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페이퍼를 적는다. 서재 일로만 치면 여름휴가를 보낸 셈인데, 실상은 여유가 없었던 것이니까 속도 모르는 휴가였다고 할까(진짜 휴가가 따로 있을지는 아직 미정이다). 아무려나 '복귀' 페이퍼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역시 좀 늦어졌는데, 그래도 '펑크'는 아니라고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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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예술
올여름 블록버스터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 2017)가 그중 하나라는 건(어쩌면 유일?)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최근 전작들이 그랬듯이 이번 신작 역시 고액의 선인세가 지불된 것으로 안다. 하루키의 건재를 과시하게 될지, 이름값에 못 미치는 평작에 머무르게 될지 이번 주엔 공개된다. 작품이 많은 만큼 하루키 문학 가이드가 필요한 독자라면 지난봄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책담, 2017)를 참고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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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설은 블록버스터라고 하기엔 좀 약해 보이지만 김애란과 김영하의 소설집, 그리고 이정명의 장편 <선한 이웃>(은행나무, 2017) 등이 서가를 차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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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분야에서는 사이먼 크리칠리의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클레마지크, 2017)이 눈길을 끈다. '데이비드 보위'론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구면인 철학자여서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저자이면서 공쿠르 상 수상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론이 <음악 혐오>(프란츠, 2017)인 것도 특이.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이 부제다. 그리고 폴란드 출신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변형적 아방가르드>(워크룸프레스, 2017)는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선택하게끔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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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
인문서로는 "슬라보예 지젝, 지그문트 바우만, 아르준 아파두라이, 폴 메이슨, 판카지 미슈라, 볼프강 슈트렉, 에바 일루즈 등 다양한 국적의 저자들"이 참여한 <거대한 후퇴>(살림, 2017)를 고른다. "1989년 ‘세상의 붕괴’ 이후에 태어난 ‘세계의 붕괴’를 기록한 훌륭한 작품"이라는 프랑스 주간지의 평이 간명하다. 유발 하라리의 신작이지만 원저는 <사피엔스>보다 훨씬 먼저 나왔던 <극한의 경험>(옥당, 2017)도 내게는 올여름 필독서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강의도 진행했던 김에 이번 가을에는 <극한의 경험>도 다뤄볼 계획이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화사로는 크리스토프 리바트의 <레스토랑에서>(열린책들, 2017)를 고른다. "독일 출신의 문화사회학자인 크리스토프 리바트의 신간이다. 이 책에서 리바트는 레스토랑이라는 현대적 공간이 빚어내는 다층적 풍경을 조망한다. 사람들이 배를 채우는 음식, 혹은 맛보기를 즐기는 요리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리바트는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미식의 문화가 싹 트고 꽃을 피운 과정을 조목조목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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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쪽에서는 이번에 재간된 피에르 아도의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열린책들, 2017)과 '문제로 읽는 서양철학사'로서 아르보가스트 슈미트의 <고대와 근대의 논쟁들>(길, 2017) 등이 '수준'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책들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콥 로고진스키의 <자아와 살>(도서출판b, 2017)도 마찬가지. 주제에 흥미가 생겨 영역본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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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책들을 고른다. 가벼운 책으로는 에릭 니우와 닉 하나우어의 <민주주의의 정원>(웅진지식하우스, 2017)이 있다. "한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시장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며 운영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민주주의의 정원>은 이에 대한 생각을 밝히며 새로운 세계상을 ‘시민과 경제, 그리고 정부’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엮어 제시한다."
그리고 좀 무거운 책으로는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내인생의책, 2017).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마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민주주의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이유, 대안을 밝히고 있다."(아스트라 테일러)는 소개가 와 닿는다. 더불어 대니얼 벨의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서해문집, 2017)도 눈길을 그는 책. '대의민주주의의 덫과 현능정치의 도전'이란 부제에서 내용을 어림해볼 수 있다. '현능주의'란 말의 뜻은 아래 소개를 참조.
"지난 30년간 중국에서는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라고 표현할 만한 하나의 정치체제가 형성되어 왔는데, 이 책은 이 특이한 정치체제의 이념과 실제를 담고 있다. 즉 품성[賢]과 능력[能]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발을 선거에만 맡기지 않는 현능주의 정치체제를 다룬 책이다(‘meritocracy’는 흔히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로 번역되지만, 거기에는 ‘품성’의 뜻이 빠져 있기에 저자는 ‘현능주의’라는 용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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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먼저 피터 갤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동아시아, 2017)를 고른다. "저명한 하버드대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의 이 책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시계 특허나 제국 경영에 필수적이었던 지도 제작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벌써부터 이 책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반응이 기대된다."(이상욱 교수) 나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저널리스트 캐슬린 매콜리프의 <숙주 인간>(이와우, 2017).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내 몸속 작은 생명체 이야기'가 부제다(분야로는 '신경기생생물학' 이야기다). 믿거나 말거나 내지 '서프라이즈'에 해당하는 내용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2016년 아마존 올해의 과학책.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우리 몸속에 오랜 시간 거주해 온 기생생물과 미생물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나아가 우리들의 도덕관과 사회적 이념까지 조종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올여름의 과학서로 유력하다.
영화 <컨택트>와 그 원작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덕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가 '미래 기억'인데, 이와 관련하여 독일 저자들이 쓴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문예출판사, 2017)도 관심도서다. "이 책의 저자인 한나 모니어는 세포생물학적 성과를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을 받았다. 2004년 독일 과학재단에서 매년 최고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라이프니츠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한나 모니어의 박사학위 논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 나오는 질투에 대한 연구였다. 공저자인 마르틴 게스만은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철학자로 이 책에서도 기억에 대한 뇌과학 이론을 철학적 담론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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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책읽기/글쓰기
알라딘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동진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예담, 2017)과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문장들>(어크로스, 2017)을 제외하고 세 권을 고른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의 독서록이자 독서론 <다른 생각의 탄생>(현암사, 2017), 그리고 기자이자 번역자였으며 현재는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의 <문학소녀>(반비, 2017), 고전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새로운 시도, 강신장의 <고전, 결박을 풀다>(모네상스, 2017) 등이다...
17.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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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고른다. 김석희 선생의 번역본으로 새로 출간된 게 계기인데, 올해가 소로 탄생 200주년이 된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그간에 많이 읽힌 은행나무판과 펭귄클래식판을 고려하면 <월든> 번역판도 3파전이 되는 셈. 개인적으로는 내년 1학기에 미국 고전문학 강의(19세기 미국문학) 때 새 번역본으로 읽어볼 계획이다. 이번 여름에 미리 읽어도 좋겠다. 아무 때면 어떤가. 의미 있는 독서 거리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책들을 일컬어 고전이라 부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