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로 예정된 국회의 탄핵 의결을 앞두고 있다. 절대 다수 국민의 바람대로 의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소위 '질서 있는' 정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부결된다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분노 정국이 전개될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12월의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아직은 평상심으로.
1. 문학예술
젊은 한국 작가들의 신작 소설들을 골랐다. 황정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문학동네, 2016), 최정화의 장편 <없는 사람>(은행나무, 2016), 정세랑의 장편 <피프티 피플>(창비, 2016) 등이다. 제목만으로도 작품의 주제 혹은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소설들이다.
그리고 지난달에 세상을 떠난 아일랜드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의 책들을 추모의 의미로 올려놓는다. 한 차례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소설가들의 소설가'가 보여주는 대가적 솜씨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2. 인문학
역사 분야의 책으론 이이화 선생의 <이이화의 한 권으로 읽는 한국사>(교유서가, 2016)과 류시현의 <동경삼재>(산처럼, 2016), 이영석의 <영국사 깊이 읽기>(푸른역사, 2016)을 고른다. <이이화의 한권으로 읽는 한국사>는 <역사>(열림원, 2007)의 개정판인데, '옛조선부터 6월항쟁까지'가 부제다. 500쪽 분량이지만 그 긴 시간의 역사가 어떻게 한권으로 응축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독서의 포인트. <동경삼재>는 '동경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삶과 선택"을 살펴본 책이다. 조선이 낳은 3대 천재로 불렸던 이 세 사람의 인생 행로가 정확하게 한 시대를 증언한다. 끝으로 <영국사 깊이 읽기>의 소개는 이렇다.
"30여 년간 영국 근대사를 연구해온 저자 이영석 교수(광주대)가 동아시아 출신 연구자의 입장에서 근대 영국 역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하나는 전통 지배 세력이 근대화 과정에서 뒤처지거나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던 작은 섬나라가 근대 세계의 형성을 주도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전에 그가 펴낸 <근대의 풍경>, <영국 제국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영국사와 관련해서는 가장 지속적으로 연구 저작을 펴내고 있는 저자의 성실함이 미덥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몇 권의 이슈도서를 골랐다. 대니얼 솔로브의 <숨길 수 있는 권리>(동아시아, 2016)는 '국가권력과 공공의 이익만큼 개인의 사생활도 중요하다'는 부제가 주제를 말해준다. "저자는 ‘사생활=비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생활도 ‘사회적인 가치’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간 안보강화론자들이 내세워온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생활은 희생되어야 마땅하다’라는 논리에 이성적으로 반박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민섭의 <대리사회>(와이즈베리, 2016)는 "저자가 익숙하게 체험한 3가지 통제(행위, 말, 생각)를 바탕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매튜 데스몬드의 <쫓겨난 사람들>(동녘, 2016)은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도시 빈민층에 해당하는 여덟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대도시에서 주거 정책이 어떻게 가난과 불평등을 야기하며 또 지속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김홍중의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 2016)과 함께 프랑스의 계간지 '오팡시브'에 실린 글들을 모은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갈라파고스, 2016)도 관심도서로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광고와 텔레비전, 스포츠, 관광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확산이 낳은 대중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기존의 사회적 관계망이 어떻게 해체되는지, 공동체의 일원이 어떻게 해서 점차 고립된 개인으로 전락하는지,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를 통해 대중이 결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분별한 소비자로 파편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책이다."
더불어, 사회학자 김영선은 <정상인간>(오월의봄, 2016)에서 '시대의 인간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탐문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모습이, 일상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저자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한다.
4. 과학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전2권)과 함께 좀 묵직한 책으로 오철우의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동아시아, 2016)를 고른다.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과학사회학적 시각에서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과학 논쟁을 면밀하게 들여다본 책이다.
과학 분야는 눈여겨 볼 책들이 많아서 몇 권 더 고르면,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열린책들, 2016)은 면역학 분야의 책으로는 드물게 접근가능한 책이다. "면역학이라는 난해한 과학을, 시적 은유를 동원해 아름답게, 동시에 냉철하게 서술한다." 김홍표의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궁리, 2016)는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으로 읽는 20억 년 생명 진화 이야기'를 다룬다. 교양서라고는 하지만 수준이 높은 편이다. 널린 알려진 과학 저술가 닉 레인의 <산소>(뿌리와이파리, 2016)도 다시 나왔다.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을 수상한 저명한 생화학자 닉 레인은 산소가 지구상 생명의 진화와 노화와 죽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5. 책읽기/글쓰기
이동진, 김중혁의 <질문하는 책들>(예담, 2016)은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책수다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인문교양서 9권을 엄선하여 정리하고 보충했다. 최종규의 <시골에서 책읽는 즐거움>(스토리닷, 2016)은 알라디너이기도 한 저자가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네 식구와 시골살림을 꾸리고, '도서관학교'라는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을 일구며 함께 배우는 동안 읽은 책 이야기이다." 그리고 권민창의 <권중사의 독서혁명>(책읽는귀족, 2016)은 공군 7년차 직업군인인 저자의 독서체험기다."저자 자신이 현역 군인이기 때문에 외부 독서 전문가가 전할 수 없는 같은 눈높이의 독서 체험담이 더 생생하고 흥미롭다. 이뿐만 아니라, 자칫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며 군대생활을 할 수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 독서를 통해 미래의 꿈에 대한 안내를 자처한다. 또한 군대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각자에게 맞는 책들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병영도서로도 유력해 보인다.
16. 12.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고른다. "도스또예프스끼의 5대 장편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그는 완전히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을 구현하기를 염원해 왔고, 그 형상을 백치인 미쉬낀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돈키호테>에 이어서 이번 달 푸른역사아카데미의 강의에서 나도 오랜만에 읽어보게 되었다. 아래는 러시아판 영화 <백치>(2003)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