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출판문화'(604호)에 실린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을 옮겨놓는다. 시의성을 고려하여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번역 현황을 짚어보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언급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란 제목으로 쓴 페이퍼의 확장판이다. 이번주에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 2016)가 출간됐다는 소식은 전했는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새 번역본으로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펭귄클래식, 2016)도 나왔다. 원제를 제목으로 다 살렸는데, 후발 번역서로서 주목을 좀 해달라는 주문으로 봐야겠다. <햄릿>(문학동네, 2016) 새번역까지가 '400주기'의 수확이다.
출판문화(16년 4월호)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
발렌타인데이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다. 독서와 출판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에 지정한 기념일이고 공식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이제 갓 스무 해를 넘긴 세계 책의 날의 역사에서 올해는 특별히 더 기념할 만하다.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을 기념하여 4월 23일로 정해졌다는데, 올해가 바로 두 사람이 사망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슨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모셔두기만 했던 두 문호의 걸작들을 한번 일독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충분한 기념이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들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관한 강의를 연중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주 강의해온 작품도 있고 처음 강의하게 된 작품도 있다. 딱히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강의를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은 종의 번역본과 참고자료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만 하더라도 축약된 어린이용 도서만 잔뜩 나와 있고 완역본이 희귀했었지만(김현창 교수의 번역본과 1부만 옮긴 박철 교수의 번역본이 거의 전부였다) 2005년에 민용태 교수의 완역본(창비)이 나온 걸 필두로 하여(2012년에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2014년에는 안영옥 교수의 완역본(열린책들), 그리고 지난해에는 2부까지 마저 옮긴 박철 교수의 완역본(시공사)가 출간돼 완역본끼리의 경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돈키호테>의 1, 2부가 각각 1605년과 1615년에 나온 걸 고려하면, 무려 400년 만에 한국에서도 <돈키호테>에 대한 독서 내지 ‘독서 붐’이 가능해진 셈이다.
셰익스피어도 비슷한 추세다. 김재남 교수의 최초의 한국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은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었으나 절판된 지 오래인 상태에서 신정옥 교수의 문고본 판형의 전집(전예원)이 유일했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를 전담해서 번역해온 최종철 교수도 2014년부터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을 출간중이다. 개인 번역 전집의 상황이 그렇고,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번역판으로 작품총서(동인)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제 수년 안으로 네댓 종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전집판의 경우가 그렇다는 얘기이고, 4대 비극 같은 주요 작품들에 한정하면 독자의 선택지는 훨씬 더 넓어진다.
셰익스피어 강의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한 차례의 강의라면 단연 <햄릿>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4주짜리 강의로 그의 4대 비극을 읽게 된다. 조금 애매한 경우가 5주 강의를 맡았을 때인데, 나의 선택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4대 비극만큼 유명해서다(<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하여 ‘5대 비극’으로 묶은 작품집도 있다). 그 <로미오와 줄리엣> 번역본에 대한 얘기를 잠깐 적는다. 몇 차례 강의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특이하게도 작품의 명성에 비해 생각만큼 번역본이 많지는 않다. 어린이용이나 청소년판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최종철판(민음사)이고, 김정환판(아침이슬)과 김재남판(해누리) 등을 곁들인다.
민음사판을 강의에서 자주 이용하는 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가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으면서 손에 들 만한 번역본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구심이 든다. 역자가 운문 번역을 표방하면서 시 형식을 맞추는 데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까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많아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한정하면, 편집상의 실수도 없지 않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4장의 첫 대사는 로미오의 대사임에도 민음사판에서는 벤볼리오의 대사로 처리되어 있다. 그렇게 밀리다 보니, 벤볼리오의 대사인 두 번째 대사는 머큐쇼의 대사가 되었다. 이건 판본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착오다. 같은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전집판(2014)에는 바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붙은 하인들끼리의 시비는 캐풀렛의 조카 벤볼리오의 등장에..."라고 되어 있는 것도 좀 무심한 착오다. 로미오의 친구이기도 한 벤볼리오는 몬터규의 조카이기 때문이다. 두 집안이 원수 사이인 걸 생각하면 좀 짓궂은 오류인데,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런 오류는 교정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번역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보통은 정답이 없는 해석상의 문제나 뉘앙스상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객들을 설레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 장면을 보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둘의 첫 키스 장면은 1막 5장에 나온다. 로미오가 짝사랑하는 여인 로잘린을 보기 위해 캐풀렛 가의 파티에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가 줄리엣에게 한눈에 반해서 수작을 거는 장면이기도 하다. 최종철판의 번역은 이렇다.
줄리엣: 성자상은 기도는 허락하나 움직이진 못해요.
로미오: 그렇다면 기도하는 동안에 움직이지 말아요.(그녀에게 키스한다) 이렇게 내 죄는 그대의 입술로 씻겼소.
줄리엣: 그렇다면 내 입술로 죄가 옮겨 왔군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요? 오, 이 달콤한 범법 재촉! 내 죄를 돌려줘요. (그녀에게 다시 키스한다)
줄리엣: 키스를 배웠군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은 줄리엣의 마지막 대사이다. "키스를 배웠군요."란 번역은 일단 주어가 모호하기에 불친절한 번역이다. 로미오가 연거푸 두 번 키스를 했기에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키스를 배웠다는 말인지, 키스를 능숙하게 하는 걸로 보아 로미오가 어디선가 키스를 배운 것 같다는 말인지 번역만으로는 알 수 없다. 원문은 'You kiss by the book'이다. 그러니 후자 쪽이고 사실 시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여야 맞다. 그런데 뜻은? 일단 별도의 전집판(민음사)에서 역자는 "책에 적힌 키스네요."라고 수정해서 옮겼다. 말하자면 키스를 책에서 배운 대로 한다는 것이다. 줄리엣이 본 책은 어떤 책들일까? 키스 교본? 혹은 소설?
한데 'by the book'이란 표현은 옥스포드판의 주석에 따를 때 'according to the rules'란 뜻이다. 그리고 그게 좀더 말이 된다. 줄리엣에게 키스하면서 로미오는 두 번 다 어떤 이유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속죄의 키스. 다른 한번은 그 죄를 다시 돌려받는 키스. 즉 키스하고 싶어서 키스한 게 아니고 특별한 이유에 따라 키스한 것처럼 둘러댄 것이다(이게 노련함인가?). 이것을 김정환판에서는 "입맞춤마다 이유가 있으시군요."라고 옮겼고, 김재남판은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라고 옮겼다. 둘다 대동소이한데, 최종철판과는 다른 해석이다. 김재남판은 이렇게 옮겼다.
줄리엣: 성자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비록 기도를 들어주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로미오: 그렇다면 내가 기도의 효험을 받는 동안 움직이지 마세요. 이렇게 당신의 입술로 내 입술에서 죄는 씻어지거든요.(키스한다.)
줄리엣: 그러면 나의 입술이 그 죄를 짊어지게 되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 죄를 넘겨받는다? 오, 달콤한 질책이여! 나의 죄를 되돌려주세요.(키스한다.)
줄리엣: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
훨씬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다. 대화도 더 자연스럽다(아무리 운율을 맞춘다지만 최종철판의 '범법 재촉!'은 부자연스럽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한 키스는 책에서 배운 키스가 아니라 이유를 둘러댄 키스다. 두 주인공의 로맨틱한 키스를 기억하는 독자/관객이라면 최소한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사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국민적 화제가 됐었다.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에게 힘겹게 1승을 거두긴 했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1:4로 패했다. 돌이켜보면 그 1승도 또 다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알파고는 막강했다. 바둑의 최고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알사범(알파고)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창조성의 영역으로 성큼 진입해온 셈인데, 그와 맞물려 앞으로 상당수의 직업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뒤집어서 말하면, 창조적인 일일수록 로봇이나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비교우위를 유지할 거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 좀더 '수학적인' 작곡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문학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쓴 시와 소설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몇 만권의 시집과 소설을 읽어치운 인공지능을 상상해보라!). 인공지능 대문호의 탄생? 인공지능 셰익스피어? 언젠가는 인공지능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주인공 로미오는 어떤 이유를 대며 줄리엣에게 키스할지 궁금하다.
16. 04. 20.