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책이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발견'으로 적는다. 김영건의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 2017). 첫 책을 낸 저자이기에 생소할 수밖에 없고, 제목도 특별히 눈길을 잡아끌지 않는다. 내가 꽂힌 건 부제다.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흠, 이건 내가 아는 서점이 아닌가(나는 인천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속초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내가 10대 시절을 보낸 지방 소도시의 도심에는 여섯 곳 가량의 서점이 있었고,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이곳들을 순례했다. 동선상 가장 끄트머리에 있던 곳이 동아서점이었다(내가 가장 자주 들른 곳이 좀더 도심에 있던 작은 서점 종로서적인데, 종로서적에서 동아서점까지가 10분 거리였고, 그 사이에 중앙서점이 있었다). 작년엔가 동아서점의 새 주인(창업주의 손자)이 서점을 멋지게 리모델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어서 언제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찮게도) 이렇게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강원도 속초에는 삼 대째 이어오는 서점이 있다. 바로 '동아서점'이다. 1956년부터 현재까지 60년 넘는 시간 동안 동아서점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에는 그 말들이 담겨 있다.  책의 저자 김영건 매니저는 서울에서 비정규직 공연기획자로 일하다 고향 속초에 왔다. 계약 기간도 끝나가고, 다시 이곳저곳 입사 원서를 쓰자니 대책 없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버지 김일수 씨의 서점 운영 제안을 얼떨결에 승낙했다. 아버지 김일수 씨도 비슷했다. 할아버지 김종록 씨에게 '어쩌다가' 서점을 물려받았고, '어찌어찌하다' 사십 년 동안 서점 일을 했다.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다. 김영건 매니저는 아버지 김일수 씨와 함께 서점을 재정비했다."

자주 들렀던 만큼 서점 주인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이다. 조금 친하게 지냈던 건 종로서적의 매니저 '누나'였고, 동아서점의 주인들과는 말문도 터보지 않았지만 나대로는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서점이 특별히 내게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조지 오웰의 <1984>(문예출판사)다. 중3 겨울방학이었던 1984년 1월, 그해 처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1984>였고, 구입한 곳이 동아서점이었다. 눈발도 날렸던가, 아무튼 거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나는 책을 구입한 다음에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그날의 공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에도 오래된 서점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60년이 넘었다고 하니까 덩달에 감회를 느낀다. 처음 들른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라고 치면 40년 전이다. 그래 그 서점이 비록 외관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이름과 함께 예전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또 고맙게 여겨진다. 아, 내가 쓴 책도 매대에 깔려 있다면 더 감동이겠다. 올해 몇 권의 책을 내게 되면 (확인차?) 한번 내려가보든지 해야겠다...

 

17. 02. 17.

 

 

P.S. 한편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인데,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 2016)은 '속초'를 제목으로 갖고 있어서, 그런데 '번역서'라서 놀라게 한다. "한국계(프랑스 아버지-한국 어머니)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데뷔작. 불어나 독어로 쓴 첫 작품에 한해 2년마다 선정되는 스위스의 문학상 '로베르트 발저 상'을 수상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문필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혹한으로 모든 것이 느려지는 속초를 배경으로 유럽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혼혈의 젊은 여인과 고향 노르망디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영감을 찾으러 온 중년의 만화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소개다. 이 또한 순전히 작품의 공간적 배경 때문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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