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심판 결정을 일주일 여 남겨놓은 주말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시국도 계절을 닮아서 봄볕다운 온기를 발산하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진짜 봄소식은 심판 이후에나 가능한 걸로 유보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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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예술
먼저 문학 쪽으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신작 시집 세 권을 골랐다.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 허은실의 <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 2017), 서효인의 <여수>(문학과지성사, 2017)다. 한국문학 대표 출판사들의 시인선으로 마치 경합이라도 하듯이 출간되었는데, 독자도 실제 높이를 대 가며 읽어봐도 좋겠다. 서효인의 시 한 대목.
"사람이 죽는 일은 거대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잠자코 앉거나 서서, 각자의 도착지를 생각할 것이다. [……] 사방이 어두운 역, 전철은 대체 여기서 왜 멈추는 것일까. 지축역 지난다."('지축역')
지축역은 3호선에 있군. 언젠가 지나가본 듯도 하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지축역 지날 때면 생각날 법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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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읊조리는 시가 봄볕과 어울리지 않다면, 에로틱은 어떨까. 이탈리아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이레네 카오의 <에로티카>(그책, 2017) 3부작이 출간되었다. '에디션D' 시리즈의 하나인데, 이 시리즈의 D는 Desire(욕망)의 이니셜이다.
"주인공은 베네치아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이후 고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레네 카오. 졸업 후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한 채 광고와 영화, 출판 등의 분야에서 계약직을 전전하며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가 이탈리아의 대형 출판사인 리촐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는 향수 가게의 점원 신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출간된 <에로티카> 3부작은 이탈리아만의 낭만과 감성을 로맨스 장르로 진하게 녹여내며 이 신예 작가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고고학 박사가 쓴 에로틱 소설이라고 해서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되는 건 아니지만(3부작을 늘어놓으니 표지는 그럴 듯하다), 베네치아에서 로마, 시칠리아로 이어지는 동선은 흥미를 끈다. 에로틱 문학기행의 여정지? 저자가 직접 가이드를 해준다면 따라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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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쪽으로는 미술사 관련서를 세 권 고른다. '미술의 요소와 원리.매체.역사.주제 -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을 부제로 단 <게이트웨이 미술사>(이봄, 2017)는 미술사의 세대 교체에 도전한다(알다시피 이 분야에서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장기 집권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르네 위그의 <보이는 것과의 대화>(열화당, 2017)는 정말 오래 전 책이긴 한데(원저는 1955년에 나왔다), 때깔 좋게 번역돼 나오니 또 독서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노아 차니의 <위작의 기술>(학고재, 2017)은 흥미로운 소재의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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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
인문 분야에서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한길사, 2017), 브라질 출신 철학자 미카엘 뢰비의 <발터 벤야민: 화재 경보>(난장, 2017), 그리고 루트거 뤼트케하우스의 <탄생 철학>(이학사, 2017)을 고른다. 마지막 책은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몇몇 탄생 철학의 선구자들과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하이데거의 사유와 한나 아렌트의 출생성 철학을 논하는 한편, 전체적으로 실존철학과 존재론적 물음을 강조하면서 탄생 철학의 윤곽들과 문제들을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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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분야에서는 국정교과서 대안으로 유익하게 읽어볼 만한 <쟁점 한국사>(창비, 2017) 시리즈 세 권을 고른다. "전근대, 근대, 현대의 3권으로 구성된 '쟁점 한국사' 시리즈는 단군조선의 강역 논란부터 한일 역사교과서 논쟁까지 역사학자들이 가려뽑은 한국사의 24가지 핵심 쟁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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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과학
국제 정세와 관련한 책을 고른다. 먼저, '전 세계를 뒤흔든 폭로 이야기', <파나마 페이퍼스>(한즈미디어, 2017). "파나마 페이퍼스의 존재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바스티안 오버마이어와 프레드릭 오버마이어 기자가 쓴 공식 완역본"이다. "세계 유수의 기업과 기업가 정치인, FIFA 수뇌부, 유명 연예인들이 파나마에 위치한 로펌 ‘모색 폰세카’를 통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탈루해왔다는 것"을 폭로한 문건이 ‘파마나 페이퍼스’다. 국내서로 김종성의 <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내일을여는책, 2017)은 부제대로 '북미 핵대결에 관한 역사적 고찰과 전망'을 다룬다. 군사전문가이자 평화활동가인 정욱식의 <사드의 모든 것>(유리창, 2017)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는 사드 문제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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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구관들의 책을 고른다(구관이 명관이라고 할 때의 구관이다). 크리스토퍼 사이크스의 <리처드 파인만>(반니, 2017)은 BBC 다큐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사랑과 원자폭탄, 상상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천재 과학자, 파인만의 일생"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더숲, 2017)은 그 자신 세계적 물리학자인 레너드 믈로디노프가 학생 시절 파인만을 찾아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2004년에 나왔던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작년 말에 나온 <칼 세이건의 말>(마음산책, 2016). 세이건의 인터뷰 16편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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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건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코스모스>나 <혜성>에 다시 손이 갈지도 모르겠다. <코스모스>의 역자 홍승수 교수의 <나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17)은 여전한 세이건의 인기와 <코스모스>의 성공 비결을 관련 전공자들과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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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책읽기/글쓰기
대만의 독서가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글항아리, 2017)는 대만판 '독서만담'이다. '우리가 독서에 대하여 생각했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이란 부제만 봐도 눈치챌 수 있다. 독서가 내지 독서중독자들에겐 남 얘기가 아닌 이야기들. 내 경우엔 한소공(한사오공)의 <열렬한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8)이 바로 떠올랐는데(그래서 도서관에서 다시 대출까지 했다. 내 책은 물론 찾을 수가 없으니까),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절판됐기 때문이다. 다시 나오면 좋겠다. 왕첸의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읽어왔는가>(글항아리, 2017)도 나란히 서가에 꽂아두고 읽어볼 만하다. 나 같은 '덕후들'이 아주 반기는 책들이다...
17.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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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사기>를 고른다. 고르나 마나한 책이긴 하다. 독서가라면 아직 손에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테고, 또 완독한 사람도 아주 드물 테다(두고두고 읽을 책이지 독한 마음으로 완독할 책은 아닌 것). 요령은 일단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을 한 권 읽는 것. 이런 류의 책이 정말 많이 나와 있다. 그러고는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열전>을 손에 드는 것. 가장 최근에 나온 연암서가판은 원문 대역본이란 점이 특징인데, 대역씩이나(?)란 느낌이 든다면 피하면 된다(원문이 궁금하다면 반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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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읽히는 건 김원중 교수의 민음사판이다. <사기 열전>은 두 권. 전6권의 <사기> 세트가 부담스럽다면, 발췌본으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사기>(휴머니스트, 2017)를 먼저 손에 들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