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기행을 다녀온 이후에 며칠 페이퍼를 적지 못했다. 원고와 강의준비가 밀려서였는데, 주말이 되어 겨우 한숨 돌리고 나니 이젠 내주의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쏟아지는 책들을 갈무리해두는 것이 이 서재의 기본 직무이건만 아무래도 여력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 '휴직'도 고려해보다가 심기일전하는 기분으로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이안 뷰캐넌의 <교양인을 위한 인문학사전>(자음과모음, 2017)이다. 뷰캐넌은 들뢰즈 연구자로 잘 알려진 문화이론가로 현재는 호주의 한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책의 원제는 <옥스퍼드 비평이론 사전>이다. 



번역본 제목이 '인문학 사전'으로 바뀐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비평'이나 '이론'이란 말은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떤 제목이건 간에 나로선 환영이다. 인문학도가 아니더라도 교양인문학 독자라면 이런 종류의 사전은 기본적인 '도구상자'로서 필히 소장할 필요가 있다. 흔히 하는 말대로, 공부의 절반은 개념을 익히고 써먹는 것이니까. 같은 분야의 책으로 <비평이론의 모든 것>(앨피, 2012)이나 <문화이론 사전>(한나래, 2012) 등과 함께 서가에 꽂아둠 직하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사전의 경계와 관련하여, 옥스퍼드 사전 시리즈의 자매편인 <옥스퍼드 문학용어 사전>과 <옥스퍼드 철학 사전>에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설정했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 3종의 사전을 모두 주문했다. 다행스럽게도 보급판이어서인지 세 권 모두 저렴한 편이다. <철학사전>은 편자가 사이먼 블랙번인데, 국내 몇 권의 책이 소개돼 있는 학자다.  


앞에서 '도구상자'라는 말을 썼는데, 요리에 비유한다면 도마와 칼 같은 연장이 되겠다. 이런 사전들도 구비하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것은 도마도 없이 요리하겠다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뭔가 궁상맞다.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이지만, 좋은 요리는 좋은 도마에서 나온다...


17. 06.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