔하고, 화물차량 가득 실려 오는 아사 직전의 불쌍한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해서, "파시즘에 저항하는 영웅적인 이야기이지만, 진한 휴머니즘도 내재되어 있다. 체코에서 영화화되어 196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영화의 스틸 사진들은 보시는 바와 같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앙일보사에서 펴낸 '소련, 동구 현대 문학전집'에 이윤기 씨의 영어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여기 내용이 다 나오는군). 함께 실린 단편 '간이주점'은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결혼 피로연이 열리는 왁자지껄한 간이주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곧 분량도 많지 않으므로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 유쾌하게 다 읽을 만한 소설이겠다.

그리고, 또 우리에겐 <주홍글씨>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국작가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의 장편소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문학과지성사, 2006). "사회주의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모인 남녀들의 다층적인 연애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1852년 발표되어 '호손의 형식 미학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번에 국내에 초역된 작품이라고.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부근, 일군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고 '블라이드데일'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행복의 골짜기라는 뜻처럼, 처음 이 공동체 생활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고무적으로 펼쳐진다." 호손의 지명도를 고려하면 한번쯤 읽어둘 만한 작품이겠다.

 

 

 

 

네번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내면의 침묵>(열화당, 2006)이다. 이번에 그의 에세이집 <영혼의 시선>(열화당, 2006)이 같이 출간됐다. 지난 여름에 출간된 평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유문화사, 2006)까지 갖춰놓으면, 게다가 좀 무리해서 사진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그는 누구인가>(까치글방, 2003)까지 마련해놓으면 국내 출간된 '브레송 컬렉션'은 일단 완벽하다 하겠다.

<내면의 침묵>이 먼저 눈에 띈 건 사실 표지로 쓰인 사뮤엘 베케트의 초상 때문이다. 말년의 베케트를 역시나 대가다운 솜씨로 포착하고 있는 사진이다. 혹은 아래와 같은 사진의 베케트.

 

한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다시 상기해보자면 올해는 베케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기념 출판이 없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베케트를 표지로 한 브레송의 사진집이 그 아쉬움을 얼마간 달래준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의 드라마 한두 편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한국어 베케트의 목록을 뒤적거려보지만 빈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기 이전에 베케트를 먼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책벌레가 어느덧 국경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다섯번째 책은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경을 넘는 방법>(일조각, 2006). 몇년전에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 2002)로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저자는 근대 국민국가의 비판과 극복에 학문적 화두를 두고 있는 듯하다. '문화, 문명, 국민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부제로 갖고 있는 이번 책에서도 "문명과 문화가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통합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지적하면서, 우리들이 얽매인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예리하게 파헤친다"고 한다. 

요컨대, "문명과 문화라는 말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때를 같이하며, 뛰어난 근대적 이데올로기임을 밝힌다. 따라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둘러싼 역사 또는 국민국가 스스로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문명, 문화라는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포박당한다"는 걸 지적하는바, "책은 문화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사문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문화의 대안을 모색한다."

이에 대한 임지현 교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서양'에게는 '동양'이자 '동양'에게는 '서양'인 일본, 오리엔트화되는 오리엔트이자 오리엔트화하는 오르엔트인 일본에 대한 니시카와 나가오의 날카로운 성찰은 비교문화 연구의 진경을 보여준다. 비교문화의 단단한 이론 틀 속에서 '일본적인 것' 혹은 '일본 고유 문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문화적 본질주의를 해체하는 그의 차가운 시선은,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문화'의 회로 판에 갇혀 있는 일본 지식사회에 대한 엄정한 자기비판이다."(강조는 나의 것)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저자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중요한 이론전 전거로서 참조한다. '오리엔탈리즘'을 주제로 한 국내서/번역서 몇 권을 같이 꼽아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림은 존 맥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문화디자인, 2006)의 표지로 쓰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보통 다섯권의 책을 꼽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번엔 서양 중세사의 거장 조르주 뒤비의 책을 보너스로 더 집어넣는다.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생각의나무, 2006) 가 그것인데,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장 조르주 뒤비가 쓰고 백과사전의 명가 라루스 출판사가 출간한 책으로 그림과 지도로 보는 대 세계사 연감이다. 인간 역사의 파노라마를 520개의 사건으로 분류하여 편집 기술이 집약된 지도 위에 그 전개 상황과 개요를 새겨 넣어 역사 기술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책값이 12만원에 이르는 만큼 뭔가 대단한 걸 보여줌에 틀림없다! 아, 세계는 넓고 서민-책벌레로선 이 책값들을 벌기가 참으로 어렵도다!..

06. 0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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