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중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어제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 금요일 독자와의 만남 행사 사회를 보고 연이어 인터뷰까지 가지면서 세계적인 작가와 인연을 갖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작가가 계획하고 있는 나머지 두 권의 책을 무탈하게 읽어볼 날을 고대한다.  



한겨레(17. 05. 22) "나는 러시아혁명 100년의 증인이고자 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처음 방한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러시아문학 전공자이자 서평가로 활동하는 ‘로쟈’ 이현우씨가 인터뷰어로 참여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겨레>가 한국의 대표적 진보언론이라는 이씨의 소개에 알렉시예비치는 ‘한겨레’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뜻이고 남북한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알렉시예비치는 구호도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과거 남북축전 때 ‘우리는 하나다’ 같은 구호를 떠올린 듯싶다. 다음은 알렉시예비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신이 출간한 다섯 권의 책은 하나의 사이클로 묶여서 ‘유토피아의 목소리’로 불리는데, 다섯 권을 처음부터 구상한 것인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전쟁을 목격한 전쟁고아들을 인터뷰한 책 <마지막 목격자들>을 차례로 펴냈다. 당시 아프간전쟁이 터진 상황이었고 전장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간전쟁의 참상을 다룬 <아연 소년들>을 쓰게 되었다. 그 이후로 주요한 참상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썼고, 소련 해체 이후에 <세컨드핸드 타임>을 썼다. 내가 반대한 것은 공산주의로 되돌아가자는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과거 공산주의의 잘못을 잊고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다. 소련 공산주의는 넓은 지역에서 실시된 계획이고, 3억의 인구가 동원된 거대한 실험이었다. 나는 증언자로서 작업에 참여하고 싶었다. 나는 레닌 시대부터 소련 해체 시점까지 살아온 모든 이들을 알았고 그들의 증언을 들었다. 올해가 러시아혁명 100주년인데, 나는 그 100년의 증인이고자 했다.”

 

-당신의 그러한 문제의식은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낳았다. 처음부터 이런 새로운 형식을 택한 것인가?

 

“내가 다루는 대상은 주류 역사가 잘 다루지 않고 누락한 부분들이다. 감정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주목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는데, 전쟁 이후라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일을 마치면 길에 나와 많은 얘기들을 나누곤 했다. 러시아의 관습이었는데, 그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 전통에도 인터뷰 장르가 있다. 1차세계대전 때 간호장교였던 소피아 페도르첸코가 장병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벨라루스의 작가 알레시 아다모비치는 이런 형식 실험을 더 발전시켰는데, 2차세계대전시 독일군의 만행을 다룬 <나는 불타는 마을에서 탈출했다> 같은 책을 썼다. 아다모비치는 작가적 논평을 많이 붙였는데, 나는 작업에서 그런 것을 배제했다. 아다모비치는 나의 문학적 스승으로 그와 자주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의 독서 경험에서 아무래도 러시아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텐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누구인가? 역시 도스토옙스키인가? 20세기 작가로는 수용소문학의 대표작가 바를람 샬라모프도 당신은 자주 언급했다.

 

그렇다.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덧붙여 동시대 여성시인 올가 세다코바도 나는 좋아한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많은 작가들이 독자를 세뇌하기 위한 작품을 썼다. 반면에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렸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인간이 밝게 긍정적으로 그려졌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식인데, 그런 문학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다.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공존하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 것이다. 많은 곳을 다니면서 나를 놀라게 하고 겁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도스토옙스키는 그럼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를 통해서 ‘수용소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한 것을 써냈다. 당신은 다섯 권의 책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 백과사전’을 쓴 셈이니 솔제니친보다 더 야심찬 작업을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업은 러시아 바깥의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솔제니친보다는 샬라모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는 비단 러시아 독자들에 한정하여 공산주의의 전모를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소련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라는 실상을 전달하고 싶었다. 플라톤이 자기 시대 사람들을 위해서만 쓴 게 아니잖은가. 그는 2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위해서도 썼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문학의 역할에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한순간에 무언가를 바꾼다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문학 덕분에 세상이 덜 나빠질 수는 있다. 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한데 모을 수 있다.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 간에.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답하자면 이렇다. 성경도 인간을 바꾸지 못하는데, 어떤 문학이 인간을 바꿀 수 있겠는가.”



-러시아혁명은 불행이었나? 그렇지 않고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어디서 잘못 됐다고 보는가?

 

“지금 소련에 대한 많은 문서들이 나오는데,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혁명을 주도한 엘리트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볼셰비키 그룹이 권력을 가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들이 권력을 쟁취했다. 볼셰비즘은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으며 볼셰비키가 권력을 갖게 되자 당연히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 러시아혁명도 프랑스혁명도 결과적으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나는 혁명보다는 단계적 변화를 지지한다. 특히 러시아처럼 가난한 나라들에서 그렇다. 한쪽에 소수의 부자가 있고, 다른 쪽에 다수의 가난하고 분노한 인민이 있는 상황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나쁜 결말에 이를 수밖에 없다.”


-당신의 정치적 입장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로 보면 되는가?

 

“그렇다. 2000년대 초 벨라루스를 떠나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 살았는데, 스웨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스웨덴에서는 공정한 사민주의와 복지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어떤 당에 가입하겠냐고 묻는다면, 동물보호당에 가입하겠다고 답하겠다.”


-당신은 정치 혹은 체제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당신의 문학은 그런 좋은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 혹은 문학은 그와는 별개의 역할을 갖는가?

 

“정치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공정하게는 만들 수는 있다. 스웨덴, 프랑스, 독일은 자본주의가 러시아나 미국보다 발달했지만 더 공정하다. 그런 점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학의 역할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장을 가볍게 만드는 것,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기자로서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러시아 여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는 행동파 저널리스트였고 푸틴 체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했지만 결국 암살됐다. 그러한 참여적 저널리즘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알고 싶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최상의 저널리즘이다. 그렇지만, 나도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현 체제에 반대하는 문학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좀 더 인간의 본질을 천착하는 것이다. 혁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다루고 싶다. 저널리즘도 물론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거기서는 구체적 과녁만을 겨냥한다. 나는 사람에 대해 더 넓은 시각에서 보고 싶다. 예술의 관점에서는 스탈린과 그의 희생자가 모두 관심의 대상이다. 스탈린 체제 때 열다섯 살 소년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반동분자의 아들이라고 해서다. 똑똑한 소년이어서 수용소 장교가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이 소년에게 부탁한다. 소년은 이렇게 잔인한 사람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모든 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모두 만났는데, 한 여자 공산주의자가 ‘당신은 민주주의자이니 내가 말하는 것을 쓰지 않을 거야’라고 해서 ‘나는 당신에게도 목소리를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한 것인가?

“기자 생활 하는 동안 항상 그랬다. 표면만 보지 않고 더 깊은 곳을 보려고 했다.”


-그렇다면 기자로 변장한 작가였던 것인가?(웃음)

“기자도 흥미로운 직업으로 여러 곳을 다녀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은 것 쓰지 못한다는 불만과 아쉬움이 있었다. 천천히 더 깊이 있게 쓰고 싶었다.”


-한국과 관련한 질문도 드리겠다. 한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전쟁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쓴 입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한 프랑스 기자가 들려준 것인데, 르완다 내전 때 한 여성이 다섯 자식을 잃었다. 자식들을 죽인 이가 바로 이웃이었다. 내전이 끝나고 그 이웃과 다시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단다. 화해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소련 시기에도 자신을 고발해 수용소로 가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경우가 있었다. 같은 공장의 노동자여서 매일 같이 만나야 했던 경우도 있다. <세컨드핸드 타임>에도 쓴 것인데, 한 남자 아이가 이모를 좋아했는데, 나중에 커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공개된 문서를 보니까 이 이모가 자기 오빠를 수용소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모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까 그저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고만 답했다. 레닌과 스탈린이 ‘큰 가해자’였다면 소련 시기에는 수백만의 ‘작은 가해자’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는 증언하고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화해는 어려운 문제다. 나의 아버지는 학교 교장이셨는데, 90세 정도까지 사셨다. 그런데 평생 공산주의를 신봉한 분이다. 선량한 분이셨음에도 말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삶이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내 책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서 그 안에서 그들끼리 논쟁하게끔 했다. 각자의 진실, 각자가 믿는 진실을 다 말할 수 있게 하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진실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당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조국인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찬반양론이 있는 것으로 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는 조금 달라졌는가? 

“벨라루스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에 대해 지지와 반대가 갈린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그들의 지지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열세인 걸로 보인다.(웃음)

“그렇다. 독일에서도 멀쩡하던 민족이 히틀러를 믿었던 것처럼, 그리고 한국에서도 박정희를 믿었던 것처럼, 멀쩡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독재자를 신봉한다. 90년대 사회주의 개혁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많은 이들이 푸틴을 지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도 2차세계대전 때 그렇게 잔인하던 사람들이 전쟁에서 돌아와 환상적인 일본을 재건해냈다. 한 사람이 몇 개의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놀랍다.”


-공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 당신은 이제 사랑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는데. 사랑 이야기는 이제까지 쓴 책에도 조금 들어가 있다. 그런 것과는 다른 사랑을 다루는 것인지?

“다른 책들에서는 공산주의, 체르노빌, 전쟁이 중심이었다면 정말 사랑이 중심이 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세컨드핸드 타임>의 좀 더 밝은 버전인가?

“그럴 것 같진 않다.(웃음) 내 생각에 사랑은 신이 준, 인간을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선물이다. 죽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할 때가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했든 아니든 간에 사랑은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다.”


-당신의 문학의 핵심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 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책은 두 번째 책으로 기획중인데, 그건 늙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문명이 발달해 평균수명이 20년, 30년이 늘어났는데, 그렇게 늘어난 삶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무언가 끝을, 바깥으로 나가는 삶에 대해 쓰고 싶다. 전체 일곱 권의 책 가운데, 이제 둘 남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처음 읽는 독자가 당신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이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는 책이 있다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먼저 읽는 게 좋겠다.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 이해했으면 좋겠고, <세컨드핸드 타임>을 마지막으로 읽으면 되겠다.”


-그럼 발표한 순서대로 읽으면 되겠다.

“내가 애착을 갖는 책은 <전쟁은…>과 <체르노빌의 목소리>다. <전쟁은…>에 나오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은 그에 관한 담론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전쟁에 대해서는 읽을 책이 많았지만 원전사고는 전혀 새로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작가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돼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정리 최재봉 선임기자)



17. 05. 21.


P.S. 인터뷰는 알렉시예비치 수행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최재봉 기자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내가 초고를 만들었다. 지면에는 분량상 축약본이 나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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