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살림, 2004)의 저자 벤저민 슈워츠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됐다. <부와 권력을 찾아서>(한길사, 2006)가 그것인데, 제목만 봐서는 이게 중국학, 내지는 중국사상사에 관한 책이란 걸 짐작하기 어렵겠다. 원제가 'In Search of Wealth and Power'(1964)이니까 역자나 출판사의 잘못은 아닌데, 그래도 좀더 풀어주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원서의 부제는 '옌푸(엄복)와 서양'이다. 소개의 글과 리뷰 한 편을 옮겨온다.
-19세기 들어서 서구 문명과 맞딱뜨린 중국의 모습을 엄복(嚴復, 1853~1921)이라는 당대의 학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20세기 서구에서 대표적인 중국학자로 기록된 학자 벤저민 슈워츠의 주저로, 그는 도올 김용옥의 유학 시절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엄복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존 스튜어트의 <자유론> 등 서양의 지식과 사상을 번역, 중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서구사상의 조화를 시도한 인물이다. 노신과 모택동 역시 그의 번역을 통해 서양 문물을 접했을 정도로 근대 중국을 형성하는 데 엄복이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한 선각적인 지식인 엄복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을까? 이 의문에 집중하는 책 전반에서 서구의 지식의 사상은 엄복과 슈워츠에 의해 이중으로 걸러진다. 즉 중국인 엄복이 본 서양을 서양인 슈워츠가 다시 보는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국가의 부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엄복의 서구 문물 번역은 대부분이 의역, 더 나아가 '창조적 왜곡'으로 나타난다. 권력의 외부로 밀려난 삶을 살다가 심지어 말년에는 서구 문물에 대한 신봉을 포기하고 노장사상에 천착하기도 하는데, 지은이는 여러 각도에서 엄복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며 그에 대한 이해와 변호를 시도한다. 그 가운데 근대화의 문제, 산업사회의 자유·평등·민주주의 이념 등에 대해 전반적인 비판과 통찰을 보여준다.
경향신문(06. 07. 08) 한 중국인이 본 서구사상과 한계
하버드대 교수였던 벤저민 슈워츠(1916~99)가 쓴 <부와 권력을 찾아서>는 엄복(嚴復·1853~1921)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과 그 한계를 살핀다. 중국인이 본 서양을 서양인이 다시 본,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엄복은 근대서양의 사상을 중국에 첫 소개한 계몽사상가. “(국가의 부강이라는) 거대한 근대적 과업을 달성키 위하여 피눈물나는 ‘붓의 투쟁’을 벌인 인물”(김용옥)이다.
(*)도올의 추천사: 엄복이라는 인간에 대해 나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책이 너무도 많은 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이며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하버드대 벤저민 슈워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용옥! 한 세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너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사진은 슈워츠 교수와 그의 지도로 학위를 받고 갓 귀국하여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김용옥.)
-지구최강 중국이 동네북이 된 당시 그는 영국 유학 이후 서양의 부와 힘의 비밀을 찾는 데 젊음을 바쳤다. 애덤 스미스, 밀, 몽테스키외 등을 중국어로 옮겼다. 루쉰과 마오쩌둥이 그의 책을 읽으며 컸다. 그는 영국의 진화론적 윤리학의 철학자 스펜서(1820∼1903)의 정신적 제자였다(*엄복의 사회진화론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우승과 열패의 신화>를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허버트 스페서의 책은 국내에 번역된 바 없는 듯하다. 이럴 때의 당혹감이라니!).
-하지만 ‘의역(意譯)’의 방법으로 ‘원전’을 왜곡했다. 중국의 부강을 위해. 예컨대 스펜서는 국가를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악으로 봤으나, 엄복은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스펜서가 비판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도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이 생존투쟁을 거쳐 이룩한 힘이 바로 국가의 힘으로 연결된다.” 그가 보기에 서양문화는 인간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와 극소수 관리가 세상 전체를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복은 1차대전 등을 겪으며 서양의 진보란 이기심·살육·파렴치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느꼈다. 노장을 새로 읽으며 은둔생활을 하다 죽었다. 우리는 엄복의 질문 앞에 서 있다. 부강이 최고 가치일까. 그렇다고 노장이 대안일까(*물론 부와 권력을 찾는 엄복의 제자들은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김중식 기자)
06. 07.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