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러시아문학 얘기를 잠깐 적는다. 제목대로 <전쟁과 평화>와 <닥터 지바고> 두 소설 얘기, 정확하게는 두 소설의 번역본 얘기다. 지난달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문학동네, 2016) 번역본이 나왔다(이달에는 양장본이 출간되었다). 



새 번역본이라기보다는 박형규 선생의 예전 번역본의 개정판이니 개역판이다. 분량이 방대하여 일단 1권만 출간되었는데, 완간까지는 1년 가량 더 소요될 예정이라 한다. 번역과 교정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문학동네판으로는 프랑스 출판사에서 나온 만화판도 나와 있다. 어린이용에 해당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성인 독자들에게도 어필한다(물론 영화나 TV 시리즈도 여러 편 나와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소설들이 있다. 소설의 역량을 극대화하면서 그 한계를 실험하는 소설들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아니 이 대작은 거기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다. 러시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면서 동시에 역사란 무엇인가, 무엇이 역사를 움직이는가라는 물음에도 답하고자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소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우리는 신의 시점으로 세상을 내려다본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신이다."


<전쟁과 평화>는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문학동네판 외에도 한두 종이 더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당장은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 적어도 새 번역본으로는 말이다. 그 공백을 잠시 메우고 있는 것이 오래 전 번역본으로 최근에 다시 나온 동서문화사판이다. 그리고 도서관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박형규본들이다(여러 출판사에서 중복돼 나왔지만 표준적인 건 네 권짜리의 범우사판이다. 문학동네판도 네 권짜리로 나올 예정이다). 오래전에 학부 강의 때 이용했던 게 범우사판인데, 내년 겨울쯤에는 새 번역본으로 <전쟁과 평화> 완독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말이 나온 김에 영화판도 지적하자면 킹 비더 감독의 <전쟁과 평화>(오드리 햅번과 헨리 폰다 주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규모 면에서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러시아판 <전쟁과 평화>가 압도적이다(런닝타임이 400분에 이른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BBC판도 궁금한데, 이건 아직 자막판으로 출시되지 않았다. 



'20세기판 <전쟁과 평화>'로 불리는 작품이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인데, 현재 번역본 빈곤 상태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영어 번역판인 안정효본과 러시아어 번역판으로 오재국, 박형규본이 그간에 대표 번역본이었는데, 현재는 오재국의 범우사판만 남아 있고 다른 두 종은 절판된 상태다. 대신에 동서문화사판이 올해 다시 나왔다.    



강의 때는 주로 박형규본을 이용했었는데(오래 전에 범우사판도 한 번 쓴 적이 있다) 절판된 상태라, 그리고 나머지 번역본들도 너무 '올드'해서 강의가 여의치 않은 상태다. 새 번역본들이 최소 두 종은 앞으로 나올 예정인데 가급적이면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읽을 만한 새번역본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로는 <전쟁과 평화> 이상으로 유명한 작품에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이지만 DVD로는 절판된 게 많다(인터넷에서 저렴하게 다운받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제작된 TV시리즈 <닥터 지바고>도 볼 만한데, 국내에 출시되길 기대하긴 어렵고 유튜브를 통해서 보실 수 있다(영어 자막이 서비스된다). 


요컨대, <전쟁과 평화>나 <닥터 지바고>나 현 시점에서는 강의할 번역본이 없다는 것. 내년에는 새 번역본 나올 예정이라 기다려진다는 것. 내년에는 정권도 바뀔 터이니 아주 오랜만에 새해를 맞는 기분을 좀 내볼 수 있겠다. 아, 1월초에 러시아문학 기행을 떠나게 되면 러시아에서도 기분을 좀 내봐야겠다... 


16.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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