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통신에 올려놓았었던 짤막한 단편을 옮겨놓는다. 재작년 6월말 모스크바 영화제 기간에 번역한 것인데, 주인공인 '겐까'가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영화광이기도 했다. 작가 알렉신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거의 없는데, 그래도 꽤 저명한 '아동문학가'라 한다(자료를 찾아보니 재작년에 그는 80세 생일을 맞았다). 주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청소년문학가'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주제는 이 시기 주인공의 ‘눈뜸’이겠다(‘아담이 눈뜰 때’ 같은 것!). 

Писатель Анатолий Алексин

원제는 ‘프라우다(=진실)’의 반대어인 ‘니프라우다(=거짓)’인데,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거짓말’로 옮겼다. 중학생 정도인 주인공의 나이와 제목만 가지고도 짐작할 수 있는 바는, 이 단편이 ‘겐까의 눈뜸’을 다룰 거라는 것. 무엇에 대한? 거짓(허위)에 대한. 누구의 거짓에 대한 눈뜸인지는 한번 읽어보시길. 페트루솁스카야의 <복수>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적 읽기’를 한번쯤 자극하는 단편이다(역시 괄호 안에 *를 단 건 역주이다).



겐까는 16세 미만은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보는 걸 무척 좋아했다(*러시아영화는 ‘12세 미만 관람불가’ ‘16세 미만 관람불가’ ‘18세 미만 관람불가’ 등으로 분류된다. ‘16세 미만’이면 준-성인영화이며, 러시아에서는 18세 이상이면 포르노성 영화도 관람가능하다). 그는 나이 표시가 돼 있지 않은 책들, 그러니까 어른들의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겐까의 나이가 이 단편에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대략 13-14세 정도일 걸로 보인다).

아버지가 먼저 겐까에게 ‘흡독(吸讀)’ 전쟁을 선포했다(*‘흡독’이란 단어는 작가가 ‘책빨아들이기’란 뜻으로 만든 신조어를 옮긴 것이다.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이 책의 내용을 흡수하는 것인데 ‘속독’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를 썼길래 ‘흡독’이라고 옮긴다). 그는 모든 군사학 수칙들에 따라서 공격해 왔다. 그는 먼저, 척후부대를 보냈다. 그 결과 겐까의 머릿속에서는 책과 저자의 이름마저 헷갈리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겐까는 쿠퍼를 쿠프린으로, 스타뉴코비치를 그리고로비치로 혼동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결정타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아들을 비웃었다. 겐까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아버지는 ‘돌격대’로 편성된 주력부대를 내보냈다.

-이젠 책을 같이 읽도록 하자!
-어떻게, 같이 읽어요? – 겐까가 놀래서 말했다. – 같이 소리내서요?
-그건 아냐… 하지만, 너무 ‘속으로만’ 읽으면 안된다. 내가 충고해 주는 대로 책을 읽어라. 그리고 같이 토론을 해보자.

저녁을 먹으면서 시험이 시작됐다.
-너 자연 묘사는 또 빼먹었니? – 아버지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빼먹었어요. -겐까가 변명했다.
-거짓말!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거짓말을 하는 거다. 그럼 어디, 여기서 첫눈의 냄새는 무엇에 비유되고 있지?

겐까는 자리에서 멈칫했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어나가서 눈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럼, 무엇에 비유되고 있는지 아버지한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는 첫눈의 냄새를 수박 냄새에 비유하고 있어! 이건 정확한 비유야! 넌 이 대목을 빼먹은 거야!(*쿠프린의 소설에 나오는 대목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석류석팔찌>란 작품으로 알려진 쿠프린(꾸쁘린)은 고리키와 동시대 작가로 그와 함께 흔히 ‘네오리얼리즘’ 작가로 분류된다. 1890년대 러시아 문학의 경향은 귀족적 상징주의와 체호프, 그리고 서민적 네오리얼리즘이었다.)

이따금 토론에 엄마가 끼어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금방 엄마의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엄마는 화를 냈다.
-여자들한테는 버스에서나 자리를 양보하는 거예요. 논쟁에서는 그런 예의가 필요없다구요!

아침마다 엄마는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겐까에게 아침을 준비해주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아버지는 엄마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매번 똑같은 말을 했다.

-안녕, 나의 사랑스런 난쟁이!(*원어는 ‘malysh’로 러시아인들이 자주 쓰는 ‘애칭(愛稱)’인데, 원래는 ‘키가 작은 사람(=난쟁이)’을 가리킨다. 이런 류의 애칭으로 ‘토끼(zajchik)’도 있다).

그러면, 엄마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겐까는 엄마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순전히 그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쟁이’란 말은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작은 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소년인 아들을 부를 때, 아버지는 엄격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겐나지’라고 불렀다(*‘겐나지’는 애칭이 아니라 공식적인 호칭이다. 학교 출석부에나 올라가 있을. ‘겐나지’의 애칭은 ‘겐까’나 ‘게나’이다).

저녁마다 겐까는 아버지의 퇴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를 대번에 알아챘다. 천천히 울리는 초인종 소리… 겐까는 무척이나 아버지에게 문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훨씬 더 기다렸을 거라는 걸 알았고, 엄마에게 양보했다. 아버지는 다시 엄마의 이마에 키스를 했고, 아침과 거의 똑같은 인사를 했다. “잘 있었어, 나의 사랑스런 난쟁이!” 하지만, 이 단어들은 훨씬 더 상냥하게 들렸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하루 종일 엄마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겐까는 다정스런 말들이 질색이었지만(*겐까도 사춘기인 것이다), 엄마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에서는 뭔가 아늑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겐까에게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공부는 잘 돼가니?

그는 한번도 아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일기장을 열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문에 겐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쁜 성적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대로 다 얘기했다. 겐까는 꾸중을 듣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런 저녁이면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나, 아버지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똑똑한 사람들’과 ‘멍청한 사람들’로 분류하는 엔지니어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겐까의 한 가지 약점에 대해서만은 아버지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약점이란 건 영화에 대한 그의 제지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겐까가 집에 흥분해서, ‘멍해진’ 눈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눈으로 그에게 경고했다. “꾸며댈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영화보고 온 거 다 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아무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말했다.
-오늘 새로 영화가 들어왔더군. 재미있겠던데. 무슨 내용이지?
그러면 겐까는 내용을 다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날 겐까는 집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서 옛날 영화를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영화는 겐까가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처음 개봉됐을 때 겐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보통 때라면 겐까는 저녁 상영시간에는 보러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날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겐 중요하고도 축하할 만한 날 - 새 기계를 시험해보는 날이었다(*‘기계’에는 ‘자동차’란 뜻도 있다). 아버지가 말하길, 아직도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멍청한’ 엔지니어들 중 누군가가 반대하고 나설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흥분해 있었다!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엄마가 흥분해 있었을 때처럼?

겐까는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기 위해서라도 영화관에 더욱 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엄마(특히 엄마!)의 얼굴을 보고, 모든 일이 잘 됐다는 걸,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됐다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겐까는 멀대같이 키가 큰 7학년생 조라를 같이 데리고 갔다(*7학년이면 우리의 중1 정도이다). 조라는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표를 다 살 수 있었다(*키가 크니까). 둘은 저녁 무렵의 거리를 내달렸다. 하지만, 극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표가 매진이었다. 바로 앞 상영이 끝난 시간이었다…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불빛에 눈을 찌푸리면서(*갑자기 환한 곳에 나오니까), 외투를 걸치며 걸어나오고 있었다(*러시아에서는 모든 공연장 출입시 입구에 있는 보관소에 외투를 맡겼다가 다시 찾는다)… 그때 겐까에겐 문득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춥지 않아, 난쟁이?
겐까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허리를 숙여서 웬 낯 모르는 금발 여자가 스카프를 매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겐까는 구석으로 재빨리 피하고 싶었다. 그에겐 저녁 상영시간에 영화를 보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의지와 무관하게 위로 향했고 아버지의 시선과 부딪혔다. 그리고 겐까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문득 아버지도 그를 보고 놀라신 걸 알았다. 그래, 그래, 아버지가 놀라셨어! 언제나 신중하고 침착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바빠지셨다. 금발 여자의 손에서 어색하게 손을 빼더니, 겐까가 보기엔, 심지어 기둥 뒤로 숨으시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둥은 전혀 그를 가려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둥은 좁고 가는데 반해서 아버지는 거구에다가 어깨가 넓었기 때문이었다.

겐까는 아버지를 도와주었다. 그는 거리로 뛰쳐나가서는 긴 다리의 조라조차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하지만, 어느 사거리쯤에 이르러 겐까는 걸음이 멈춰졌다. 그의 귀에선 아버지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춥지 않아, 난쟁이?” 아버지가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매어주던 금발 여자는 실제로 키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겐까로선 엄마에게 속하는 말들을, 오직 엄마에게만 속하는 말들을 그녀에게도 쓰는 것은 야만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기계 시험은 도대체 뭔가? 거짓말이었던 말인가? 기계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인가?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신 거다… 겐까는 이 사실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것이 용납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게 거짓말이란 말인가? 책에 관한 얘기들도, 아버지의 충고도, 저녁식사 때의 토론도? 모든 게, 모든 게 거짓말이다!

집에 돌아온 겐까는 곧바로 침대에 가 누웠다.
-무슨 일이니? 그렇게 상기돼서… 너 열이라도 있는 거니? –엄마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어보셨다.
-걱정마세요, 엄마… 그냥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예요! – 평소답지 않게 겐까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실제로는, 오늘 그로선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아버지가 하는 인사를 듣고 싶지 않았고,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04. 06. 20/ 06. 09. 22.

P.S. 아래는 2004년 11월 21일 자신의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러시아 예루살렘 도서관)에서 '테러와 아이들'이란 주제로 강연하는 노작가 알렉신의 모습. 청중들은 어릴 적에 알렉신의 이야기들을 읽고 자란 독자들로 보이지만 어느새 모두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아닌가 싶다.

Писатель Анатолий Алекси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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