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며칠 늦게 고른다. 지난 주말과 휴일에 여유가 없었던 탓에다 요며칠은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대선을 한달 여 남겨두고 있는 시점이라 관심이 선거판에 몰려 있는 상황이지만, 어차피 읽는 독자들은 언제라도 읽기 마련이고 또 읽어야 한다고 우겨본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화제작을 고른다.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로런 그러프의 <운명과 분노>(문학동네, 2017)는 '버락 오바마가 꼽은 2015년 최고의 책'으로 홍보되면서 미국 아마존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는 소설이다. 그러프는 1978년생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작가. '젊은 거장'이라는 별칭도 따라붙는다는 데, 화제의 실상이 궁금해서라도 일독할 만하다. 나는 애초에 제목을 <문명과 분노>로 읽고서 문명사를 다룬 역사책으로 착각했었다는.


작가 배수아가 옮긴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한겨레출판, 2017)도 주목할 만한 책. 확실한 주관과 문체 덕분에 이제는 '배수아 번역본'이라는 점이 작가보다 더 주목되는 듯싶다. 발저의 책은 <산책>(민음사, 2016)이라고 다른 선집이 나와 있지만 배수아판이 더 눈길을 끄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거기에 미국 작가 시리허스트베트의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뮤진트리, 2017)을 나대로 꼽는다. 뮤진트리에서 나온 작가의 여섯 번째 책인데(뮤진트리 소속 작가라고 불러도 되겠다), 1992년에 발표한 첫 소설이다. 시리허스트베트의 '기원'을 엿볼 수 있겠다. 남편 폴 오스터의 흔적도 읽을 수 있을까?



그리고 미술책 몇 권. 캘빈 톰킨스의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아트북스, 2017)은 (제목 때문에) 곧바로 친밀감을 갖게 되는 책. "40년 이상 <뉴요커>에서 동시대 미술과 예술가에 관해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었던 캘빈 톰킨스가 이 시대의 가장 핫한 예술가 10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명한 비평가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북해에서의 항해>(현실문화, 2017)는 '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이 부제. "낭만주의적 정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의 제목은 벨기에의 개념미술가 마르셀 브로타스의 기념비적 작업인 '북해에서의 항해'에서 따온 것으로, 크라우스는 브로타스의 이 작업에서 현대미술을 곤란에 빠트린 ‘매체’의 개념을 구원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현대미술의 향방이 궁금한 독자라면 놓치기 어렵다. 주로 현대미술 관련서의 번역으로 이름이 익숙한 조주연 교수도 <현대미술 강의>(글항아리, 2017)를 책으로 펴냈다. 모더니즘부터 아방가르드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일목요연하다. 



2. 인문학


조금 가볍게 읽을 있는 책으로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해냄, 2017), 그레고리 라바사의 <번역을 위한 변명>(세종서적, 2017), 그리고 강상중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사계절, 2017)을 고른다. <번역을 위한 변명>에 대해 김명남 번역가가 붙인 추천사는 이렇다. "누군가 번역 일에 관하여 묻는다면 그저 이 책을 건네며 한마디만 덧붙일 것이다. “이게 다예요.”" 그렇게 강추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리고 좀 무겁게 읽을 책, 말 그대로 무거운 책으로는 <마오쩌둥 평전>(민음사, 2017)과 <덩샤오핑 평전>(민음사, 2014), 그리고 만화 <중국인 이야기>(아름드리미디어, 2017)를 고른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용도다. 



3. 사회과학 


경제 관련서로 로버트 앨런의 <세계경제사>(교유서가, 2017)가 일단 입문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와카모리 미도리의 <지금 다시, 칼 폴라니>(생각의힘, 2017)로 심화학습. 이 책에 대해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고장난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적 경제 시스템에 대한 모색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가 있다. 애덤 스미스도 케인스도 하이에크도 아닌 칼 폴라니가 가리키는 미래다. 과거에 자본주의 시장사회로의 ‘거대한 전환’이 있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이후로의 거대한 전환이다. 폴라니의 삶과 사상을 간추린 <지금 다시, 칼 폴라니>는 왜 다시 그를 읽어야 하는지를, 왜 그가 우리 시대의 나침반인지를 설득한다. 시장유토피아라는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강력한 해독제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주진형의 <경제, 알아야 바꾼다>(메디치, 2017). "인기 페북 라이브 <경제알바>를 바탕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12가지 이슈를 골라 담고, 저자가 추가 서술했다."



조금 묵직하게는 지리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창비, 2017). 그의 이론연구를 총결산하고 있는 책이다(그래서 '이 한 권'이라고 할 만한). 내친 김에 묵혀두고 있는 <맑스 '자본' 강의 1,2>(창비)도 다시 꺼내볼까 싶다. 분명 과욕이라는 걸 알지만 욕심은 그렇다. 



4. 과학 


어지간한 독자라면 피해갈 책이지만 조지프 마주르의 <수학기호의 역사>(반니, 2017)를 우선 고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의 수많은 기호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왜 필요한지를 수학사 속에서 설명한 책이다." 그리고 국내 학자 5인의 공저,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동아시아, 2017). '5개의 시선으로 읽는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이 부제인데,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생명공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해본다는 의미도 있겠다. 과학 고전으로는 이번에 재출간된 조너선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동아시아, 2017)도 챙겨둘 책. 20주년 기념판이자 새 번역판이다. "진화론 교양서의 고전 <핀치의 부리> 20주년 기념판은 다윈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와 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의 헌신과 열정을 기록했다."



5. 책읽기/글쓰기


문학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책, 인터뷰책을 골랐다. 금정연, 정지돈의 <문학의 기쁨>(루페, 2017)은 '문학 이후의 문학'은 어떤 것일지 어림하게 해주는 문학 잡담집이다. 그리고 두 권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엑스북스, 2017)은 작가 사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 두 종의 책이 문학 독자들에게는 유쾌하고 유익하다. 


17. 04. 07.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바로 이번 주에 나온 책인데,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창비, 2017)다. 괴테의 작품들에 대한 강의,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대한 강의를 이번 봄에 수차례 진행중인데, 토마스 만이 그린 괴테의 초상화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1939년작으로 만이 망명중에 쓴 소설이다. 괴테와의 또 한판의 승부는 <파우스트 박사>(1947)에서 이루어진다. 안 그래도 이번 학기에 괴테와 토마스 만을 다시 읽고 가운데 출간되었기에 반갑다(한편으론 부담스럽다. 안 읽을 수도 없어서). 여름학기에 이 두 작품에 대한 강의를 계획해보려 한다. 일단은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를 이달에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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