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고 하여 하루를 은둔 수도사처럼 보냈다(이불을 뒤집어쓴 수도사?).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언제나처럼 많은 책을 뒤적였는데, 그 가운데 두 권을 '이주의 과학서'로 꼽는다. 국내 초역된 앨프리드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지오북, 2017)와 재간된 제임스 왓슨의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반니, 2017)이다.
"진화론의 숨은 창시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가 국내 초역이자 완역본으로 출간된다. 월리스는 최초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도 진화론 창시라는 위대한 업적에서 찰스 다윈보다 한 발 물러나 있던 과학혁명가다. <말레이 제도>는 월리스가 1854~1862년까지 무려 8년에 걸쳐 말레이 반도 남쪽 지역에서부터 뉴기니 섬 북서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수마트라 섬, 보르네오 섬, 자와 섬, 티모르 섬, 술라웨시 섬 등 적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군도, 말레이 제도를 샅샅이 과학탐사하고 기록한 책이다."
<말레이 제도>는 1869년작이다(한국어판은 1890년에 나온 제10판을 대본으로 삼았다). 그냥 액면으로도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1839)를 떠올리게 하는데, 연도를 보니 <말레이 제도>가 30년 뒤에 나왔다. 윌리스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관한 논문을 먼저 썼지만 이를 다윈에게 보냈던 것은 그에 대한 존경심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 존경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싶다. 확인해보니 <비글고 항해기>는 구매 내역에 없다(장바구니에 넣어만 둔 것인가?). 몇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는 리잼판만 남아 있는 듯싶다. 여유만 있다면 두 권을 연이어 읽어볼 만하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추천사는 이렇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이름은 자연사라는 지층에서 팔꿈치 하나만 내놓은 일종의 전설이었다. 21세기의 자연사학자는 19세기의 자연사학자의 탐험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월리스와 함께 오랑우탄과 나비를 쫓고 함께 열병을 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월리스라는 전설은 이제 살아 있는 역사가 되었다."
월리스가 19세기 자연사학자이자 진화론자라면 제임스 왓슨은 20세기 분자생물학의 아버지다.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일찍감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할 당시 그의 나이는 34살이었다.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는 이 '과학 영웅'의 세번째 회고록이다. 첫번째 회고록이 유명한 <이중나선>(1968)이고, 두번째가 <유전자, 여자, 가모브>(2001)로 모두 번역돼 있다.
그밖에 자전적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 <DNA를 향한 열정>(사이언스북스, 2003)도 추가할 수 있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인데, 지금은 물론 어디에 꽂혀 있는지(혹은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1953) 50주년을 맞아 2003년에 출간되었고 그해 우리말로도 번역되었으나 절판된 지 오래 되었다. 책소개는 이렇다.
"제임스 왓슨이 1968년부터 근무해온(이전엔 무명이었으나 그로인해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 연구소로 알려진)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CSHL)에서 펴낸 글 모음집이다.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왓슨이 쓴 글중에서 그의 삶과 생명과학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을 모으고 거기에 자전적 소개글을 추가했다. 따라서 이 책은 제임스 왓슨의 일기장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부러 짜맞추고 덧대고 복잡하게 정리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왓슨을 대할 수 있다."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이레, 2009)는 진즉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지 오래됐었는데, 이번에 재간된 것. 역자에 따르면 회고록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자 종합판이다. 한권만 읽는다면 이 책을 고르면 되는 셈.
왓슨의 책으론 몇 종의 번역본이 나온 <이중나선> 외에 <DNA: 생명의 비밀>(까치, 2003), <왓슨 분자생물학>(바이오사인스, 2014) 등이 더 번역돼 있다. <분자생물학>은 대학 교재인데, 여전히 이 분야의 대표 저작인지 궁금하다(7판까지 나온 걸 보면 그런 듯싶다).
왓슨의 회고록을 다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옮긴이의 말'만 읽어두어도 좋겠다. 왓슨에 대한 많은 정보와 평가가 잘 간추려져 있다...
17. 0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