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이었지만 딸아이의 생일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바쁜 하루였다. 실상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케익까지 먹는 '장정'이었을 뿐 따지고 보면 한 일도 없지만(생일카드를 늦게 주었다는 이유로 딸아이한테 반성하라는 경고를 먹었다. 물론 생일선물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바쁜 일들을 제쳐두고 있다는 부담감과 무더위 때문에 더욱 피로한 하루이기도 했다. 아이가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면 잠자리에 드니까 막판에 면피는 했구나란 안도감이 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잠시 짬을 내 '고상한' 학술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다(이런 복더위에 무슨 공부를 하랴!). 대신에 가짜 명품 사기 사건으로 사회란이 도배돼 있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코믹하고 또 '예술적'이어서 몇 마디 참견을 한다. 먼저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하는 동아일보의 기사부터 시작해보자(요 며칠 새 유행어가 된 '된장녀'도 그렇지만 이 '빈센트' 시계 건도 석사논문감은 된다. 학술은 딴동네에 있지 않다).

동아일보(06. 08. 09) “다이애나 비도 차던 시계래” 연예인도 부유층도 홀렸다

-“일본에서 스위스산(産) ‘빈센트 앤드 코(Vincent & co)’ 시계를 봤는데 한국에서 파는 곳이 어디예요?” 최근 국내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 코너에 올라온 질문이다. 질문 아래에는 ‘고가의 제품으로 한국에도 곧 수입된다’는 내용과 함께 매장의 위치를 소개한 답글이 달렸다. 하지만 이 질문과 답변은 모두 연예인과 부유층을 상대로 가짜 명품 시계를 팔다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일당이 올린 것. 실제 스위스에는 ‘빈센트 앤드 코’란 상표의 시계가 없다.

-이모(42) 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에 각각 시계유통업체 사무실과 40여 평 규모의 매장을 차렸다(*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서울 강남에서 벌어지는 각종 파티에 참석하면서 연예계 등 각계에 인맥을 쌓았다고 하는 이 이모씨가 청담동 일대에선 '필립'으로 통했다고. 이름하여 '청담동 필립' 되시겠다). 이 씨는 이곳에서 한국과 중국제 부품으로 만든 저가 시계를 100년 전통의 스위스산 명품 시계로 둔갑시켜 판매했다(*이 정도면 거의 '신지식인' 아닌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세계 인구의 단 1%만 착용할 수 있는 시계’라는 그럴듯한 허위 광고에 허영심 많은 일부 연예인과 부유층은 매료됐다. 이 씨는 지난달 초 청담동의 한 바를 빌려 부유층과 연예인을 초청해 호화 제품 소개회를 열기도 했다. 또 이 시계를 유명 MC와 탤런트 등 8명에게 무상으로 나눠 줘 홍보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씨는 부유층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계 부품을 스위스 현지로 가져가 조립한 뒤 완제품 형태로 국내로 다시 들여와 정상적인 수입신고필증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가 6만 원짜리 시계가 580만 원짜리로 부풀려졌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이만한 고부가가치 산업이 많지 않을 듯싶다. 일부 부유층 명품족들을 상대로 한 이 사기극이 서민경제에 특별히 피해를 주었을 리도 만무한데 이러한 '재능'이 감옥에서 썩는다는 건 좀 아쉬운 일이다. 가령 비상한 두뇌의 해커들을 생각해보라. '뛰어난 재능'은 활용될 필요가 있다).

-200여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를 박은 원가 300만 원짜리 시계에는 무려 9750만 원의 가격표를 붙였다(*당연한 말이지만 원가 300만원을 붙였다면 그만큼 주목받지도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품질'이 아니라 가격 아닌가?). 이 씨는 32명에게 35개의 시계를 팔아 4억4600만 원의 판매 수익을 올렸다. 한 부유층은 원가 150만 원짜리 시계를 6750만 원에 사갔고 연예인 5명도 이 씨의 고객이었다. 연예인들 사이에선 이 시계가 ‘행운의 시계’로 불리며 선물용으로 인기를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또 시계를 만든 박모(41) 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국내 판매권을 넘기겠다고 속여 4명에게서 15억67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검증되지 않은 수입 귀금속이 명품으로 팔려 나가는 사례가 많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임우선 기자)

=사건의 전말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읽어본다. 이 동네는 조선일보가 좀 잘 아는 모양이다.

조선일보(06. 08. 09) 연예인도 부자도 ‘가짜’에 홀렸다

-‘세계 1% 명품’이라는 광고에 우리 사회 부유층이 넘어갔다. 중국산 부품으로 국내에서 조립한 싸구려 시계지만, ‘스위스산(産) 시계명품’이라고 포장하자, 강남 일대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이 달려들었다. 원가 10만원도 채 안 되는 시계가 수천만원에 팔려나갔고, 유명 백화점이 특별전을 열어 ‘명품족(族)’을 꾀었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일부 계층의 허영심을 파고 든 ‘대(大) 사기극’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다.

◆싸구려 시계의 둔갑
-미국 영주권자인 이모(42)씨(*역시 미국산 사기가 스케일이 다르다). 그의 명품시계 사기극은 2000년 ‘빈센트 앤 코(Vincent & Co)라는 시계 브랜드를 만들면서 수년의 준비를 거쳐 치밀하게 추진됐다. 스위스와 우리나라에 법인 및 상표등록을 한 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

-그는 중국에서 시곗줄과 연결고리를 들여왔다. 여기에 시침, 분침, 외장케이스 등 값싼 국내부품을 경기도 시흥의 제조업체에서 결합했다. 원가 8만~20만원.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워낙 고가품이라 강남의 일부 고객들이 ‘스위스 직수입’인지 확인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시계를 분리해 스위스로 가져간 뒤 현지에서 다시 조립해 정상적인 통관절차를 거쳐 수입신고필증을 받아냈다. 그렇게 수입신고필증까지 얻고 나니 장애물이 싹 걷혔다. 을지로 주변 인쇄소도 동원했다. 가짜 품질보증서를 만들어 붙여 구석구석 명품의 흉내를 냈다.

 

◆화려한 마케팅
-이씨는 철저하게 강남 일대 부유층을 겨냥한 마케팅에 나섰다. 명품 패션잡지와 TV, 인터넷 등에 ‘100년 동안 영국 등 유럽 왕실에서만 판매되던 스위스 명품 시계가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비, 그레이스 켈리, 한국 유명 여배우 등이 차는 바로 그 시계’라며 허영심을 자극했다. 또 소수 부유층과 유명 연예인들을 불러 모아 청담동의 클럽에서 호화 런칭쇼(제품 출시를 앞두고 제품을 소개하는 패션쇼)를 열고,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VVIP(초우량고객)들만 초청해 특별전까지 가졌다. 지난 5월엔 압구정 로데오 거리 근처에 40평 규모의 매장도 열었다.

-연예인들에게 시계를 공짜로 제공한 뒤 사진을 찍어 잡지 등에 홍보하는가 하면, 유명 미용실 관계자들에게 홍보용 시계를 제공했다. 입소문이 나도록 ‘협찬 마케팅’도 빠뜨리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의 댓글도 활용했다. 이씨는 직접 “일본에서 이 시계를 봤는데 국내 매장이 어디죠?”라고 질문을 올린 뒤, 마치 다른 사람이 답하는 것처럼 댓글로 매장 위치와 제품정보를 올렸다.

◆연예인·재벌2세·정치인 아내 등 미끼 물어
-이씨의 명품 마케팅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580만원’ 가격표를 붙여놓은 골프 시계가 연예인, 재벌 2세, 정치인 아내 등에게 인기 좋게 팔렸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시계는 9750만원에 팔렸다. 모 유명 여자 연예인의 경우, 원가 20만원의 제품을 500만원대에 구입했다. 연예인 5명이 직접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고, 홍보용으로 협찬·대여받은 연예인을 합치면 13~14명에 이른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이 시계는 ‘행운의 시계’로 통했다. 여기에 재벌 2세와 정치인 아내도 ‘가짜 명품’ 구매대열에 합류했다. 경찰은 모두 30여명이 ‘빈센트 & 코’ 시계를 샀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시계 구입자 명단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시계 판매로만 4억5000만원, 대리점 운영 희망자들로부터 받은 보증금까지 합치면 23억원을 벌어들였다(*투자비용을 고려하면 생각만큼 이윤이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니었군).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던 이씨는 “연예가, 방송가 주변에 값비싼 시계가 공짜로 돌고 있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결국 덜미가 잡혔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8일 사기 혐의로 이씨를 구속하고 제조업자 박모(41)씨를 불구속 입건했다.(최규민 기자)

=그래도 역시 최강의 분석기사는 중앙일보의 것이다(기자들이 '특종'을 다루듯이 여럿 움직이는군). 다른 기사들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지만 그대로 옮겨온다.

중앙일보(06. 08. 09) 강남 파고든 '허영 마케팅'

#1 올 6월 1일 서울 강남 청담동에 있는 T바. T바에선 유명 명품의 런칭(판촉) 행사가 자주 열린다. E.L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눈에 띄었다. 각계의 저명인사도 있었다. 무려 400여 명이 참석했다. '빈센트 앤 코(Vincent & Co)' 시계의 한 모델인 '어반 토네이도 라인' 국내 런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뱀 가죽 시계줄을 사용한 이 제품 소개를 위해 온몸에 보디 페인팅을 한 러시아 무희들과 살아있는 뱀 여러 마리가 동원됐다(*러시아는 여기서도 제몫을 다하는군. 그런데, 이 컨셉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져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필립은 자신의 사기술이 갖는 존재론적 함축까지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행사장 여기저기엔 제품 부스가 차려졌고 2층 쇼룸엔 빈센트 시계의 모든 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값은 비싼데 디자인이 좀…." 행사장 구석에서 작은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호화로운 분위기에 묻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이날 행사 비용만 1억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 7월 초 강남의 한 유명 백화점 상설 전시장.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다이애나비, 모나코 그레이스 켈리 왕비 등만이 산 제품"이라는 광고문구가 나 붙었다. 빈센트 앤 코 전시행사였다. 이날은 판매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나던 백화점 고객들은 두 번 놀라야 했다. 백화점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났던 명품 시계를 전시한다는 것에 놀랐고, 가격에 또 놀랐다. 시계의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1억원에 육박하는 것도 있었다. 유명 백화점에서 가짜를 전시할 것이란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미국 영주권자이자 빈센트 앤 코 대표 이모(42)씨는 이런 방법으로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손목시계를 스위스 최고급 명품으로 속여 강남 부유층과 연예인을 공략했다. 이씨는 원가 8만원짜리를 580만원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300만원짜리 시계를 9750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는 8일 가짜 명품 시계를 스위스산 최고급 명품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사기)로 이씨를 구속했다. 이씨에게 시계를 납품한 N사 대표 박모(41)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 '국적세탁' 수법 동원=경찰에 따르면 가짜 명품 시계는 경기도 시흥의 N사에서 중국산 부품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2005년 3월부터 최근까지 유명 연예인과 강남 부유층 인사들을 상대로 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씨는 총판 운영권을 준다며 박모(46)씨 등 4명에게서 15억67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2000년부터 가짜 명품시계를 국내에 팔 계획을 세웠다. 스위스와 한국에 '빈센트 앤 코'라는 법인과 상표를 등록했다.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신사동에 각각 사무실과 매장도 열었다. 올 2월에는 홍콩에 유령회사를 차렸다. 이로써 스위스에 본사가 있고 국내에서 수입하는 형식을 갖추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백화점 행사 땐 진가를 발휘한다. 전시행사를 했던 백화점 관계자는 "보통 명품 브랜드나 신규 브랜드 초청 전시회를 할 때 담당자가 검사하는 수입 면장과 본사 확인서 등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 인터넷에 자문자답(自問自答) 홍보도=준비를 마친 이씨는 고객 확보에 나섰다. 우선 강남에서 잘나가는 고급 미용실을 공략했다. 원장에게 시계를 뿌렸다. 미용실에 다니는 연예인과 부유층도 주요 목표였다. 이들에게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구매 대기자 명단까지 보여줬다. '행운의 시계'란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 미용실 관계자는 "이씨가 재벌회장 누구를 안다며 친분을 과시해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고객이 '수입신고필증'을 요구하면 국내에서 부품을 갖고 스위스에서 들어가 조립한 뒤 정상 수입절차를 거치는 '국적세탁' 수법까지 동원했다. 또 인쇄소에서 품질보증서를 가짜로 만들어 붙였다.

-이씨는 언론을 이용해 가짜 명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도 신경 썼다. 명품을 다루는 잡지에는 여러 차례 광고를 실었다. 올 들어서는 주요 일간지도 접촉했다. 홍보대행사를 통해 접촉한 언론 중 일부는 이씨의 뜻대로 움직여 줬다. 6월에 한 경제지에는 '빈센트시계 한국 매장 오픈'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에는 댓글을 올려 이씨 스스로 자가발전을 했다. 그는 포털사이트에 "일본에서 이 시계 봤는데 국내 매장이 어디죠"라는 질문을 올린 뒤 댓글을 올려 매장의 위치와 제품정보를 알려줬다.(이철재.문병주.조도연 기자)

-강남 명품족의 심리를 이용한 이씨의 수법은 인맥 관리에서 또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청담동에 있는 매장의 총판을 맡은 회사의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잘나가는 진짜 명품의 마케팅 책임자의 친오빠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입수한 이씨의 장부에는 구매자로 여당 중진 의원의 부인과 모 재벌 그룹 고위경영자의 부인이 포함돼 있었다. 또 여자 탤런트 C씨, 남자 탤런트 L씨 등 10여 명의 유명 남녀 연예인들이 이 업체의 사기에 속아 시계를 구입하거나 협찬품으로 받았다. 이들은 경찰에서 "명품으로 소장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빈센트 앤 코'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은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명품 소비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서울대 여정성(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부(富)의 상징, 즉 다른 사람보다 내가 많이 가졌다는 걸 드러내는 기호로 이른바 명품이 등장했다"며 "이번 사건은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허영 심리를 교묘히 활용한 것으로 천민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패션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명품과 유행을 좇는 일부 계층의 심리를 파고든 사례로 분석한다. 패션 마케팅 관계자는 "비싸고 희소가치가 있는 명품이라고 선전하면 그것을 사는 것이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번 사건은) 그런 바람 같은 사람을 공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센트 앤 코가 유럽에서도 상위 1%만 아는 브랜드라며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을 판다고 내세운 것도 이런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연예인과 패션계의 일그러진 공생관계도 확인됐다. 소위 명품 브랜드나 신규 브랜드의 런칭 행사 때 연예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연예인을 동원하지 않으면 명품의 소비계층인 부유층을 유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에 동원되는 연예인은 급수에 따라 행사에 소개되는 200만~500만원가량의 물품을 받는다. 연예인들은 물건을 받는 것 외에 명품 브랜드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을 홍보에 이용한다.(조도연 기자)

 

 

 

 

학술적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먼저 이 사건은 '세계 1% 명품'이라는 사기홍보에 넘어간 자칭 '대한민국 1%'의 부유층, 곧 유한계급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우물이있는집, 2005)을 막바로 떠올리게 한다. 베블런은 "자본가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은 일치하며, 경쟁체계는 경제적 진보의 원천이라는 고전경제학의 주요 명제를 반박하며, 당대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명예'와 '과시성'이 갖는 계급적 의미를 논리적으로 드러냈다." '과시적 소비' 와 '과시적 여가'라는 말의 저작권자가 바로 베블런인바, 이번 사기 사건은 '과시적 소비'의 흔한(하지만 빼어난) 사례로 분류될 수 있다(그러니까 '연습문제' 정도는 되겠다). 또한 베블렌 이론의 사회학적 영감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부르디외의 '취향의 사회학' 혹은 '사회학적 판단력 비판'은 사회계급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조명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두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상품의 사용가치보다도 오히려 그 기호적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보드리야르의 통찰이다. 게다가 그는 현대사회에서 TV 등 영상산업,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현실을 모사한 것들이나 이미지들 즉 ‘시뮬라크르’가 오히려 거꾸로 현실이나 실재를 지배한다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제창하는 바, 진짜보다는 가짜/짜가가 판을 치는 요지경 포스트모던 사회의 실상을 예리하게 해명한다(비록 별다른 대안을 제사하지 않아서 패배주의적이란 비난을 무릅쓰고는 있지만). 겉보기에 '명품'이고 남들이 명품이라 하면 그게 또 명품인 것, 그게 시뮬라시옹의 세계 아닌가?

 

 

 

 

세번째는 그러한 과시적 소비와 과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극대화되는 모방욕망이다. 이 경우는 명품 그 자체보다도 짝퉁 명품의 소비 현상을 설명하는 데 보다 유용하다. 이번 케이스는 짝퉁을 명품으로 오인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지만 짝퉁인 줄 알면서도 명품유사품으로서 그 효과를 발휘하는 짝퉁에 대한 선호도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제대로 알고 구입하느냐 모르고 구입하느냐의 차이가 여기엔 걸려있는 듯하지만, 실상한 동일한 현상의 이면이다. 어떤이의 소비가 그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그리고 상위 1%의 소비를 모방함으로써 자신 또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욕망. 그러한 욕망의 발생과정(스캔들)에 대한 면밀한 해명은 지라르 이론의 특장이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의 실제적 사례 아니었을까? "우리는 '명품 시계'가 벼락처럼 강남 명품족을 강타하는 것을 본다." 

 

 

 

 

네번째는 사건의 주모자인 '청담동 필립'의 절묘한 사기술이 경탄을 유발한다.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1%의 소비심리와 그 구조적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었고 이를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이를 테면 명품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공로가 그에겐 있다. 핵심은 언론과 연예인, 그리고 인맥을 이용하라, 이고,  이아무개가 아닌 '필립'으로 행세하라, 이다. 스위스 현지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법인등록을 했다는 게 이 '필립'의 '플러스 알파'가 되시겠다. 신형 사기술의 귀감으로서 그의 사기술은 '합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재음미될 가치가 있다(사실 그가 판 것은 '명품'이라기보다는 '명품효과'이다. 명품의 진품성이란 건 그 효과가 한 가지 지탱요소일 뿐 본질적인 건 아니다. 그는 적어도 적발되기 전까지는 '진짜' 명품-효과를 판매했다!).

이 모든 문제성과 함께 내게 떠오른 것은 러시아 작가 고골(1809-1852)의 <죽은 혼>(1842)이다('죽은 혼'은 러시아어로 '죽은 농노'를 뜻한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주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죽은 농노들을 장부상으로 사들인 다음 그걸 담보로(장부상으론 많은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가 된다) 거액의 대출을 받으려고 한 희대의 사기꾼 치치코프의 행각을 통해서 당대의 비틀린 러시아 사회를 실감나게 묘사/풍자하고 있는 소설, 아니 '서사시'가 <죽은 혼>이다(국내에 아직 정본 번역이 안 나와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참고로 3부작으로 기획됐던 이 소설의 1부만이 완성되었고 단테의 <연옥>과 <천국>에 해당하는 2, 3부를 마저 완성시키지 못하는 자괴감에 고골은 괴로워하다가 굶어죽는다. '속물' 묘사에 천재적인 작가였지만 선한 인간은 그려낼 수 없었다).

차이라면 치치코프가 '죽은 혼'들을 거래했던 반면에 명품 시계 사건에서는 '죽은 혼'들이 거래의 당사자라는 것. 지라르의 표현을 빌자면, '낭만적 거짓'에 빠져있는 주인공들처럼. 혹은 사도 바울의 경고를 빌자면, "너희가 살아있다고 해서 다 살아있는 줄 아느냐?" 이때 필요한 것은, 지젝식으로 말하자면 '공백으로서의 주체'를 메우기 위한, 이 경우엔 치장하기 위한 모든 명품-주체화로부터 탈피하는 것, 그러한 환상을 횡단하는 것이다. '신성한 광기'란 그러한 탈피/횡단의 운동에 붙여진 이름이다(우리가 주체화에 안주하게 될 때, 인조인간의 운명은 곧 우리 자신의 운명이기도 하다. 아래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인조인간 조라).

=이제 마무리를 지어보자. 한겨레의 사설과 조선일보의 '만물상' 칼럼을 옮겨온다.

한겨레(06. 08. 10) 허영이 부른 가짜 명품시계 사건

-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치밀한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했다. 원가 8만~20만원짜리 시계를 최고 수천만원에 사서 차고 다녔다고 한다. 웬만한 직장인의 한 해 소득쯤 되는 액수를 시계 구입에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명품’에 눈이 멀어 어이없이 당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서울 강남 등의 일부 부유층이 서양 부자들 흉내내는 ‘국제 감각’은 익혔어도, 가짜를 알아보는 안목까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내실은 없이 겉치레만 신경 쓰는 일부 계층의 행태를 상징하는 듯하다(*그러니까 '대한민국 1%'가 '세계 1%'가 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얘기이다. 벼락치기 교양의 한계인 것일까?).

-사기 수법은 더욱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기 유통업자는 삐뚤어진 부유층의 허점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유럽 왕족’을 내세운 점, 화려한 제품 발표회로 현혹한 점, 특권 의식을 한껏 부추기는 ‘초우량 고객 전용’ 마케팅 수법 등이 특히 그렇다. 마치 일부 부자들을 비웃어주기로 작심한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그런 의혹은 나도 갖게 된다). 치밀성도 놀라울 정도다. ‘스위스 직수입’을 확인시키려고 현지에 직접 법인까지 차리고 상표까지 등록했다고 한다. 한탕에 거액을 챙기려는 사기범들도 이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시대가 됐다.

-이번 사건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날로 번져가는 ‘명품 집착증’의 밑바닥에는, 돈으로 치장해야 알아주고, 돈이 곧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사서 쓰는 상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소비 만능주의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크게 한탕을 벌여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사기범 또한 물신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돈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허영심과 돈을 최고로 여기는 한탕주의가 빚은 희극이자 비극이다.

-중산층에까지 번지고 있는 고급 선호 현상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질이 좀 떨어져도 국산품을 쓰자는 주장이 먹혀들던 시절도 지났다. 소비자의 고급스런 안목이 국산품의 품질 향상을 자극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다. 분수에 맞지 않더라도 부유층을 흉내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과 이를 이용하는 상술이 진짜 걱정이다. 단순히 합리적인 소비만 강조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물질만능 풍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고민이 언제 끝나시는 건지 의문일 뿐더러 한겨레의 결론은 식상하게도 '물신만능주의'와 '한탕주의'에 대한 훈계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무런 사고도 자극하지 않는, 맥빠진. 과연 "분수에 맞지 않더라도 부유층을 흉내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문제인가? 그래서 분수를 지키자?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는 또 무엇인가? "분수를 모르는 일부 부유층"? 그러니가 부유하기는 한데 아직 세계 수준에는 미달인 졸부들? "문질만능풍조"에 대해서 고민하면, 무슨 정신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같은 검색어로 뜨긴 했지만) 조선일보 칼럼까지 읽게 된 건 한겨레의 칼럼이 너무 맹탕이어서였다.

 

 

 

 

조선일보(06. 08. 10) [만물상] 신종 명품 사기극

-16세기 로마의 조르조 추기경이 큰돈을 들여 ‘잠자는 큐피드’를 샀다. 고대 조각상이라 했다. 알고 보니 젊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었다. “자네 작품을 땅에 묻었다가 고대 로마 작품이라고 팔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걸세.” 한 친구가 미켈란젤로를 꼬드겼다. 미켈란젤로는 큐피드상을 파묻었다가 친구에게 건넸다. 친구는 그걸 로마로 가져가 다시 땅 속에서 묵힌 뒤 추기경에게 팔았다.

▶르네상스시대 영국과 독일 귀족들이 자식들을 3~4년씩 파리와 이탈리아로 보내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자식들은 세련된 문화인 행세를 하느라 비싼 예술품을 잔뜩 갖고 돌아왔다. 태반이 가짜였다. 예술품 위조의 맥은 1980년대 영국의 모작(模作) 거장 에릭 헵번에게 이어 왔다. 그는 “내가 500점 넘게 그린 가짜 그림 목록을 폭로하면 미술시장이 마비된다”고 했다. “내 그림이 대영박물관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도 걸려 있다”고 비웃기도 했다.

▶예술품은 물론 약품부터 자동차까지 베끼지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세계 위조품시장은 10년 사이 17배나 팽창했다고 한다. 2003년 한 해에 4500억달러어치의 위조품이 세계를 휘저었다. 세계 무역의 6%에 이르는 덩치다. 하도 교묘하게 만들어서 진품 가게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위조품들도 자꾸 늘어난다.

▶‘루이뷔통은 변호사 40명과 조사관 250명을 전 세계에 풀어 놓았다. 이들이 2003년에 덮친 위조 현장만 4200곳에 이른다.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 명품 회사들은 때 되면 모여 머리를 맞대곤 하지만 밀려드는 위조의 해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세계적 ‘짝퉁 전쟁’에서도 보지 못한 신종 명품 사기극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연예인과 부유층이 원가 8만~20만원짜리 국산 시계를 스위스 명품으로 속아 수천만원까지 주고 샀다.

▶이 사기꾼은 명품을 위조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있지도 않은 브랜드를 하나 창조한 뒤 최고 명품이라고 거짓 선전했다. 중국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한 시계를 스위스로 가져가 통관 서류까지 받아 되들여 왔다. 백화점에서 특별전까지 열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엘리자베스여왕의 시계’라는 말에 넘어갔다. ‘짝퉁’은 명품의 후광을 맛보려는 서민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번 사기극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허영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고소한 구석이 없지 않다.(주용중 논설위원)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이번 사기극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허영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고소한 구석이 없지 않다"는 것. 이게  "문제는 일부 부유층의 지나친 행태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다"라는 한겨례의 판단보다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다. 몇 천만원짜리 시계도 차 본 사람이나 차며 부러워하는 사람이나 부러워한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라고 해서 다 죽은 혼들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06. 08. 09-10.

 

 

 

 

P.S. 이번 사건으로 챙기게 된 사실은 '명품'이란 표현 자체의 이데올로기이다. 중앙일보에서 정리해준 바에 따르면, "명품(名品)=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사치품'으로 불리다 1990년대부터 '명품'이란 단어로 대체됐다. 일반적으로 값이 비싸고, 역사가 깊고, 소량 생산되는 제품을 말한다." 진정한 사건은 '가짜 명품' 따위가 아니라, '사치품에서 명품으로의 이행'에 있었던 것이다. 아래는 그와 관련한 칼럼.

한국일보(06. 08. 16) 사치품과 명품

-인간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찾는 합리적 소비를 추구한다는 가정은 경제학을 떠받치는 기본 전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감소한다는 것이 유명한 마샬의 수요법칙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비쌀수록 도리어 수요가 늘어나는 비합리적 소비행태가 버젓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베블렌은 이를 사치적 소비를 통해 신분을 과시하려는 현상이라고 설명, ‘베블렌 효과’라는 용어를 낳았다. 비싸고 쓸모도 적은 은제품이 상류층의 식기로 널리 쓰이는 유일한 이유는 과시적 소비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싸구려 중국시계를 스위스 명품이라고 속여 수 천만원씩 받고 판 명품시계 사건은 베블렌 효과를 극적으로 활용한 사기 수법이다. 최근에는 1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이라던 시계 역시 가짜라는 보도가 있어 경찰이 가짜 명품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섰다. 문제의 가짜 명품업체는 강남 한복판에 초호화 매장을 내고 유명 연예인을 개점행사에 대거 동원했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에게 시계를 선물로 뿌리는 판촉전략을 썼다. 명품을 찾는 소비심리에는 천박한 과시욕과 함께 명품을 쓰는 계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간파한 상술이다.

-허황된 명품소비 심리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명품이란 말의 남용이다. 요즘 명품으로 통하는 제품들은 실은 사치품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대만 해도 이들 제품은 사치품이라고 불렸다. 영어로도 ‘값 비싸고 호화스럽다’는 의미의 럭셔리(Luxury) 제품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사치품이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을 의미하는 명품으로 슬며시 간판이 바뀌었다. 사치라는 단어의 거부감을 없애고 예술작품이라도 소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장난이 절묘하다.

-과시적 소비는 베블렌이 19세기말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벼락부자들의 타락적 소비행태를 질타하면서 쓴 용어다. 당대에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전통적 부자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소비행태의 이면에도 갑작스레 부를 얻은 졸부들의 과시욕이 있다고 생각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구두 굽이 닳는 것을 막기 위해 징을 박아가며 30년 동안 같은 구두를 사용한 것이 사후에 밝혀져 새삼 감동을 주었다. 진정한 부자의 소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배정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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