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문화일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中 한손엔 '마르크스' 한손엔 '공자' "였다. 중국의 현재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두 인물이 마르크스와 공자라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한 출판사 사장은 원고료를 독촉하러 간 소설가에서 '마르크스와 장자'에 관한 썰을 한참 풀어대는데, 그게 우스개가 아니라 '현실'인 것! 비록 '장자'가 '공자'로 대체됐지만). 두 사람이 현재의 중국 이해의 키워드인 것. 이 키워드들과 관련한 허민 베이징 특파원의 두 기사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6. 23) 중국의 '두 얼굴' 통치 이데올로기
-한쪽에서는 마르크스연구원이 문을 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자(孔子)학원이 세워진다. 한 손엔 마르크스의 어록, 다른 한 손엔 공자의 말씀이 쥐어져 있다. 최근 마르크스주의와 유교이념을 양대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중국의 두 얼굴이다. 마르크스 살리기가 도농차별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처방이라면, 공자 부활은 화해 분위기 정착과 평화 이념 전파를 위한 문화적 통치도구다.
◆ 되살아난 공자 = 중국에서의 공자 부활은 국내용과 국제용,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정부와 학계가 앞장서 공자붐을 일으키고 있다. 공자어록이 출간되고 주요대학에 유교연구원 또는 유학원이란 이름의 공자사상연구소가 세워지고 있다. 정부는 공자 탄생일인 9월 28일 공자의 고향 산둥(山東)성 취 푸(曲阜)에서 정부 고위관리와 외교사절 등이 대거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나라 밖에서는 공자학원 설립 운동이 활발하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문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르완다에도 공자학원이 세워졌다. 앞서 지난해 말엔 케냐 나 이로비대학에 아프리카 첫 공자학원이 개설됐다. 이들 3개국 이 외에도 아프리카 각국의 5개기관이 공자학원 개설을 신청해 놓고있어서, 아프리카에서의 공자학원은 곧 8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해외의 공자학원은 중국문화 전파의 첨병이다. 공자학원은 2004 년 12월 서울에 1호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 모두 75개가 설립됐다. 중국 정부는 올 연말까지 이를 100개로 확대한 다는 계획이다.
◆돌아온 마르크스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권력 장악 이후 눈에 띄는 국가적 차원의 중요 프로젝트를 들라면 그중 하나 가 ‘마르크스주의 공정’이다. 지난해 12월 16일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이데올로기 담당)이 한 공식석상에서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무제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마르크스주의 연구 공정’이 정식 출범됐다.
-이후 중국 사회과학원 부설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가 연구원으 로 승격됐고, 최근 국가급 및 성시(省市)급 연구원들이 속속 들 어서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앞으로 10년동안 이 공정을 진행시키면서 3000여명의 학자들을 참여시켜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 등 제반 분야 연구 성과를 방대한 저작으로 담아낼 예 정이다(*마르크스주의가 한국에서는 '혁명철학'일는지 몰라도 중국에서는 '관변철학' 혹은 '통치이데올로기'이다. 그나저나 3000여명의 학자라... 쪽수가 많긴 많은 나라군!) .
-언론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의 최대매체인 신화통신과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최근 각각 ‘홍색의 기억(紅色記憶)’이란 고 정란을 두고 사회주의혁명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인민일보'란 말 대신에 굳이 '런민르바오'라고 써주어야 할까?). 중공 중앙당 교의 한 정치학 교수는 “중국식 사회주의체제의 이해와 구축을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중국의 실정에 맞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런민(人民)대학의 한 사회학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충성심을 고취하고 국가권위를 확립시키며 민족적 응집력을 높이고, 국제적 으로는 평화와 조화이념을 강조하는 데 공자말씀보다 좋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06. 06. 09) 공자가 살아야 중국이 산다?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서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中央黨校) 모 교수의 느닷없는 질문에 기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의 질문이 몇년전 한국의 베스트셀러를 거론한 것이란 사실을 안 것은 오래지 않았다. “과거 한동안 중국에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조화사회를 건설하려면 공자가 다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교수는 왜 죽은 공자를 다시 살려내야 하는지 메모지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지금 전환기의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마오이즘만으로는 되지 않는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를 요구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이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흔들리는 체제를 안정시키며 통치의 권위를 보장해주는 국가경영의 화두가 필요하다. 바로 유교사상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일련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이 왜 어느날 갑자기 “조화가 소중하다”며 ‘공자 왈(曰)’ 했는지, 왜 갑자기 국가를 영광되게 하는 8가지와 욕되게 하는 8가지라는 ‘바룽바치(八榮八恥)’를 설파했는지 알 것 같다. 왜 지도부가 기회만 있으면 ‘허셰(和諧)론’을 강조하고 중국 외교부가 거액을 들여 해외에 중국문화 원이란 이름으로 ‘공자 학원’을 세우고 있는지도 이해가 된다. 모두가 다 유교이념의 전파다.
-그러고 보니 민간이나 학계쪽에서도 이미 공자의 부활을 위한 크고 작은 시도들이 있었다. 지난해 말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스승의날을 현행 9월 11일이 아니라 공자 탄생일인 9월 28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런민(人民)대는 그해 9월 학기부터 ‘국학원(일명 공자연구원)’을 설립했고 사회 과학원은 ‘유교연구중심’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공자 왈 맹자 왈’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독경(讀經)운동’이 번진 것도 이때였다.
-중앙당교의 교수는 말했다. “지금은 조반(반란을 꾀함)이 아니 라 조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 시대 홍위병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강화를 받들어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르짖었다. 기존 질서는 붉은깃발 아래 압사했고 모든 혁명적 선동과 가치의 전복이 정당화됐다. 공자가 봉건적 누습(陋習)의 근원이라는 이 논법은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조반의 시대는 곧 공자 수난의 시대였다.
-그후 40년, 시대가 확 바뀌었다. ‘무한 욕망’과 ‘사적 소유’라는 양대 복음을 추동력으로 진행된 시장경제적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됐다. 하지만 그 부산물로 빈부격차, 부정부패, 체제불안, 사회저항이 생겼다. 이 같은 모순과 갈등구조를 치유하기 위한 통치 이념이 절실히 요구되면서 체제안정, 권력순응, 질서유지, 권위숭상이 귀하게 여겨지게 됐다. 민족적 응집력을 높이면서도 평화와 조화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결국 공자의 부활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 되면 죽었던 공자가 중국에서 다시 살아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중국 정부는 공자 탄생 2557주년을 맞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9월28일 공자의 고향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지난해의 경우 중앙방송(CCTV)을 통해 기념행사가 생방송된 뒤 국민들의 애국심이 한껏 고취됐다는 보고가 있다. 앞으론 중국의 새 지도부 출범 때마다 공자의 묘에 가서 제례를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교이념이 언제까지 중국사회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지는 미지수다. 공자의 부활 자체가 사회경제적,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깨어난 공자는 자신의 부활을 달가워할까.
06. 0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