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연휴가 길다 보니 시간이 나면 한더 더 고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한국 시인들만으로 3인이다(이응준은 시와 소설 겸업이다). 먼저, 박상순 시인. 오랜만에 네번째 시집을 펴냈다.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
"1991년 '작가세계'로 데뷔한 뒤 한국 시단에서는 만나볼 수 없던 독특한 개성과 그만의 리듬으로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한 시인 박상순. 1993년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 1996년 두번째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2004년 세번째 시집 <러브 아다지오>를 출간했으니 그의 네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은 햇수로 13년 만에 선을 보이는 것으로 그 오랜 시간의 침묵이 52편의 시에 아주 녹녹하게, 그러나 녹록치 않은 맛의 여운을 느끼게 한다."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2009)는 재가되었지만 두번재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은 절판됐다. <자네트가 아픈 날>(문학세계사, 1996)이라는 시선집도 나왔지만 역시 절판된 지 오래됐다(이것도 구해둔 듯싶지만 보관상태를 자신할 수 없다). 다 긁어모아야 200그램 될까. <슬픈 감자 200그램>은 그의 시의 은유로도 느껴진다. "무게를 잴 수 없는 슬픔의 한 줌 또 두 줌. 발랄하고 경쾌한 단상 뒤에 내 인생의 봄날 뒤에 어쩔 수 없이 닥치는 그 울음의 덩어리. 박상순의 시는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데 이는 시의 뜻이 아니고 시인의 의도도 아니고 바로 제 할 탓의 '우리' 몫이다." 그래, 13년만에 시집을 내는 시인들이 좋다. 마음에 든다.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생각해보니 영화감독이기도 한 이응준의 '이설집'도 나왔다(직접 메가폰을 잡은 <국가의 사생활>은 제작중인 건가?). <영혼의 무기>(비채, 2017). 작가는 이설집이라고 부르고 통상 '산문집'으로 읽히는 책이다.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는, 시인.소설가.칼럼니스트.각본가.영화감독 이응준의 산문집. "산문가도, 소설가도 아닌 '이설가'를 꿈꾸었다"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세상에 선보인 산문과 혼자 간직하던 산문 들을 정연히 모았다."
혼자 간직하던 것까지 모은 탓에 책은 832쪽에 이른다는 게 함정. 소개에 따르면 데뷔 후 28년만에 펴내는 첫 산문집이다. 앞서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반비, 2014)를 '이응준의 문장전선' 시리즈의 첫 권을 펴낸 바 있는데, 아마도 칼럼집으로 분류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시나 소설이란 장르만으로는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작가의 입담을 다 담아낼 수 없어 보인다. '이설'로는 카바가 되는 것인가?
어느새 중견시인으로 호명되는 함기석 시인도 '시산문집'을 펴냈다. <고독한 대화>(난다, 2017). '제로(0), 무한(∞), 그리고 눈사람'이 부제다. 절판됐지만 첫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세계사, 1998)을 읽은 지도 거의 20년이다(그러고 보니 박상순, 이응준, 함기석, 세 시인 모두 세계사에서 시집을 펴냈었군).
"우리 문단의 중견시인임과 동시에, 우리 동시와 동화에 있어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활약 속에 있는 함기석 시인의 시산문집. 이 책의 부제는 '제로(0), 무한(∞), 그리고 눈사람'으로 시인임과 동시에, 수학전공자인 그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 모음이다. 시산문. 말마따나 시이면서 산문이고 산문이면서 시가 되는 글의 모음을 이렇게 일단은 이름 붙여 보았는데, 읽는 이에 따라 누군가는 시로 읽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산문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뒤섞인 이름이 좇고 있는 그 최종 목적지에 등 돌리고 선 그 존재는 바로 '시'이기에 쉽게 '시론'으로 수렴해볼 수도 있는 책이라 하겠다."
시산문이자 산문시가 208편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총 20부로 나누어 전개되는 이 시산문은 총 208개의 독립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책장을 넘기기에 앞서 목차를 훑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라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이 208가지나 된다는 얘기다." 제목이 <고독한 대화>니 만큼 명절에 읽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대신 명절 뒤끝용으로...
17. 0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