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책은 나올 만큼 나오기 때문에(*이 글은 2004년 2월말에 씌어졌다), 시시콜콜히 한두 마디씩 소개하자면, 일주일에 50권쯤은 카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순위란 게 필요하다.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커트라인을 만들고 개인적인 관심과 흥미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선정된 책들은 대개 두 부류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과 (소장/출판)가치가 있는 책. 그렇더라도, 나의 기준과 판단은 모든 책에 두루 미치지 않는다. 대개 역사서들이나 소설류들이 많이 빠져나가는데, 이런 분야의 책들이 다른 분들에 의해서 보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는 언제나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고 있지는 않다.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사서 읽은 건 아마도 중학교때부터인 듯한데, 이후로 서점순례는 내가 돈주고 고른, 혹은 돈주면서 유지하는 '직업' 같은 것이 돼 버렸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기 때문에, 다행히(?) 살 책이 그리많지 않았지만, 나는 하루에도 여러 곳의 서점을 돌아다니는 일을 수고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고, 2-3년 전부터는 인터넷 검색이 그런 수고를 대행하게 되었다. 그간에 서점이나 서점에 깔린 책들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새로나온 책의 표지와 질감, 그리고 부피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흥분이다. 그 흥분이 나의 삶을 결정했고, 아직도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이지만...

물론 나의 관심이 물리적인 책에 국한되었다면, 나는 장서가에 만족했을 것이다.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책이라는 어떤 물리적 부피 안에 있는 영혼, 혹은 살아있는 정신이다. 그런데, 이 영혼이라거나 정신은 책에 들어있는 글자들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글자들 자체이다(정신은 뼈다!). 나는 위대하고 박식하고 영민하고 섬세하며 투쟁적인 영혼들을 사랑하며, 바로 그 글자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다 읽은 책이라도 읽을 만한 책은 버리지 않으며(나는 책을 이용해먹는 걸 혐오하며, 실용서들을 폄하한다), 빌려 읽었더라도 읽을 만한 책은 내돈 주고 다시 산다. 유감스러운 건, 이 책들을 살돈을 벌기 위해 책읽을 시간에 일해야 했다는 것. 그리고 막상 책을 읽으려고 하면, 책살 돈이 없다는 것. 이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얼른 '책읽는 게 돈버는' 직업을 구해야겠다!..

물론 책을 읽는 한편으로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고, 또 쓴다. 그건 순전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누군가 대신 써주지 않아서 쓰는 책이다(그런 책이 아직 여러 권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내가 써보고 싶지만 쓸 수 없는 걸 누군가 대신 써준 책이고, 내가 싫어하는 책들은 나보다 못쓴 책이다(나보다 번역을 못한 책들을 나는 혐오한다).

어쩌다 넋두리가 돼 버렸는데, 그래서 어쨌든 나보다 잘 쓴 책, 혹은 잘 쓴 것처럼 보이는 책 몇 권을 더 소개한다(사실, 이런 연재야 혼자 기분내는 거에 불과하지만, 혹 한두 명이라도 정보나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한 후배 말대로 '쓸데없는 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번 더 '쓸데없는 짓'과 경쟁해 보기로 한다). 

 

 

 


성석제의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강) 그대로 멈춘 것이 아니라, 출간됐다. 우리시대의 이야기꾼이라고 할 만한, 가히 '성구라'라고 할 만한 이 작가는 사실 소설을 쓴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쓴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도 친구들 사이에선 이야기를 재미없게 한다고 구박만 받았다는데, 그 친구들이 그를 그나마 인정해준건 '말은 못해도 글로 쓰면 가끔 재미있더라'는 이유 때문이라고(*그가 글로 쓴 책들은 이후에도 <재미나는 인생>, <아름다운 날들>, <소풍> 등이 더 출간됐다).

신간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길위의 이야기'나 <씨네21>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는데(*작가 이순원도 연재를 얼마전 <길 위에 쓴 편지>란 책으로 묶어냈다), 그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이 사읽어서 밑지지 않을 만큼의 재미로 충전돼 있다(내가 읽은 몇 토막 글로 판단하건대). 그는 아마도 재미있는 작가, 즐거운 작가로 얼마간/오래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10년쯤 더 살아봐야겠다.

 

 

 



이에 뒤질세라 김영하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창비)도 나왔다. 문학동네로 등단한 작가가 문지에서 책을 내더니 이번엔 창비다(아주 돈독한 '문학동네'가 아닐 수 없다). 작가 신경숙이 그러했는데, 이건 또 무슨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성석제보다 8년쯤 아래 연배인 김영하는 40대 작가 성구라와 마찬가지로 30대 작가를 평정할 만한 재간둥이이다.

자신도 고백하듯이 그는 마치 시험 답안지를 쓰듯이 소설을 쓰는데, 압축된 분량일수록 그의 장기가 살아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그는 성석제의 뒤를 이어서 한국일보의 같은 연재를 떠맡은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씨네21>에도 연재했군). 그는 매일 오후 6시까지 소설을 쓰고, 저녁엔 맥주를 마시면서 티브이를 본다고 한다. 요컨대, 그는 직업/전업작가인 것이고, 그런 생활은 아마도 정년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재치있는 작가가 생업을 해결한는 데에서 더 나아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20년쯤 더 살아보면 알 수 있을까?

참고로, 이미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김영하의 단편들 가운데, <사진관 살인사건> 등이 영화화된다고 한다(작가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 영화가 <주홍글씨>였다). 사실 그 단편에서도 잘 드러나는 바이지만(화자는 강력반 형사이다), 김영하의 문체는 '조서체'인데, 그건 그의 헌병대 군복무 경력과 관련이 깊다. 우리 작가들 가운데는 해병대 출신이 여럿 있어서 작년엔가는 해병대 출신 문집까지 낸바 있는데, 그런 출신으로 따진다면, 김영하는 헌병대 출신중 가장 잘 나가는 작가이다.

 

 

 



일본 작가 와타야 리사의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황매)이 신속하게 번역돼 나왔다. 나는 만 20세의 작가가 어떻게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했는지 신기하고 의아스럽지만(귀여니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보라), 외모로 상을 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름대로 내공이 있을 터이다(*그녀의 책으론 <인스톨>이 더 출간돼 있다). 리뷰로 보건대는 또래의 이야기인 소설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문체)가 높은 평을 얻은 모양이다. 그건 귀여니가 보고 배울 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곧 문체는 그 작가이다. 재미있는 건, 황매라는 출판사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를 출간한 출판사라는 것. 일찍부터 필자 확보 차원에서 선계약을 했던 출판사로선 횡재한 경우이다(이 출판사의 편집주간이 이산하씨인데, 설마 시인 이산하씨일까?).

 

 

 



네번째 책은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전기 <글로리아 스타이넘>(해냄)이다. '아름다운 페미니스트'라고 반페미니즘적인 부제를 달고 출간된 이 책은, 이 세계적인 여성운동가의 삶과 실천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고 한다. 한 서평에선 그녀가 '66세에 다섯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 할머니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기도 했다'고 적는다. 페미니스트도 예뻐야 이름이 남는 것인지(일부에선 그녀의 업적이 외모 때문에 가려졌다고 평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녀의 책들은 <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현실문화연구) 등 여러 권이 번역돼 있다. 개인적으론 프랑스식 페미니즘(이론)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타이넘의 책은 읽은바 없지만, 한 사상가/운동가의 전기가 그의 저작들과 함께 소개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끝으로, 이론서 한권. 사실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미토)도 95년판이 박홍규 교수의 재번역으로 나왔지만(이전 것은 76년판), 일리히의 전집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언급하도록 한다(일리히 책 몇 권을 아직 안 읽기도 했고. *일리히의 책은 도서출판 미토에서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의 최신간은 <그림자 노동>이다).

 

 

 

 

대신에 오랜만에 나온 문학이론서로 꼽을 수 있는 <문학해석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의출간소식을 전한다. 저자는 피터 손디(Peter Szondi). '쏜디'로 더 많이 읽히는 손디는 사실 <현대 드라마의 이론 1880-1950>(탐구당, 1983)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지난달에 해석학 책을 모으면서 영역본인 <문학해석학 입문 Introduction to literary hermeneutics>(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를 복사한 적이 있는데, 신간은 그 원저를 옮긴 것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분량이 얇다는 것인데(영역본은 140쪽 가량, 국역본은 230쪽 가량이다), 그만한 분량으로 문학해석학에 입문할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입문서는 아니지만, 문학해석학과 관련하여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짱 롱시의 <도와 로고스>(강, 1997)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2004.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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