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잃을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을 읽을 수가 없다'가 아니라 '책을 잃을 수가 없다'. 찰스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민음사, 2016)의 표제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치즈 발

커피포트 영혼

당구를 싫어하는 손

클립을 닮은 눈

나는 적포도주를 좋아한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지루해 한다

나는 지진이 일어날 때 유순해진다

나는 장례식에 가면 졸리다

나는 퍼레이드에서 토하고

체스 게임에

씹에 보살핌에 몸을 바친다

나는 교회에서 오줌 냄새를 맡는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잃을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잃을 수가 없다"고 해서 뭔가 심오한 뜻인가 싶어 원문을 확인해보니 "I can no longer read"를 옮긴 것이다. 그냥 해프닝성 오타인 것. 표제시에서 이런 오타가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여하튼 오타는 오타다.

 

덧붙이자면 부코스키는 시건, 에세이건 소설이건 그냥 부코스키다. 친숙한 부코스키, 새로울 건 없는 부코스키, 좀 식상한 부코스키. 그게 부코스키 탓은 아닐 테지만. 여하튼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는 표현 이상의 문구는 시집에서 찾을 수 없었다. '후퇴' 같은 시가 좀 나은 정도.

이제 나는 끝났다

 

눈발에 얻어맞은

독일 군대, 닳아빠진 군화에

신문지를 쑤셔 넣고 구부정히

걸어갔던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나의 고난은 그만큼 지독하다.

아니 더할지도.

 

(하략)

 

16.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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