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자 가을의 한복판이다(올해는 '중추가절'이 너무 일찍 지나가버렸지만). 대체로 좋은 소식은 없다. 며칠전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아홉 번째로 부패한 국가라고 지목했다(막강한 멕시코가 1위다). 김영란법이
정착되고 모든 게 엉망인 정권이 교체된다면 사정이 달라질까(그런 세상이 오기도 전에 지진이 먼저 올까 염려된다).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1. 문학예술
연초에 1권이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전6권) 2,3권이 이번에 나왔다.
절반이 나온 셈인데(영어판도 다시 확인해보니 5권까지 출간됐다. 지난겨울에 4권까지 구입한 터라 이번에 5권을 주문했다), 아마도 내년쯤에야
완결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졌으니 이제 독서를 시작해봐도 좋겠다(노르웨이문학 전문번역자인 역자의 한국어 감각이 좀 걸리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마도 다음주 목요일(6일) 저녁에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듯한데, 보도된 바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일본)와 응구기 와
시응오(아프리카), 그리고 필립 로스(미국)의 3파전이다. 하루키와 로스의 책들은 대부분 나와 있어서 따로 언급할 것도 없지만 응구기 와
시응오의 작품도 지난해와 올해 바짝 출간되었다. 근간까지 포함하면 댓 권 정도를 읽을 수 있는 상태다. 아마 수상자로 선정된다면 10월에 가장
많이 읽힐 작가 후보다(더 최근 보도로는 하루키와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의 2파전이란다).
예술분야에서는 페트릭 맥길리건의 평전 <히치콕>(그책, 2016)을 고른다. 첫 출간은 아니다. 히치콕에서 대해서는 도날드
스포토의 <히치콕>(동인, 2005)과 맥길리건의 <을유문화사, 2006)이 경합하듯 나왔고 그맘때 포스팅도 한 기억이 있는데
벌써 10년 전이고 이 책들도 모두 절판된 상태였다. 이번에 맥길리건의 책만 출판사를 옮겨 재출간되었다(1,228쪽에 이르지만 포켓북
판형이다). 히치콕의 영화를 다 보리라고 작정하고 꽤 모으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절반도 실현되지 않았다.
히치콕 관련서로는 지젝이 엮은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2001)과
함께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1994), 에릭 로메르 등의 <알프레드 히치콕>(현대미학사, 2004) 등의
자료들이 유익하지만 지젝의 책을 제외하곤 모두 절판된 상태다. 적어도 트뢰포의 책 정도는 다시 나오면 좋겠다(나도 갖고 있다가 분실한
책이다).
2. 인문학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선집이 나오고 있는데, 최근에 나온 그 셋째 권이 <사회주의 재발명>(사월의책, 2016)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한다. 곧 '사회주의 이념이 이전의 활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이 다시 한 번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를 거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호네트는 지난날의 사회주의
기획이 산업주의 정신과 문화에 갇혀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그 치명적 한계들을 폭로할 뿐 아니라, 그러한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21세기를
위한 사회주의 이념을 '재발명'해낸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지젝과 바디우 등이 주도하고 있는 '공산주의(코뮤니즘) 이념' 시리즈다. 올해 셋째 권이 나왔는데, 바로 2013년
가을 서울 컨퍼런스의 결과물이다. 굳이 언급하는 것은 왜 아직 번역서가 나오지 않는지 의아해서다.
역사 쪽으로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가운데, <혁명>, <파시즘>, <제1차세계대전> 등을 고른다. 잭
골드스톤의 <혁명>과 케빈 패스모어의 <파시즘>은 최근에 출간되었다. 어제 <2차세계대전사>와 관련하여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러드 와인버그의 <제2차세계대전>도 <제1차세계대전>과 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마저 나오면 좋겠다. 내년이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짐작컨대 혁명을 주제로 한 책은 계속 더 나올 듯싶다.
3. 사회과학
좀 가벼운 책부터. 미니멀라이프를 다룬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생활의 군살 빼기? 아즈마 가나코의 <궁극의
미니멀라이프>(즐거운상상, 2016)을 포함해 일련의 책들을 참고할 수 있다. 환경까지 생각하면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의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양철북, 2016)도 진지하게 읽어봄직하다.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심플리시티, 2016)도 같은
맥락인데, <우리는 소박하게 산다>(오후의책, 2014)의 개정판이다.
그리고 노동과 청년 문제 관련서들.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동녘, 2016), 안미선 등의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그린비, 2016), 그리고 천주희의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
2016) 등이다. 천주희의 책은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 빚 지지 않을 권리를 말하다'가 부제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문경수의 <35억년 전 세상 그대로>(마음산책, 2016)부터. 'NASA 우주생물학자들과 함께 떠난 서호주 탐사'가 부제다. "생명체가 탄생하던 순간이 고스란히 남은 서호주, 그 35억년 전 세상으로 진정한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소개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한다. 책으로 대신 가볼 수 있는 게 이런 여행 아닌가. 한삼희의 <위키드 프라블럼>(궁리, 2016)은 환경저널리스트가 쓴 '기후 난제 이야기'다. 저자는기후 변화라는 주제에 대한 학술적 추적과 대중적 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한다. 우리의 관심 내지 염려를 반영하자면 조만간 지진에 대한 책들도 봇물처럼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칼 세이건의 <지구의 속삭임>(사이언스북스, 2016).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어보낸 LP레코드판에는 27곡의 음악과 55개 언어의 인사말, 그리고 지구와 생명의 진화를 대표하는 19개의 소리 등이 담겨 있다. 외계 문명에 보내는 지구의 메시지인데, 그 기획과 준비과정을 엮은 책이다.
5. 책읽기/글쓰기
김경집의 <고전, 어떻게 읽을까>(학교도서관저널, 2016)와 함께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 교재, <이젠, 함께
읽기다>(북바이북, 2015)와 <이젠, 함께 쓰기다>(북바이북, 2016)를 고른다. 아주 실제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함께 읽고, 함께 쓰는 독서공동체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16. 10.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민음사, 2012)를 고른다. 당초 '에리히 아우얼바하'라는 저자명으로 분권돼 소개됐던 책이다. 창비 <창작과 비평>에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있었다면 민음사 <세계의 문학>에는 바로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가 있었다. 공역자가 김우창, 유종호 교수. 하우저의 책을 옮긴 백낙청, 염무웅 교수에 견줄 만한 페어조였다. 돌이켜보건대 당대 최고의 비평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번역자로 나섰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비교 거리다(한 시대, 이들과 경합하던 문학과지성사의 간판 번역서는 무엇일까?).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다시 읽은 김에 내처 아우어바흐의 이 걸작도 다시(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영어권에서도 50주년 기념판이 나올 정도로 아직 성가를 유지하고 있으니 고전은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