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받은 책은 출간 이전부터 화제가 된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와 방한중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문학동네, 2017)이다. <아연 소년들>은 오늘 독자와의 만남 준비차 미리 훑어본 책이다. <호모 데우스>도 원서를 진작 구해놓고 번역본이 나오길 기다리던 참이며 내달엔 강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우연히 출간 시기가 겹친 것이긴 하지만, 두 저자가 내게는 '올해의 저자' 후보로 유력하다. 알렉시에비치의 최근작인 <세컨드핸드 타임>(이야기가있는집, 2016)에 대해서도 하반기에 강의할 예정이어서 아무래도 자세히 읽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두 저자의 책들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혹은 '미래의 연대기' 부제인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11)을 <호모 데우스> 옆에 나란히 놓을 수도 있다.
<호모 데우스>에서 저자의 인류의 미래, 혹은 미래의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결론적으로, 인류는 지금 전례 없는 기술의 힘에 접근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앞으로 올 몇십 년 동안 우리는 유전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 또는 지옥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 가져올 혜택은 어마어마한 반면, 현명하지 못한 결정의 대가는 인류 자체의 소멸이 될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나의 개인적인 내기는 이러한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 20세기 사회주의 역사(이자 실험)를 반드시 반추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은 올해가 때마침 좋은 기회다. <세컨드핸드 타임>의 부제대로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전쟁과 재난의 세기였던 20세기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 없이 어떻게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내기다. 그리고 그 성찰이 내가 설정한 올해의 과제다. 하라리의 책도 반복해서 읽고, 알렉시예비치도 그만큼 반복해서 읽을 것.
그러다 연말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다시 읽을 예정이다. 알렉시예비치는 가장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로 <백치>와 <악령>을 지목했는데, 때마침 연말에 <미성년>을 포함해서 이들 작품을 강의에서 읽어나갈 예정이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나대로 기념하는 방식이다. 계획만 세운 것인데, 뭔가 해낸 것처럼 부듯하군(하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론 대다수 국민들이 뭘 해도 부듯함을 느낄 것이다. 혹은 가만히 숨만 쉬어도). 그래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새해를 맞자 마자 나는 또 러시아의 한파와 마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운명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련다...
17. 0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