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소재의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레나 모제의 <인간증발>(책세상, 2017)과 이반 자블론카의 <레티시아>(알마, 2017)다. <레티시아>의 부제가 '인간의 종말'이다. 둘다 원저는 프랑스의 논픽션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란 부제가 알려주듯, <인간증발>은 프랑스 책이지만 특이하게도 일본의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이다. '인간증발'이라는 사회현상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10만 명이 실종되고 있다. 이 중 85,000명이 스스로 증발한 사람들이다. 체면 손상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실직과 빚, 이혼, 낙방 같은 위기 앞에서 집을 나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슬럼 지역 등에 숨어들어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간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그녀의 남편이자 사진작가 스테판 르멜은 2008년 우연히 증발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이 이야기에 끌려 ‘인간 증발’의 어두운 이면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파괴된 인간, 그리고 그들을 방기하고 착취하는 일본 사회의 충격적인 민낯을 만나게 된다."

 

이 문제를 다룬 일본 책이 있었나, 궁금해지는데(일본에서도 책이 안 나왔을 리 없을 것 같고, 만약에 나왔다면 국내에도 소개되었을 텐데, 머리에 떠오르는 책은 없다), 아무튼 책소개대로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던 사회·문화적 현상들이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서 되풀이되는 모습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또 증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매년 10만 명씩 증발한다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하긴 매년 1만 5천 명의 한국인이 자살한다고 하면, 놀라지 않을 외국인이 있을까 싶다. 피장파장인 것.

 

 

<레티시아>는 이른바 '레티시아 사건'을 다룬 르포다. 2011년에 프랑스를 뒤흔들었다고 하는데, 남의 나라 일이어서인지 나는 이 책 덕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2011년 1월, 18세의 호텔 레스토랑 직원인 레티시아 페레가 실종된다. 그녀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진 며칠 후 헌병대가 용의자 토니 멜롱을 체포하지만,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난 레티시아의 시신을 발견하기까지는 12주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이 사건은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사건의 책임을 사법부에 전가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고, 이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법관들의 대규모 파업 사태가 발생한다. 저자는 끔찍한 살인 사건의 비극적인 피해자이자 사법관들의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사건의 주인공으로만 레티시아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집요한 조사와 레티시아의 주변 인물에 대한 철저한 탐문을 통해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그녀의 삶을 밝혀냄으로써 남성이 만든 폭력과 기만의 세계를 폭로하고, 동시에 이것이 모든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임을 경고한다."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저자 이반 자블론카의 한마디는 이렇다.

 

"내가 아는 모든 범죄 이야기는 희생자를 대가로 하여 살인범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살인범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후회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재판에 있어서 살인자는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초점의 대상이다. 나는 반대로 죽음으로부터 모든 남녀, 즉 인간을 해방시키고 싶다. 그들의 생명과 인간성까지 앗아간 범죄로부터 그들을 꺼내주고 싶다. 이는 ‘희생자’로서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을 다시금 종말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나는 그저 그들 존재 속으로 그들을 복원시키고자 한다. 즉 그들을 위해 증언하고자 한다. 내 책에는 단 한 명의 주인공, 레티시아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녀에게 갖는 관심은 마치 은총으로의 복귀처럼, 그녀의 본모습과 존엄성과 자유를 그녀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저자의 관심과 노력 덕분에, 그리고 이 책이 번역 출간된 덕분에, 우리에게도 레티시아가 이제 존재하게 되었다...

 

17.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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