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번역가, 사회학자, 연극학자, 3인이다. 먼저 프랑스문학 번역자 김남주의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사라지는 번역자들>(마음산책, 2016). 산문집으로는 <나의 프랑스식 서재>(이봄, 2013) 가 먼저 있었지만, '전작 산문집'으로는 처음이라 한다. 


"30년 가까이 프랑스와 영미 문학을 전업으로 번역해온 김남주가 전작으로 쓴 첫 산문집이다. 프랑스 아를의 번역자회관에서 지내는 동안 유럽, 남미,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번역자들과 나눈 '좋은' 번역과 번역자로서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두루 담고 있다. 직역과 의역, 중역에 관한 심도 있는 공론을 나누고 번역의 윤리와 한계에 대해서도 신중히 고찰한다. 세계 곳곳에서 온 번역자들이 만든 특색 있는 요리와 소소한 파티, 나들이를 즐기는 와중에도 어느덧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로 자리 잡은 번역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프랑스 현대문학 독자라면 저자의 이름이 친숙할 텐데(고 김남주 시인과는 동명이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일문학 번역자인 김난주와 헷갈리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로맹 가리의 책들이고 역자의 대표작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문학동네)이다. 번역이나 번역자와 관련한 모든 에피소드와 성찰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라 기꺼이 손에 들게 되는 산문집이다.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역임한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 2016).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지 7년만이다(그밖에 <눈먼자들의 국가>를 비롯한 몇 권의 공저가 있다).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이 닥쳐왔다. 세월호가 침몰했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해체되고 소멸해가고 있다는 시대적 감각이 우리 삶의 일상을 근원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사회의 마음이 꿈꿔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파상의 시대. 사람들은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 앞에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린다. 이러한 파상의 시대는 문명사적으로 대변동의 시기이며, 대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꿈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문제화되는 시기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바로 그 '현장'에 발 딛고 서 있는 동시대의 증인이다."

저자는 기존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이라고 '파상(破像)'이라고 지적하는데 '파상력'이란 말의 출저는 발터 벤야민이다(그렇더라도 아직 사전에 등재된 용어는 아니다). 바로 대비가 되는 것은 라이트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사회학적 상상력과 달리 파상력은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저자는 적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와해되는 것이(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사건이 떠오르는군) 우리 시대의 지배적 경험이라면 현 시국도 낯설지 않다. 다만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에 대한 기획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과제와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다르게 말하면 '박정희교'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학술지에 발표된 글이 많아서 눈대중으로 읽을 수 없는 책이지만 성찰의 무게감이 느껴져 반갑다.  



연극학자이자 연극평론가로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치운 교수의 평론집이 출간되었다. <연극, 기억의 현상학>(책세상, 2016). 평론집이라고 적었지만 부제는 '안치운 연극론'이고 분량도 묵직하다. 동서고금의 연극을 두루 살펴본 저자의 체험적 연극론이라 신뢰할 만하다. 

"연극평론가로서 30년 넘는 세월을 극장 어두운 객석에 앉아, 시대의 모습이 반영된 연극의 의의와 미학적 가치를 소개해온 안치운의 연극론.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현대 유럽 연극까지, 피나 바우쉬에서부터 기국서에 이르기까지 동서와 고금을 오가며 연극의 큰 줄기를 훑어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극을 지탱하고 있는 이론적 배경과 개별 작품 분석한다."  

아주 가끔 공연장에 가보면 관객은 그래도 꾸준히 극장을 찾는 걸로 보이는데(흥행작만 찾아서 그런가?) 연극학이나 연극평론집 독자는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2000명은 기대하기 어려울 테고, 1000명은 있는 것인지? 나중에는 최후의 300명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하긴 그렇게 따지면 좀더 자주 출간되는 문학평론집도 사정이 나을 건 없겠다. 이 또한 '파상'의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16.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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