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고른다. 주로 사회과학 신간 가운데서 골랐다. 타이틀북은 필리페 판 파레이스의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후마니타스, 2016)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가 부제. 일찍부터 '기복소득 총서'(박종철출판사)까지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 기본소득이 화제가 된 것은 지난번 스위스에서의 국민투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이슈성을 넘어서서 보다 차근하고 깊이 있게 따져볼 문제다(누군가는 "개돼지들에게 실질적 자유라고?" 불쾌해 할 수도 있겠다). 다행스럽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저자는 벨기에 루뱅대학의 교수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히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기본소득론을 대표할 만하다(기본소득에 대한 쉬운 설명은 최근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요지는 이렇다.
판 파레이스는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란,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가 제도적으로 함축하는 바는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판 파레이스는 이 책을 통해 이와 같은 기본소득에 대한 체계적인 정식화를 선구적으로 제시하는데, 여기에 제시된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정치 공동체가, 모든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자산 조사 없이, 근로조건 부과 없이, 거주지와 무관하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육, 의료서비스 등 기본 서비스들은 국가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현물로 지급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두번째 책은 바르바라 무라카의 <굿 라이프>(문예출판사, 2016)이다. '성장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가 부제. "'탈성장 운동'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세심한 가이드이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전망을 담은 책"이다. 탈성장사회에 대해서는 세르주 라투슈의 <탈성장사회>(오래된생각, 2014),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민음사, 2015) 등이 소개돼 있다.
세번째 책은 <감정노동>의 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가족은 잘 지내나요?>(이매진, 2016)다. '현대 가족의 일과 삶과 사랑의 공감 지도 그리기'가 부제. "<감정노동>을 써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우리 시대를 읽는 열쇠말로 만들고 <나를 빌려드립니다>에서 아웃소싱 자본주의와 사생활의 시장화를 파헤친 앨리 러셀 혹실드는 일과 가족과 사랑에 관해 묻는다. “나, 우리, 가족은 잘 지내나요?” 혹실드는 뭐든 아웃소싱할 수 있는 현실을 살핀다. 감정 아웃소싱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의 일과 삶과 사랑에 관한 이론적, 역사적, 개인적 보고서다."
네번째 책은 '인권연대'의 인권교육 직무연수 강의를 엮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철수와영희, 2016)다. "다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폭력, 민주주의, 철학, 세계, 평화라는 주제를 통해 다루며, 차별과 희생 없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책이다." 작년에 나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철수와영희, 2015)의 속편으로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책은 송제숙의 <혼자 살아가기>(동녘, 2016)다. "젠더, 정치경제, 정동으로 바라본 비혼여성들의 주거와 독립, 좌절과 투쟁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분석. 한국사회의 큰 분기점이 된 1997년 금융위기, 그리고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민주화 이후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향유가 중시되는 자유주의적 시대적 분위기 속에 살고 있는 비혼여성들의 삶을 좇는 책이다."
저자는 캐나다 토론대학교의 인류학과 교수이고 책은 번역서다. 저자의 다른 책으론 <복지의 배신>(이후, 2016)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가 기획하는 '복지'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복지국가'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잘못된 기대를 갖지 말라고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떤' 복지를 이야기할 것이냐가 중요하니, 대한민국의 복지국가 탄생 시기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