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여성에 대한 일련의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탓에 여성문학과 페미니즘 관련서들을 책상에 쌓아두고 있다. 독일 작가 엘케 슈미터의 <자르토리스 부인의 사랑>(황소자리, 2006)이 눈에 띈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인데, 일단 제목에서 허다한 부인들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작가의 오마주일 수도 있고 자신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분량이 200쪽밖에 안된다는 점(실제 원서는 더 적은 분량일 테니까 '중편소설' 범주에 들어갈 듯하다). 동아일보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온다.

 

동아일보(06. 08. 05) 많은 걸작은 바람난 부인들에게 빚을 졌다. <안나 카레니나> <테스> <보바리 부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여기 한 부인이 있다. 제목부터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원제 Frau Sartoris·자르토리스 부인) 이 책의 주인공, 자르토리스 부인이다.

 

 

 

 

-테스처럼 첫 남자에게 배신당했고 보바리 부인처럼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에 지친 안나 카레니나처럼 무료한 삶을 보내다가 앞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바람이 난다. 2000년 독일에서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이 “모든 극과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을 위한 오마주”라고 찬사를 보낸 것처럼,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작품 속 많은 ‘부인’들을 다시 한번 불러낸다.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남편과 마음이 잘 맞는 시어머니, 예쁘장한 딸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자르토리스 부인.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첫사랑의 상처를 지울 수 없다. 20여 년 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첫사랑 남자가 약혼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쫓기는 마음에 부랴부랴 결혼한 뒤 벌써 나이 마흔 살에 이르렀다.

-중년에 다시금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자르토리스 부인. 그러나 상대는 유부남, 그것도 유산이 많은 아내와 잘 자란 두 아들, 시청 문화국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다. 잠깐 한눈은 팔아도 야반도주를 저지를 리 만무하다. 남편에게 편지까지 써 놓고 사랑의 도피를 꿈꾸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이 중년 남자의 애인 노릇을 한다는 걸 알았다. 부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얼핏 진부한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구성이 독특하다. 자르토리스 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들려주는 중간 중간에, 도시에서 벌어진 뺑소니 사고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이 삽입된다(부인의 사연과 뺑소니 사고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데, 이런 점 때문에 평범한 연애소설이라기보다 미스터리물 같은 느낌도 준다).

-신파와 낭만을 철저하게 걷어낸 문체도 매력적이다. ‘자르토리스 부인의 불륜’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눈물 섞인 목소리가 아닌 담담하고 체념적인 고백은 ‘많은 것을 갖췄으면서도 하나를 갖지 못해’ 한없이 쓸쓸한 심정을 잘 전달해 준다.(김지영 기자)

06. 08. 07.

P.S.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작가 엘케 슈미터는 "1962년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나 뮌헨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한다. 약력을 보니,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독일의 좌파 일간지인 'TAZ'의 편집장을 지냈고, 1994년 이후 중도 좌파 주간지인 '디 차이트'와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도이체 차이퉁'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니, 전/현직 통틀어서 언론인이다.

 

 

 

 

언론인 출신의 여성작가, 하니까 떠오르는 이는 한겨레(씨네21) 기자 출신의 조선희씨이다. 엘케 슈미터보다 두 살 더 많다. 굳이 떠올리게 된 건 그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기자직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하이에나가 되기 위해서? 하이에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것이 개인차인지 아니면 한국과 독일의 (직장)문화적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려나 우리도 '자유부인'을 넘어선 우리식 부인전을 가질 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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