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단의 화제는 단연 문태준 시인이다. 최근에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인데(수상작은 '그맘때에는'), 이런 수상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 2000년대 한국시단이 '문태준과 아이들', 혹은 '문태준과 바퀴벌레들'로 요약될 수 있다고 적은 바 있는데, '바퀴벌레 시인들'의 근황도 계속 소개한 김에 문시인, 혹은 문사마의 족적도 확인해두도록 한다. 아래는 시 '그맘때에는'과 문화일보(06. 04. 13)의 기사이다. "문태준 시인, 서른여섯살의 ‘詩壇 돌풍’"이란 타이틀이고 작성자는 장재선 기자이다(*신작 시집 <가재미> 등의 이미지를 추가한다). 

그맘때에는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보았다

무른 나는 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70년 개띠, 만 서른여섯살의 문태준 시인이 권위있는 각종 시문학상을 휩쓸고 있다(*동갑네기 소설가 김연수가 경북 김천 출신이 그의 동향 친구라고). 2004년 말 동서문학상을 시작으로 노작, 유심, 미당문학상을 거머쥔 데 이어 지난 10일엔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제 겨우 두권의 시집을 펴낸 그가 시단의 중진, 원로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스타 시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문단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태준 안티론’의 정체는 또 무엇이며 문 시인 자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대표주자가 될 만하다”=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인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오세영, 김명인, 최동호, 권영민, 문정희)는 문 시인의 시 작품 ‘그맘때에는’ 외 15편을 대상작으로 발표하며 “삶에 대한 깊이있는 천착에서 우러나오는 빼어난 시적 언어를 건져올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세영 시인은 “생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미학적 형상성과 잘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문태준 시인의 탁월한 시적 재능”이라고 말했고, 최동호 시인은 “새로운 시대의 서정시의 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로써 보면, 문 시인이 문학상을 많이 받게 된 이유는 진지한 철학적 사유와 언어미학을 건축하는 특별한 재능에 있다. 무엇보다 울림이 깊은 서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시인은 “찰나의 깨달음을 표현해내는 선적(禪的) 직관이 전문 독자, 즉 선배 시인들에게 좋은 느낌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의 실험, 해체를 통한 난해시 경향을 우려해온 중진, 원로들이 문 시인을 통해 한국 현대시에서 서정성 회복의 가능성을 본다는 것이다(*쉽게 말하면, 문시인은 '어르신'들이 딱 좋아할 만한 시들을 쓴다). 문 시인 자신도 “시가 독자로부터 멀어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서정성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좋은 서정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를 갖고도 쓸쓸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과도한 스타 만들기”↔“시로 말하겠다”=문 시인이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상을 몰아주는 것은 지나친 스타 만들기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해 말 존재의 소통 문제를 주로 다룬 첫 시집을 펴낸 한 젊은 시인(32)은 “문 시인이 상을 휩쓰는 것은 시단의 주류인 심사위원들의 연령,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며 “우리 시의 미래를 위해선 서정시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개성적인 실험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바퀴벌레 시인들에게도 주목을!).

 

-문학평론가인 김수이 경희대 교수는 문태준 시의 일정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작품이 현실에 눈감은 ‘자연의 매트릭스(가상공간)’에 의지하고 있다”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물들의 갈등과 악전고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그런데, 그게 한국시의 주류 아니었나?) 


-문 시인은 이에 대해 “당대의 현실을 시 작품에 드러내는 것은 다른 시인들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 존재의 성찰에 당분간 몰두해 내 안의 갈등, 욕망, 비겁함, 추레함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사찰에 다녔다든지, 중학교 때 크게 아팠다든지 하는 경험이 자신의 시적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싶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교의 세계에 천착해온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의 고민이라는 것(*그는 불교방송의 PD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의 시세계에 대해 “사람 마음이 계속 바뀌며 자아가 분열하는 모습을 악동(惡童)의 마음으로 그려내고 싶다”고 털어놓은 뒤 곧 “시인이 자신의 시쓰기 전략을 직접 말로 하면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다.(*해탈의 경지를 보여주기에는 그는 아직 젊은 시인이다. '악동의 마음'에 더 많은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06. 04. 14./ 06.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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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4-1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인가 잡지 [GQ]에서 많은 시인들에게 이런 류의 질문을 했었죠.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시는? (뭐, 대략 이런 비스무리한 느낌의 질문이었던 듯) 많은 시인들이 문태준의 '맨발'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더랬죠. 상 때문에 스타가 되었다기보단 이미 많은 시인들에게 그의 시가 인정을 받았다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에또- 최근 "펭귄뉴스"란 소설집을 낸 김중혁 씨도 동향 친구라지요-

로쟈 2006-04-14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그런 내용을 페이퍼에 쓴 적이 있습니다. '가자미'란 시도 올해의 시로 꼽혔었지요. 동시대 시인들에게서 '인정' 받는 시인이기 때문에, '문사마의 시대'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시의 메인스트림.

한데, 어느 시인의 볼멘소리처럼, '상복있는 시인'의 함정은 본의아니게 '시는 이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른 시인들이나 독자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죠. 시의 나라는 아주 넒고도 깊은데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