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이 글은 2003년 8월초에 씌어졌다) 소개한 류상욱의 <호모 시네마쿠스>에 대한 지난주 한겨레의 서평중 한 대목. "그러나 비평과 이론을 다루는 장의 무게 중심은 확실히 '텍스트'에 주어져 있다. 미디어 연구로부터 유입된 문화연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최근의 영화연구 추세에 대한 징후적 두려움의 반영처럼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영화이론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우리 영화연구 풍토의 방증이기도 하다."

번역도 아닌 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영화평론가인데, 이론가라면 모를까 자신의 생각을 이런 식의 문장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지 의심스럽고 걱정스럽다. 대략, 이론이 아닌 텍스트에 무게 중심이 놓여져 있는 것은 영화이론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우리 영화연구의 풍토를 반영한다, 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논증 자체도 신빙성이 없을 뿐더러, 도대체가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것인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일반인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쓰는 능력이 평론가의 자질이라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일간지 리뷰들을 읽다가 가끔 짜증스러운 경우는 이처럼 요령부득의 서평을 접한다거나 잘못된/엉터리 정보를 읽을 때이다. 이런 일들이 좀 줄었으면 싶다.)

 

 

 



지난 한주 동안 나온 책들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책 몇 권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제일 먼저 들 책은 당연히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정신의 기원>(이매진)이다(*올해 표지를 바꾼 재판이 나왔다). 제목이 <일본정신분석>에서 그렇게 바뀐 데 대해서는 나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의 비판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역자는 믿을 만하다는 것. <탐구1>과 <윤리21>의 역자인 송태욱씨인데, 앞서 두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알다시피, 역자는 <트랜스크리틱>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해서, 제목은 멀쩡한 <유머로서의 유물론>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는다. 나로선 '1장 언어와 국가'가 일차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감을 나중에 올려볼 계획이다.

 

 

 

 
처음 책을 내면서 개시부터 핀잔을 먹은 도서출판 이매진이 근간 예정으로 공고한 책들 중에서 관심이 가는 책은 부르디외의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이다. '부르디외가 본 하이데거'란 제목으로 나오는 모양인데, 복사해 두었던 영역본을 읽을 기회가 곧 생기겠다(*이 책은 2005년에 <나는 철학자다>라는 역시나 '엉뚱한'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리고 테리 이글턴의 신작 <반대자의 초상>(이 책엔 짤막한 지젝론도 실려 있다)도 번역돼 나온단다(*이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역시 두껍지 않은 책이다. 역자는 호머의 <프레드릭 제임슨>(문화과학사)의 번역자인데,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제임슨보다는 이글턴이 읽기 편하지만, 책은 나와봐야 알겠다.

 

 

 



두번째 책은 미셀 앙리 르두의 <프랑수아즈 돌토>(숲). 돌토(1908-1988)는 프랑스 국내에서 라캉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돌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될 만큼 저명한 정신분석가이다. 특히 아동 정신분석과 상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두어 권의 저작이 나온 바 있는데, 한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그의 저작선을 낼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해봄 직하다.

돌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프로이트에서 라캉까지 위대한 7인의 정신분석가>(백의)를 참조할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입문서의 마지막장은 '클라인, 돌토, 라캉'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서 클라인은 영국의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이다. 이 현대정신분석의 3인방이 어떻게 합종연횡하면서 서로 갈라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이들의 저작들이 서가의 한 구석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클라인의 주저인 <아동의 정신분석>도 출간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별로 기대할 만한 번역자가 아니다. *이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세번째 책은 앞서 3인방에는 못 들어가지만, 나름대로 저명한 정신분석가이자 문학이론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연구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문학탐색>(이대출판부)이다. 저자는 크리스테바 연구자이자 전담번역가인 김인환 교수. 하지만, 김교수의 번역은 신뢰도가 좀 떨어진다(특히 <시적 언어의 혁명>이나 <사랑의 역사> 등). 그럼에도 국내 필자에 의한 유일한 연구서이기 때문에 일단 참조해 보기로 했다. 크리스테바의 후기 저작들, 우울증에 관한 <검은 태양>이나 민족주의를 다룬 <민족없는 민족주의> 등 다른 책들도 곧 번역되었으면 한다(*<검은 태양>은 2004년에 역시나 김인환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영미권의 크리스테바 연구자로 손꼽을 수 있는 이들은 존 레흐트, 토릴 모이, 켈리 올리버 등인데(프랑스내에서는 그만큼의 평가를 받는 거 같지 않다), 이중 켈리 올리버의 <크리스테바 읽기>(시와반시사, 1997)가 이미 오래 전에 번역돼 나왔다(*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크리스테바가 달랑 바흐친 책 하나 들고 불가리아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지식계의 거물로 성장하기까지의 내막은 프랑수와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동문선)나 자전적 소설 <사무라이들>(솔)을 참조하시라.참고로 그녀의 스승이었던 롤랑 바르트는 오히려 이 이방의 제자 덕분에 구조주의자에서 후기구조의자 혹은 탈구조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네번째 책은, 찰스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 왔다>(갈라파고스). 이 지적 거인이 자신의 평범한(?) 삶에 대해 겸손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다윈 컬렉션에 들어갈 책이다(*알다시피, 올해는 다윈의 <인간의 유래>가 출간됐다). 또, 이유선의 <리처드 로티>(이룸)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는'이란 시리즈 타이틀을 달고 나온 만큼 로티의 삶과 생각에 대한 좋을 길잡이가 되어줄 듯. 필자는 김동식 교수와 함께 손꼽을 수 있는 국내의 로티 전문가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모리스 쿠튀리에가 편집한 <롤리타>(이룸). 피귀르 미틱, 즉 신화적 인물(형상) 시리즈의 네번째 책인데, 이미 <오이디푸스> <로빈슨> <채털리> <앨리스>가 나와 있다. 책에는 저자인 나보코프 자신보다도 유명해진 소설, 그리고 소설속 주인공인 '롤리타'에 대한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푸코나 들뢰즈, 라캉 말고 프랑스 인문학 수준은 어떨까란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글들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앨리스>의 책임편집자이기도 했던 장-자크 르세르클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루이스 캘롤과 넌센스문학 전공자인 르세르클은 알게 모르게 주목할 만한 이론적 작업들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 사라 코프만과 함께 영역된 그의 책 대부분을 복사했는데, 내년쯤에는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을는지!..

 

 



 

열외의 책으로 홍세화의 <빨간 신호등>(한겨레신문사)도 출간됐다. 홍세화, 박노자의 책들은 일단 사두기 때문에 따로 적지 않겠다. 역사쪽 책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재앙이겠지만, 최근에 좋은 역사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보다 더 안목있는 분이 소개를 해주면 좋겠는데,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비판서인 한스 페터 뒤르의 '문명화과정의 신화'(한길사) 시리즈(*가장 최근에 나온 건 <에로틱한 가슴>)나 임경석의 <한국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그리고 김호의 번역서 <신주무원록>(사계절) 등이 얼핏 꼽아볼 수 있는, 무게 있는 책들이다. 소개하기도 바쁜 그 책들을 과연 누가 다 읽는 것인지, 다 읽을 수는 있는 것인지?!..

2003.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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