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글을 연재한다(*이 글은 2003년 6월말에 씌어졌다. 그해 5월을 건너뛴 것인데, 그때도 요즘처럼 피곤했었나 보다). 두 달이 넘었는데, 한번 틀어진 리듬을 다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월과 5월 두 달은, 학술지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일들을 하느라고 '탕진'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시간들이 나를 그냥 통과해 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바쁜 일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있지만, 장마가 시작됐다는 핑계로 잠시 늑장을 부린다. 이럴 땐, 'Crying in the rain' 같은 음악이라도 깔렸으면...



앞으로 새로 나온 책들을 잡다하게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읽고 있는 책), 사고 싶은 책(소장가치가 있는 책)만을 간추려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 의도는 짐작하시겠지만, 당신도 사서 읽으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공범의식은 공고해질 것이다. 나는 책에 발목 잡히지 않은 삶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한다...

 

 

 



아침 신문에(월요일 아침엔 한겨레를 읽는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박노자의 칼럼과 문학란이 연재되기 때문. *요즘엔 읽지 않는다. 그런 란이 빠졌기 때문). 이성복의 신간 시집 기사가 났다.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내가 제일 처음 읽은 그의 시집은 <남해금산>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88년쯤. 이성복은 그때 80년대 시의 시대를 대표하던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그의 모든 책을 나는 갖고 있다. 청춘의 뜨거운 피(그런 강도를 느끼게 하는 시인들은 많지 않다), '나쁜 피'의 시인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먹었고, 시와의 오랜 불화 끝에 10여년만에 낸 시집이 신간이다. 오는길에 서점에 들렀지만, 예상대로 시집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아마 주중에나 서점에 깔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집어든 게 그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문학동네, 2001)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이미 읽은 거여서 사지 않고 미뤄두었던 책인데,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까 언젠가 산 거 같다. 불행하게도 기억이 좀더 또렷해지는 걸로 봐서 집에 꽂혀 있을 가능성이 80%이다. 이거 8,000원 짜리인데... 대부분의 글이 이미 읽을 거라고 그냥 장서용으로 꽂아둔 게 화근이라면 화근일 테다(알건 모르건, 산 책 또 사는 게 북마니아의 조건 중의 하나이다). 집에 가서 한번 확인해보고, 그냥 선물용으로 떼놔야 겠다. 요는, 이성복의 신간 시집이 나왔지만, 아직 구경을 못했다는 것이고, 당신도 한번 사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테리 번햄과 제이 펠란 공저의 <비열한 유전자>(너와나 미디어). 이건 어제 강남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우연하게 집어든 책이다.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이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는데, 에드워드 윌슨의 세 줄짜리 추천사가 없었다면, 그냥 싸구려 과학서로 내려놓을 뻔한 책이다. 저자들은 모두 윌슨의 제자들로서 하바드에서 경영학과 생물학 학위를 했다. '유전자 안내서(매뉴얼)'로 분류될 책의 서론에서 저자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찰스 다윈을 연구하는 것이다."(19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 정확하게 바로 그런 경로를 밟은 이가 라캉학파에서 진화심리학으로 전공을 옮겨간 딜런 에반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신분석학(프로이트)과 진화심리학(다윈), 둘다에 아직은 매료돼 있다. 라캉이 정신분석학의 슈퍼스타라면, <이기적 유전자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의 슈퍼스타이다. 그리고 <비열한 유전자>란 제목은 명백하게 도킨스의 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신이 진화생물학에 문외한이라면, 나는 이제라도 당신이 이들 책들에 입문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세계관이 조금 바뀔 것이다.

 

 

 



사실 영풍문고에 들렀던 건, 신간 과학서인 <아톰으로 이루어진 세상>(생각의나무)과 <넥서스>(세종연구원)를 들춰보기 위해서였는데, 전자는 아주 잘 씌어진 화학 입문서이고(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이런 책들이 없었다!) 후자는 요즘 뜨고 있는 복잡계과학의 한 분야인 네트워크 이론 입문서이다. 작년에 이미 <링크>(동아시아)란 책이 나오기도 했고, 쉬운 설명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네트워크 이론도 나의 관심사에 있어서 진화심리학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비열한 유전자>에 밀리고 말았다(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으니)...

 

 

 



그리고 세번째는 조광제의 <주름진 작은 몸들로 된 몸>(철학과현실사). 부제는 '몸철학의 원리와 전개'이다. 목차로 봐서는 몸철학의 '전개'를 다 감당하고 있지 못하지만, 국내에 몇 안되는 메를로-퐁티 전공자의 몸철학 입문서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이정우와 함께 철학아카데미의 공동설립자이다. 이를테면 강단밖(재야?) 철학자이다. 책이 경어체로 돼 있는 걸로 봐서 대부분이 아마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된 내용을 묶은 것이 아닐까 싶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에도 출연한 바 있는 이 '영화배우'이자 철학자의 책은, 그러나 좀 미덥지가 못하다. 그의 영화론인 <쉬르필로소피아: 인간을 넘어선 예술>(동녘, 2000)을 읽고 느낀 소감이 그렇다. 그 책이 좀 실망스러웠던 탓이다. 그래서 이번 신간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메를로-퐁티 전공자로서 변변한 역서 하나 없다는 점도 불만이라면 불만이고(적어도 <행동의 구조> 정도는 번역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메를로퐁티에 입문하려면, 당연히 후설을 거쳐야 하는데, 저자의 학위논문이 "현상학적 신체론: 후설에서 메를로-퐁티에로의 길"이었다. 그 후설에 관한 가장 좋은 입문서는 아직까지는(그리고 내가 읽은 바로는) 한전숙의 <현상학>(민음사)이다. 메를로-퐁티쯤 오면, 사실 동아시아의 기철학이나 한의학적 세계관과 접맥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심신이원론이 강한 서양철학적 전통에서 볼 때 좀 튀어보이는 것이지, 메를로-퐁티의 기본적 아이디어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라는 게 내 선입견이다. 메를로-퐁티적 이성을 '아줌마적 이성'이라고 바꿔부른 데에는 그런 선입견이 깔려 있다. 물론 <지각의 현상학> 같은 '물건'은 읽을 만하다(*조광제는 서평에서 국역본의 번역이 매우 부정확하다고 비판했다). 철학에서 중요한 건, 문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디어가 아니라, 논증의 과정이고 육체이니까.

 

 

 

 

네번째 책은 지난 토요일 한겨레에 서평이 실린 박홍규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미토)이다. 저자는 알베르 카뮈와 조지 오웰 평전과 함께 세 권의 책을 거의 동시에 출간했다(*그의 평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의 강준만 수준의 생산력인데, 문체 또한 간결해서 속도감있게 읽힌다. 법학자인 저자는 카프카학자들의 모호한 수사들을 걷어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카프카는 평생 사회주의자, 아나키즘에 가까운 사회주의자였고 동시에 법률가였다. 나는 카프카의 삶은 물론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이 두가지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본다."(79쪽) 해서 책은 '카프카적인 것'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평전이 돼 버렸다. 문제는 그럼에도/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의의이다.

저자의 조사에 의하면, 책은 국내에서 나온 최초의 카프카 평전이다. 학위논문이 단행본으로 나온 몇 권의 연구서를 제외하면, 국내에는 변변한 단행본 연구서(모노그라피)조차 없는 것이 카프카학의 현주소인데(*그런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학술논문들을 빼면, 조정래의 <프란츠 카프카>(살림, 2005) 정도가 체면치레하는 책이다), 한 법학자의 도전장에 대한 카프카학자들의 대응이 주목된다(물론 아무런 대응도 없을 테지만). 아쉬운 건 좀 급하게 책을 내서인지 오타나 오문이 드문드문 눈에 띄는 것. '실존의 비의'(67쪽)란 말을 엉뚱하게 해석한다든가 '꽤나'를 '꾀나'로 쓰는 것, "프리브람의 아버지"를 "카프카의 아버지"(191쪽)로 잘못 표기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럼에도 일독의 가치는 충분하다.

 

 

 



끝으로, 다시 나온 책들 패키지. 절판되었던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열화당)이 다시 나왔다. 알다시피, 책은 <서양미술사>와 함께 곰브리치의 주저이다. 그의 대담집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민음사)와 함께 곰브리치 퍼즐의 짝을 이룬다. 사실 다른 주저인 <서양미술사>도 원제에 맞게 <미술이야기>로 번역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청소년 교양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푸코>(동문선). 이미 영역본이 <들뢰즈의 푸코>(새길)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현재는 품절상태이다(인터넷서점이 그렇다는 얘기고, 대형서점들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서두 부분을 비교해 본 결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원저 번역본이 나왔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겠다. 그리고 신간엔 대단히 자세한 들뢰즈 서지가 실려 있다. 물론 들뢰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호락호락하게 읽히지 않는다.

 

 

 



 

소설 가운데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민음사)가 다시 나왔다. 1991년에 간행된 캠브리지 '결정판'을 김욱동 교수가 옮겼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민음사)도 다시 나왔다. 나는 1984년초에 김병익의 번역으로 읽었었는데, 어느새 20년전이 돼 버렸다(!).

 

 

 



기타, 가타리의 마지막 책 <카오스모제>(동문선)도 나와 있는데(*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세가지 생태학>과 함께 나중에 다루고자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쪽은 들뢰즈/가타리의 기호학 비판이다. 그 비판의 전거로 옐름슬레우가 많이 인용되는데,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저작 <랑가주 이론 서설>(동문선, 2000)의 번역도 신통찮다는 것만 지적해둔다. 한국어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지난함이여!...

2003. 06.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