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에 들어 있는 책들이 얼추 열권은 넘어가기에 비우는 기분으로 몇 자 적는다. 식후에는 바로 일(혹은 공부)하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에, 게다가 오늘은 바깥 산책을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쌀쌀하기에, 단순작업으로 시간을 좀 때워보려는 의도도 있다. 지난 주간에 나온 책들은 다 막상막하이지만(그러니까 결정적으로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는 얘기), 가장 먼저 꼽을 책은 스티븐 존슨의 <굿바이 프로이트>(웅진지식하우스, 2006)이다.

 

 

 

 

'인간 심리의 비밀을 탐사하는 뇌과학 이야기'란 우리말 부제를 단 이 책의 원제는 'Mind Wide Open'(2004). 스탠리 규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을 패러디한 제목이란 걸 바로 알 수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책으론 "복잡계 과학을 새롭게 설명한 베스트셀러" <이머전스>(김영사, 2004)와 <무한상상 인터페이스>(현실문화연구, 2003) 등이 소개돼 있으니까 우리 서가와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이다. 이번에 그가 낸 책은 "흥미진진한 뇌과학의 세계"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웃음의 전염성, 집중력과 공포심의 정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 마인드컨트롤의 원리, 자폐증의 원인 등을 살핀다. 질문이 일상적인만큼 그 질문을 푸는 방법도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한다. 전문용어를 제한하고, 뇌의 영역·신경화학물질·신경 전달체계 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만 모아 독자들을 배려했다. 특히 프로이트가 만들어놓은 심리적 가설을 뒤흔들며 마음에 관한 이론을 새로 쓰게 만들었던 유명한 실험들을 폭넓게 다뤘다. 실험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며, 실험 속엔 인간 행동과 감정의 비밀을 푸는 과정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책에 나온 선구적인 실험들은 최근에 와서 뇌과학 실험으로 다시 한 번 입증됨으로써 인간과 마음의 풍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다: "프로이트는 뇌의 특정한 영역이 의식의 통제 바깥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옳았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한 뇌의 구조에 생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없다(우리 신체 기관들에게 일상적인 관리 업무를 중단할 때를 말해주는 생체 시계의 형태로, 우리의 유전 구조에 죽음 충동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공포 반응은 그것이 아무리 우리를 무력화시키든 간에 근본적으로 살아 있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절반만 옳았기에, 그러니까 절반은 틀렸기에 국역본의 제목은 '굿바이 프로이트'가 된 모양이다.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이 책은 뇌과학의 최전선을 둘러보고 쓴 명쾌하고 재미있는 여행담"이라고 칭찬하고 있고, 동료 저널리스트인 존 호건도 "스티븐 존슨의 신나는 현대 뇌과학 여행담은 내 뇌를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감동시키고, 놀라게 하고, 무엇보다도 즐겁게 한다"고 증언하고 있으니까 책의 품질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겠다. 게다가 부지런한 전문번역가의 번역이다. 분량도 312쪽으로 아주 부담스럽지는 않다(물론 프로이트와 작별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비록 뇌과학보다는 정신분석학 책들에 더 자주 손이 가는 편이지만, '적들의 생각'은 언제나 유익한 자극을 주므로 한번쯤 읽어볼 생각이다.

 

 

 

 

두번째 책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부탁해요, 아인슈타인>(모티브북, 2006)이다. 불어본 원제가 'Einstein S'il Vous Plait'(2005)이니까 국역본의 제목은 지어낸 게 아니라 직역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철학'이라고 부제가 달려 있는데, 270쪽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갔을 뻔한 책이지만, 알고 보니 저자가 제법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한편으론 프랑켄슈타인 전문가이며, 국내엔 <영화, 그 비밀의 언어>(지호,1997)와 <프랑켄슈타인>(이룸, 2004) 외에도 <현자들의 거짓말>(영림카디널, 2000)이나 <시간의 종말>(이끌리오, 1999) 등 그가 단독 혹은 공동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책들이 이미 소개돼 있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소설 형식으로 아인슈타인의 과학과 철학을 들여다본다. 어떤 여대생이 시간의 법칙을 이탈해 20세기 초중반에 살고 있던 아인슈타인 앞에 나타나고,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3차원 위에 시간의 차원을 덧붙여 인간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탈바꿈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그 바탕이 된 사상, 그리고 그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겠다. 마치 이번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개정판 <시간의 역사>,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까치글방, 2006)처럼.  

 


 

 

세번째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이산, 2006)이다. 이 또한 '지피지기'하기 위한 텍스트인데, 후쿠자와는 알다시피 일본 메이지 시대 최대 계몽사상가이며, 1만엔권 지폐에 초상화가 실려 있을 만큼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더불어, '문명(civilization)', '연설(speech)', '경쟁(competition)', '저작권(copyright)' 등의 번역어들의 저작권자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의 용어들로 숨쉬고 생각하고 있는 셈(그는 '문명'의 아버지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자서전(원제 '복옹자전')은 1897년 후쿠자와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만년까지의 인생역정을 구술하여 속기사에게 필기시킨 것이다. 가난한 하급 무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양이론과 쇄국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일본의 서양문명화에 평생을 바친 일대기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자전문학의 백미이자 일본근대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기록이다. 성장기와 나가사키 유학 당시의 비화나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자녀교육관, 술을 끊기까지의 에피소드 등 후쿠자와의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 부분도 상당부분 포함되어있다. 또한 부국강병으로 시작하여 군국주의로 이어지는 대표되는 일본 근대 지식인의 어두운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여, 일본 근대사에 대한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

지난번 WBC 준결승에서 우리는 일본에 아쉽게도 분패했는데(먼저 두 번 이긴 걸로 위안을 삼지만), 사실 실력으로는 아직 우리가 '흑번'이다. 근대화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비록 삼성이 소니를 앞질러가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론 이 '이웃'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후쿠자와의 자서전을 읽는 건 그런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그의 주저 중 하나는 <학문을 권함>이니 읽어서 손해볼 일이 있겠는가?

 

 

 

 

네번째 책은 제리 멀러의 <자본주의의 매혹>(휴먼&북스, 2006). 원제는 'The Mind and The Market'(2002)이고, 부제는 '돈과 시장의 경제사상사'.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사상사인데, 저자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상사를 다루면서, "자본주의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자본주의가 낳은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당대 현실에서 비판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혹은 그 대안을 찾고자 했던 모든 현실 운동과 이론화 작업의 역사"를 조명한다고.

소개를 더 보태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은 모두 당대의 자본주의 현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 혹은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몰두했던 사람들이다. 볼테르를 선두로, 애덤 스미스, 유스투스 뫼저, 에드먼드 버크, 헤겔, 마르크스, 매튜 아널드, 막스 베버, 지멜, 좀바르트, 루카치, 프레이어, 슘페터, 케인스, 마르쿠제, 마지막으로 케인스를 부정하고 완전한 자유주의 정책을 주창함으로써 20세기 마지막 2, 30년간 서구에서 가장 각광받은 경제학자가 된 하예크 등, 총 16명의 사상가와 주요 사상이 소개된다."

 

그러니 이 또한 (당신이 자본가가 아니라면) '적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한편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월가에서 가장 많이 읽는다고 하잖는가?). 이번에 론스타펀드가 수년전 헐값(?)에 인수한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4조원 이상의 이익을 챙길 거라고 하니까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는 가히 '매혹 덩어리' 아닌가?!  

북치고 장구치는 책소개: "‘자본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현상이 인간의 다른 사회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좌파는 좌파대로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의 원천을 살펴보는 것이며, 우파는 우파대로 논리를 가다듬는 기회가 된다." 고로, 양다리에 양수겹장인 책. 저자는 역사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처음으로 번역/소개되는 그의 책이다.

유사한 성격의 책으론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와  피에르 독케스 등이 쓴 <모호한 역사>(한울, 1995)가 있다. 전자는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이며, 후자는 아는 사람도 아주 드문 '모호한' 책이다. 하여간에 둘다 소장도서이긴 하다. 이들과  같이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더 꼽아보자면, 피에르 잘레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책벌레, 2000), 강만길 편,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역사비평사, 2000), 복거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삼성경제연구소, 2005) 등이 눈에 띈다. 자유주의 전도사 복거일이 자본주의의 수월성과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정의'에 호소하고 있는 건 뭔가 어색하다는 인상을 주지만(정의롭지 않을 경우 '현실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란 뜻을 함축하는 거 아닌가?).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1930- )의 <초보자의 삶>(하늘고래, 2006). 제목에서 얼마간 짐작할 수 있는데, 책은 "인간사회의 위선을 위트 있게 표현한 풍자적 단편집"이며,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39개의 주제를 다룬 짧은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저자는 <탱고>, <이민자>, <스트립티즈> 등의 희곡으로 유명하다는 폴란드 작가인데, 나로선 첫대면이다. 유머러스한 동구권 작가로는 카렐 차페크가 먼저 떠오르는데, 짐작엔 비슷한 색깔의 작가이지 않을까 싶다.

소개에 따르면, "므로제크는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포착하는 발군의 통찰력과 유머를 자랑한다. 단편소설로 데뷔하고 풍자만화가로도 활동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작가 특유의 해학과 정교한 표현은 삶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쓴, 혹은 살아가기 위해 저절로 두터워진 각질을 콕콕 찌른다. 묵직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위트, 뛰어난 혜안이 일상의 몰상식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분량도 가뿐하므로 어느 화창한 봄날 단숨에 읽어봄 직하다. 아래는 므로제크의 연극작품 <탱고>(1964)의 한 장면.

06. 03. 28.

P.S. 미술과 영화 책 몇 권이 소개에서 빠지게 됐는데, 다음에 몰아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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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3-29 15:05   좋아요 0 | URL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이 나왔군요.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06-03-29 15:47   좋아요 0 | URL
저보다 먼저 아실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