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연휴 때문에 독서 여건은 더 낫거나 못하거나 양분될 거 같은데, 최소한 밀린 책 한두 권은 더 읽어야 그래도 '독서 인구'에 포함될 터이다. 게다가 주목할 만한 책들도 많이 나왔기에 읽을 책이 없다는 핑계는 아껴두어도 좋겠다.
1. 문학예술
문학잡지 '악스트'가 국내외 작가들과 나눈 인터뷰집이 나왔다. <이것이 나의 도끼다>(은행나무, 2017). '악스트(Axt)'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다"라는 카프카의 문장을 내걸로 2015년 7월에 창간된 잡지로 이제 2주년을 앞에 두고 있다. 여러 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간판 코너였던 작가 인터뷰는 그간의 성과도 가늠하게 해준다. 한국 작가의 신작 소설들도 두 권 얹는다. 손보미의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 2017)과 이기호의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마음산책, 2017)이다.
건축 분야의 책들도 오랜만에 고른다.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마티, 2017)는 제목이 풍기는 인상대로 말의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 같은 책. "현대 건축의 역사를 사회적.정치적 관계 속에서 살피는 이 책은, 1980년 초판 발행된 이래 1985년, 1992년, 2007년에 걸쳐 네 차례 개정.증보되었으며,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현대 건축사로 자리 잡았다." 건축사에서는 기본서이자 필독서라는 뜻이다. 거기에 시야를 한국으로 옮겨서 경성 건축에 관한 책 두 권도 같이 고른다. 김경민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이마, 2017)와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루아크, 2017)이다.
2. 인문학
철학 분야에선 좀 두툼하긴 하지만 국내 스피노자 연구의 성과를 집약한 <스피노자의 귀환>(민음사, 2017)을 고른다. "프랑스 현대철학과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치밀한 연구로 널리 알려진 서동욱과 진태원의 기획 아래 백승영, 김은주, 김문수, 서동욱, 진태원, 박기순, 진태원, 조정환, 최원 등 국내 정상의 철학 연구자 8인이 현대철학과 스피노자의 긴밀한 관계를 추적하는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철학계의 ‘역량’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고 더이상 화제가 아닐 정도로 자주 책이 나오고 있는 알랭 바디우의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길, 2017)와 조르조 아감벤의 신작 <말할 수 없는 소녀>(꾸리에, 2017)도 얹는다. 아감벤의 책은 제목과 표지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데, "모니카 페란도의 아름다운 그림이 수록된 이 책에서 아감벤은 케레니와 융, 헤겔과 다양한 종교적 인물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와 벤야민과 같은 인물들의 철학적 흔적들을 끌어들이며 고대의 엘레우시스 신비의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재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숙고하게 한다."
3. 사회과학
일단 토드 부크홀츠의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21세기북스, 2017)를 고른다. 원제는 '번영의 대가'. 오늘날 번영한 누라들이 왜 사회적 분열로 치닫는가로 질문하면서 국가 쇠락의 원인을 지적하고 그 대책을 숙고한다. "거대 권력이 해체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경제적 번영 이후, 국가가 쇠락하는 다섯 가지의 잠재적이고 역설적인 요인을 정의한다. 그 다섯 가지는 바로 출산율 저하, 국제 교역의 확대, 부채 상승, 근로 윤리 약화, 애국심의 소멸이다." 우리도 그에 해당하는가?
경제 분야에서는 필립 로스코의 <차가운 계산기>(열린책들, 2017).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대로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비판한다. 더불어, 지난 가을부터의 시민혁명 여정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한겨레 특별취재반의 <최순실 게이트>(돌베개, 2017)도 일독해봄직하다. 자료로서의 가치도 갖는 책이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우주에 대한 책들을 고른다. 먼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인데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동아시아, 2017)라고 소개된 책. 원제는 '우리의 수학적 우주'이고, '우주의 궁극적 실체를 찾아가는 수학적 여정'이 부제다. 일반 독자들에게 생소할 뿐 전공자들에게는 꽤 유명한 저자인 듯싶다. 번역본 제목은 그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갈파르의 <우주, 시간, 그 너머>(알에이치코리아, 2017)는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다. "스티븐 호킹의 직속제자이자 차세대 천체물리학자 크리스토프 갈파르가 알려주는 우주의 신비. 인류의 역사를 빛낸 위대한 과학자들의 실험 방법으로 우리를 우주와 시간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젊은 천문학자이자 '우주덕후' 지웅배의 <하루종일 우주생각>(서해문집, 2017).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과 '우주'와 '천문학'의 접점을 찾은 저자는 흥미로운 방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우주에 관한 내용을 찬찬히 설명해준다."
예약판매중인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은 출간 이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데, 군말이 더 필요없을 것이다. 아마도 상반기 최고 화제작 후보다. 거기에 뇌과학으로 들여다본 '자아'의 세계를 다룬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더퀘스트, 2017), "파스칼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인간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천재들"을 다룬 루돌프 타슈너의 <존재의 수학>(이랑, 2017)까지도 읽을 만한 책으로 꼽는다.
5. 책읽기/글쓰기
독서 에세이에 해당하는 책 세 권을 고른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현암사, 2017)은 '페미니즘적 책읽기'를 모토로 내걸었다. 이유경의 <잘 지내나요?>(다시봄, 2017)은 알라디너 다락방님의 두번째 독서록이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다시봄, 2013) 이후 4년만이니까 '노멀'하다. 세번째 책이 롱런의 가늠자가 될 듯싶다. 국외 저자로는 중국 칼럼니스트 다오얼덩의 고전 독서록이자 촌평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알마, 2017)가 최근에 출간되었다. 독서에도 고수가 널린 게 중국일 터이지만, 어느 정도의 필력이면 화제가 되는지 엿볼 수 있다.
17. 05. 02.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이탈리아 작가 이냐치오 실로네(1900-1978)의 장편소설 <빵과 포도주>(고래의노래, 2017)을 고른다(윌리엄 포크너가 최고의 이탈리아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같은 제목의 시집으로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를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듯싶은데, 나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다. 지난 3월 타계한 박이문 선생의 <문학속의 철학> 목차에서 '빵과 포도주'란 제목을 발견했을 때가 그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한길사판으로 <한낮의 어둠>과 같이 묶여서 나와 있었다. 1982년판.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었는데, 이번에 무려 35년만에 다시 나온 것. 당시 찾아서 읽지 않았으니 나로서도 30년간 지연된 독서를 시도해보는 게 된다.
실로네의 소설로는 <폰타마라>(아래아, 1999)가 더 소개됐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 되었다. 반파시스트 투쟁을 다룬 소설이란 점에서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후마니타스, 2010),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민음사, 2001) 등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