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세 명의 인문학자를 골랐다. 먼저 '임철규 저작집'의 마지막(?) 권으로 <고전>(한길사, 2016)을 펴낸 임철규 교수. '인간의 계보학'이 부제인데, "새로운 책 <고전-인간의 계보학>에서는 호메로스가 던진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 후대의 문학작품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했다. 호메로스에서 시작한 탐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지나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브레히트, 그리고 정지용과 박경리 등 동서고금을 아우른다." 스케일과 깊이에 대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미더운 저작이다.
이로써 <눈의 역사 눈의 미학>(한길사, 2004)에서부터 시작된 '저작집'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듯싶은데,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박이문 전집과 함께 장관이다(김우창 교수의 전집은 출간중이므로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번역서로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한길사, 2000)을 더 얹을 수 있겠다. 그밖의 번역서로 <카프카와 마르크스주의자들>(까치, 1986)과 비탈린 에이 루빈의 <중국에서의 개인과 국가>(율하, 2007)가 있다.
사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임칠규 교수의 책은 바로 <비평의 해부>였던 것 같다(혹은 레슬리 스티븐슨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이론>(종로서적, 1981)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학부 1학년 때였으니까 햇수로는 30년 전이다. 그 30년의 시간이 응축된 듯싶어 독자로서도 감회가 없지 않다. 저작집에서 빼놓은 책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서가에 자리를 마련해두어야겠다. 임철규 교수의 저작에 관해서라면 번역서까지 포함해서 나는 '전작주의자'다.
지난 2월 '박이문 인문학 전집'(전10권)을 출간한 박이문 선생이 이번에는 아포리즘집 두 권을 펴냈다. <이 순간 이 시간 이 삶>과 <저녁은 강을 건너오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미다스북스, 2016). 1930년생이므로 현재 86세다. 역시나 대학 1학년 때부터 읽어왔으므로 선생과의 인연도 30년이다. 그 인연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것인가. 하지만 저자와 독자와의 인연은 독자가 살아 숨쉬는 한 계속된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30년 동안 인연이 더 이어지길 기대한다. 사회학자 정수복의 박이문론,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알마, 2016)의 반양장본도 3년만에 나왔다. 양장본은 '전집' 이전에 나왔었는데, '전집' 이후에 나오는 것이라 반양장본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전집'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삼아도 좋겠다.
러시아문학자 오종우 교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한 강의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무엇이 인간인가>(어크로스, 2016). 지난해에 나온 <예술수업>(어크로스, 2015)의 연장선이면서 그보다 먼저 나왔던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사람의무늬, 2012)의 바톤을 이어받는 책이다(<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세 작품을 다뤘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깊이 읽으며 우리의 인문적 사유를 깨우는 책이다. 인문학자 오종우는 <죄와 벌>에 그려진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련한 삶들과 21세기 오늘의 삶을 교차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우리 인생을 손익과 성과로 점수 매기게 하는 걸까. 우리는 계산하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며 산다고 착각해온 건 아닐까. 노예나 기계로 전락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죄와 벌>은 을유문화사판과 민음사판, 두 종이다. <죄와 벌>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같이 읽어볼 만하다...
16. 0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