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기행에서 만난 윤동주에 대해서는 짧게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보다는 조금 길게 다시 적은 글을 옮겨놓는다. 이달 '출판문화'(618호)에 실은 '책읽는 세상' 꼭지다. 윤동주의 시가 한국문학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루고 싶다.
출판문화(17년 6월호) 윤동주를 찾아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과 애송시를 꼽으라면 윤동주와 그의 ‘서시’가 단연 유력하다. 그의 이름 ‘동주’를 우리는 마치 그의 호처럼 부른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펴낸 적이 없는 시인이 사후에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사랑받으리라고는 동주 자신은 물론 그의 동시대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아니 ‘별 헤는 밤’의 마지막 구절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는 사후의 이런 영예에 대한 예견으로 읽을 수 있을까.
올해는 일제 말기 일본 유학중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해방을 불과 수개월 앞두고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애를 마친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월 30일생이므로 그에 대한 기념은 겨울에 이루어질 테지만 얼마 전 나는 조금 이르게 그의 흔적을 찾아서 ‘100주년 기념판’으로 나온 <윤동주 전집>(문학사상사, 2017)을 끼고 일본 교토에 들렀다. 교토의 도시샤(동지사) 대학은 동주가 일경에 체포되기 전 마지막으로 적을 둔 곳으로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95년 그의 50주기를 맞아 세워진 것으로 육필로 쓰인 대표작 ‘서시’가 거기에 새겨져 있다. 하늘은 맑았고 아직 학기중이었지만 교정은 조용했다. 함께 문학기행에 나선 일행과 ‘서시’를 낭송한 다음에 윤동주의 하숙집터로 걸음을 옮겼다. 현재는 교토예술대학의 기숙사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도로변인 그곳에도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42년 연희전문을 졸업한 동주는 일본 유학길에 나서 당초 도쿄의 릿쿄 대학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만에 그만두고 그해 10월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한다. 교토의 하숙집에서 대학까지는 걸어서 다녔다고 하는데 어림에 30분은 걸렸음 직했다. 이어서 찾은 곳은 1943년 7월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시모가모 경찰서인데, 여전히 경찰서 건물로 쓰이고 있었지만 옛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던 시인이 끝내 그 아침을 보지 못하고 숨진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고 숙연해질 따름이었다.
문학기행 둘째 날 아침에 우리가 찾은 곳은 교토 인근의 우지였다(교토부 우지시다). 시인이 1943년 5,6월경에 도시샤대 학우들과 같이 송별회차 나들이를 갔던 곳으로 이들은 현수교 다리 위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다리 난간을 배경으로 한 이 사진이 그가 남긴 마지막 사진이다. 우리 일행도 우지 강을 따라 같은 다리까지 걸어가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우지 강변에 올 10월까지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가 세워진다. 그의 시 ‘새로운 길’이 육필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질 예정이다. 아마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우지를 찾게 될 듯싶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로 시작하는 동주의 시 ‘새로운 길’은 한•일간 ‘기억과 화해’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거슬러 올라가면 시인 윤동주의 출발점이었다. 그가 연희전문을 졸업하면서 펴내려고 했던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은 ‘서시’를 포함해 19편의 시를 수록할 예정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일찍 쓰인 시가 바로 1938년 5월에 쓴 ‘새로운 길’이다. 애초에 <병원>이라는 제목을 가질 뻔했던 그의 자선 시집은 ‘서시’가 씌어진 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제목이 바뀐다. 창작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새로운 길’에서 ‘별 헤는 밤’에 이르는 여정이다. ‘별 헤는 밤’을 탈고한 뒤 동주는 비로소 ‘서시’를 쓴다. 시집의 서언으로 쓴 시이다. ‘서시’를 쓴 이후 시인은 7편의 시를 더 남겼다.
윤동주의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전집에 수록된 그의 시는 습작과 유고까지 포함하여 모두 97편이다. 그런데 시인의 의도를 존중하자면 이 가운데 19편이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다. 그리고 이후에 쓰인 시 7편 가운데 날짜가 적힌 시 6편이 거기에 추가될 수 있겠다. 이 6편 가운데 마지막 시가 ‘쉽게 씌어진 시’로서 주목에 값한다. 도합 25편이다. 넓게 보자면 97편의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윤동주 시’는 이 25편에 의해서 대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기적으로는 1938년 5월부터 1942년 6월까지 4년 남짓의 기간 동안 쓰인 시들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도 핵심은 ‘서시’를 전후로 한 시들이다. ‘서시’에 앞서 ‘또 다른 고향’과 ‘별 헤는 밤’ 등이 있고 그 뒤에 ‘간(肝)’과 ‘참회록’이 놓인다. 이 중 ‘간’은 친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시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윤동주는 자선시집에 실릴 19편 가운데 마지막인 ‘별 헤는 밤’을 1941년 11월 5일에, 그리고 ‘서시’는 11월 20일에 썼다. 그런데 연희전문의 스승으로서 그의 시고를 받아본 이양하 선생은 몇 편의 시가 검열에 통과될 수 없을 뿐더러 신변에 위험이 올 수 있다고 충고하여 동주는 시집출판을 단념한다. 11월 29일에 쓰인 ‘간’은 오래 염원하던 시집 출간 좌절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것이다.
이미 ‘별 헤는 밤’에서 시인은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프랜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시인들의 이름을 나란히 호명한 바 있다. 잠이나 릴케 등의 시를 윤동주는 일어로 번역된 시집으로 읽었다.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가 오무라 마스오의 지적대로 윤동주의 시세계 형성에는 한국문학과 함께 “1930년대의 일본문학 및 일본어를 통해 수용된 서구문학”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확인하게 해주는 시가 ‘간’이기도 하다. 서구문학 가운데 동주는 특히 릴케, 발레리, 지드 등을 탐독했는데, 그의 장서 중에는 지드 전집도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읽은 일어판 지드 전집에는 <잘못 결박된 프로메테우스>(1899)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1960년대에 나온 휘문출판사의 한국어판 앙드레 지드 전집에는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떼>라는 제목으로 수록돼 있다).
우화적인 지드의 소설은 1890년대 파리의 한 다방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제우스가 부유한 은행가로 등장하고, 프로메테우스는 무면허 성냥 제조 혐의로 구속된다. 이야기의 발단은 제우스가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코클레스)의 따귀를 때리고 다른 한 사람(다모클레스)에게는 500프랑의 돈을 익명으로 부친 데서 비롯한다. 여기서 무상의 행위, 즉 아무런 동기나 이유를 갖지 않는 행위가 작품의 모티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독수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 독수리는 그의 양심의 상징이다. 감옥에서 밤낮으로 뜯기면서 독수리는 살찌는 대신에 그는 점점 말라간다. 이윽고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 대하여’란 주제로 대중강연을 한다. 저마다 자신의 독수리를 가져야 하며 독수리를 사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강연을 들은 다모클레스는 자신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500프랑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병이 들고 결국엔 죽고 만다. 다모클레스의 장례식에 뚱뚱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나타난 프로메테우스가 다모클레스의 죽음 덕분에 자신의 독수리를 죽였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과 함께 독수리 요리를 맛있게 먹는 걸로 이야기는 마감된다.
흥미로운 것은 윤동주의 ‘간’에서 제시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형상이 바로 지드의 프로메테우스와 닮았다는 것이다(“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단, 지드의 프로메테우스가 양심의 투사(投射)였던 독수리를 죽임으로써 일종의 카니발적 결말을 유도하는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의 부리처럼 예리한 자아의식과의 긴장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내면으로의 끝없는 침잠을 감내한다. 윤동주만의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윤동주 읽기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17.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