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정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한두 달 된 거 같다) 어느 사이엔가 책들이 또 쌓여서 '깨끗한' 난민촌 같은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홀가분한 건 엊그제 국회에서의 탄핵 의결 덕분이다. 물론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의 결과다. 혁명은 장기적 과정이기에 방심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첫단추는 끼워졌다(러시아혁명에 견주면 2월혁명은 10월혁명을 남겨놓고 있다). 나대로 할일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강의하고. 보통의 경우라면 강의는 필수적이지 않지만 읽고 쓰는 것은 매일의 일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 역량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이번 주에는 문학교수 3인이다.  



독문학자로 다수의 독문학 작품, 특히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들을 옮겨온 장희창 교수가 고전 독서에세이를 펴냈다. <장희창의 고전 다시 읽기>(호밀밭, 2016). 어떤 책이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다. 

"괴테, 귄터 그라스, 니체, 레마르크, 안나 제거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문호들의 작품세계를 오랫동안 우리말로 옮겨온 한편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산문으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들었던 고전연구가 장희창 교수가 동서양을 대표하는 고전 38편을 소개한다. 저자는 38편의 고전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다정하면서도 서늘한 특유의 문체로 안내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를 투시했던 대가들의 정신을 온전히 담은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혼란하기만 한 시대에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다." 

원로 문학교수의 원숙한 지성과 성찰을 읽어볼 수 있겠다. 더불어 고전 독서의 자극도 얻을 수 있겠고. 


 

불문학 교수이면서 가장 열정적인 시비평가의 한 사람인 조재룡 교수도 새 비평집을 펴냈다. <한 줌의 시>(문학과지성사, 2016).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14)부터는 <번역하는 문장들>(문학과지성사, 2015)까지 1년에 한권 페이스다. 이번 책도 31편의 시비평을 담고 있는데, 분량이 거의 800쪽에 이른다. 괴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문학평론가 조재룡 비평집. 지난해 2015년 소개된 <번역하는 문장들>이 번역의 문학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번역의 인식론을 둘러싼 언어-문화의 변화를 탐문하는 근본적인 성찰에 중점을 둔 역저였다면, 이번 평론집은 전작 <시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에 이어 800쪽 가까운 지면을 오롯이 한국 현대시에 대한 현장비평에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2003년 본격적인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한 이래 줄곧, 말의 형식과 삶의 형식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삶의 긴장을 표현한 언어의 총체성으로서의 한국 현대시를 톺아보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한 줌의 시> 역시, 프랑스 현대시와 비평, 그리고 번역이론을 공부한 불문학자이자 번역가답게 해박한 이론지식과 실증적 분석에 기초한 시 비평의 내용과 형식, 개념과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비평문 31편을 담고 있다." 

2000년대 한국시의 향방이 (진지하게) 궁금한 독자라면 통독해 볼 만하다. 



주로 푸슈킨의 대표작들을 많이 번역해온 러시아문학자 최선 교수도 정년을 맞아 40년간에 이르는 러시아문학 연구의 성과를 정리했다. 첫 권으로  나온 것이 <러시아 시 연구>(우물이있는집, 2016)다(세 권 가량이 더 예졍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최선 교수의 '40년간의 러시아문학 연구'를 집성한 '러시아문학연구' 총서의 첫 책으로 주로 러시아 시와 관계된 글들을 담고 있다. 이 글들은 19세기 사실주의 시의 대표인 네크라소프(1821-1877)의 시적 화자와 19세기 패러디 시를 다룬 논문들, 시 분석 방법에 대한 소개글 그리고 러시아 시 번역서에 붙인 글 저자가 기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네크라소프 시의 화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생겨 소설에서 화자의 문제가 중요시되는 고골의 '외투'(1842)의 화자에 대해 글을 썼고 시인 네크라소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소설가 곤차로프의 소설 <오블로모프>(1859)를 읽으며 19세기 중반 러시아 소설 장르에 나타난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러시아문학에 입문한 지는 30년이 되었다. 학부생 시절에 최선 교수의 몇몇 작품론, 특히 <오블로모프>론 같은 걸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 저자뿐 아니라 독자도 소회를 갖게 되는 책이다. 87년 여름에서 2016년 겨울까지, 어느새 한 세월이 지나갔구나...


16. 12. 11.



P.S. 최선 교수의 '러시아문학연구' 시리즈의 나머지 세 권도 완간되었다. <20세기 러시아 노래시 연구>, <유럽문학 속 푸슈킨 연구>, <푸슈킨과 오페라>(우물이있는집, 2016) 순이다.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유익한 연구 자료와 자극으로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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